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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역행하는 사드 배치 결정

기자명 이중남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에 이르는 반세기를 ‘차가운 전쟁’, 즉 냉전(冷戰)시기라고 부른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이 무력으로 직접 충돌한 적은 없지만, 우주 진출 경쟁,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통한 진영 대립, 제3세계에서의 대리전,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고까지 명명된 무한정한 군비 확장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일견 모순어처럼 보이지만, ‘냉전’이란 용어는 수면 밑의 팽팽한 긴장을 적절히 비유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적(敵)과 아(我)의 편 가르기 논리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같은 편이면 도덕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어도 돕고, 적은 악마로 취급하며, 회색지대는 의심한다. 일례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냉전기간 내내 굳건했던 것은 흑인 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세력들이 반미 사회주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자유진영’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수사(修辭)는 요란했지만, 제재라고는 고작 올림픽에 출전을 금지시키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선에 그쳤던 것이다.

냉전 종식 후 국제사회의 ‘각성’이 시작되면서 남아공의 인종주의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제력 격차와 무역 불균형, 반인도적 범죄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 등을 둘러싼 논의가 광범위하게 시작된 것도 냉전 종식 이후의 일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거꾸로 과거에 냉전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강력하게 여타 중요한 의제들을 은폐해 왔는지를 반증한다.

탈냉전이라는 정세 변화는 한반도의 상황에도 새 돌파구를 열었다. 냉전시기 남과 북은 강대국들이 즐기는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지만, 이제 적어도 한반도 내부의 문제에 관한 한 상당한 정도로 주체적인 선택과 결단의 여지가 생겨난 것이다. 과거 정부가 표방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은 그와 같은 상황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고, 6·15 선언과 10·4 선언, 개성공단 설치 등은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성과였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대내외적인 중대안건을 다룰 때 이전 보수당 정권들에 비해 온건하고 후견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에 관해서만큼은 강경 일변도였다. 그 이유는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G2’로 부상한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대한 견제 심리 탓이다. 중국과 관련된 국제정치에 관한 한 미국은 과거의 냉전 구도가 복구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왔다.

그렇지만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의 30%(홍콩을 포함)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고, 정치적으로도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도록 압박할 수단을 가진 육자회담 의장국이다. 관광산업 역시 중국인을 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런 중국과 우리를 적대시키고자 하는 미국 측의 신냉전 구도에 가담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조차 미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THAAD) 배치 요청을 번번이 거절해 왔던 것이다.

지난 6월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흘 새 두 번에 걸쳐 한반도 내 사드 배치 반대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동북아에 냉전 구도가 복구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경고였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지난 7월8일 기어이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군의 설명인데, 설득력이 없다. 1000기의 미사일이 배치되어 있는 마당에,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고작 48발의 요격 미사일, 재장전에 30분이 걸리는 무기 1개 포대로 무엇을 더 잘 방어한다는 말인가.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 방어에 무용지물이라는 것 또한 국방부가 자인하는 바와 같다.

이해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졸속으로 단행된 개성공단 폐쇄에 이어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등 중대 현안들이 올 들어서 줄줄이 냉전 논리를 좇아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심히 우려한다.

고삐 풀린 행정부를 견제할 민의의 전당, 국회조차 머뭇거리고 있는 차에, 천주교의 최상위 기구인 주교회의와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가 사드 배치 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을 크게 환영한다. 불교계도 조속히 공식 기구를 통해 냉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잘못된 정부 정책을 질정(叱正)할 때다.

이중남 젊은부처들 정책실장 dogak@daum.net
 


[1353호 / 2016년 7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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