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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속이지 않고 꼿꼿이 진리의 길 걸었던 시대의 스승

  • 집중취재
  • 입력 2016.07.26 15:47
  • 수정 2016.07.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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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평전 연재회향 좌담

▲ 왼쪽부터 남배현 모과나무 대표,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 김택근 작가. 남배현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서 경선 스님과 김택근 작가는 성철 스님이 본연의 자리를 지키며 불교를 한 단계 높였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75주간 매주 연재됐던 ‘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이 법보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회당 1만회 안팎을 상회하는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마무리됐다. 성철 스님이 열반하신지 2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스님이 남긴 가르침과 행적이 크고 또렷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열혈 독자이자 3년간 성철 스님을 시봉한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과 평전을 쓴 김택근 본지 고문, 평전을 출간할 남배현 모과나무 대표가 7월15일 오후 부산 범어사에서 연재회향 좌담회를 가졌다. 편집자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뜻을 받들어 모시는 것은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이 사회에 온전히,
이 시대에 가장 잘 구현하는 일입니다. (남배현 대표)”

“성철 스님은 진리 하나를 보고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그 첫 마음을 끝까지 유지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경선 스님)”

“종단 밖이 아닌 내부를 향해 죽비를 들었습니다.
보다 먼 곳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스님의 유훈이 절실합니다. (김택근 작가)”

 

남배현(이하 남) : 75주간 언론에 성철 스님의 평전을 연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합니다. 평전을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던 것은 김택근 작가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선 스님께서도 매회 빠짐없이 연재를 읽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선 스님(이하 스님): 꼼꼼히 읽다보니 제 행자시절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처음에는 그냥 읽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별도로 신문을 모아 읽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래서 책으로도 나온다면 꼭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 : 스님께서는 3년 동안 성철 스님을 시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 :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천제 스님이 계실 때였습니다. 1963년이었지요. 파계사 성전암으로 출가했는데 그때 있었던 행자 중에 성일 스님, 만수 스님, 천제 스님 그리고, 당시 제 법명이 만연(曼衍)이었습니다. 53년 만에 밝히는 내용입니다.

김택근 작가(이하 김) : 경선 스님께서 그때 그곳에 계셨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 : 15세에 파계사로 입산했는데 5개월간 주지스님을 모시다가 성전암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성철 스님은 성전암에 철조망을 치고 10년 장좌불와 중이셨습니다. 제가 성전암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올 설에 방장스님께 했는데 깜짝 놀라시면서 물어보셨습니다. 성전암에서 성철 스님을 모시고 직접 살았으니까, 주변에서도 알고는 놀라워하며 그 당시 일을 물어보곤 합니다.

김 : 나중에는 문경 김용사로 성철 스님도 거처를 옮겼는데 함께 생활하셨던 일상은 어땠습니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봉암사와 비슷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 : 그렇습니다. 당시 행자였지만 저녁에는 으레 참선해야 하고 새벽에는 3~4시까지 예불하고 공양 전까지 참선하고 그랬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서 있어도 졸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김 : 어떤 일을 주로 하셨나요?

스님 :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다 했습니다. 잘하면 잘했다 해서 칭찬한다며 3000배하라고 하시고 못하면 못한다고 벌로 3000배를 했습니다. 3000배는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3년 동안 파계사 성전암에서도 그랬고 김용사에서도 그랬습니다.

남 : 그런 지중한 인연이 있어서인지 연재에 감회가 더욱 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전을 읽으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스님 : 행자시절의 일상을 혼자 다시 상기하는 것보다는 ‘아, 성철 스님 모시고 이렇게 생활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해준 연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더욱 반가웠습니다.

남 : 연재가 성철 스님의 삶과 사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근대 불교사 역시 폭넓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연재를 위해 법어집은 물론 ‘선림고경총서’, 관련 논문, 기사, 조계종 근현대사를 섭렵한 것으로 압니다. 불필, 천제, 원택 스님을 비롯한 제자들도 많이 만나셨습니다. 연재를 위한 고증이나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 : 큰스님 가르침이 혹여 왜곡될까 항상 조심스럽고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매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1년 정도 예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상 취재를 하고 이분이 그 당시에 왜 이런 생활을 했는가, 봉암사만 하더라도 왜 봉암사로 가셨는지 추적을 하다 보니 당시 시대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행적들을 입체적으로 추적하다 보니까 길어졌습니다. 연재가 1년6개월이 걸렸는데 서둘러 끝낸 감이 없지 않습니다.

남 : 성철 스님의 행적 중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 : 대원사에서 처음 출가하셔서 41일 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가 되었을 때, 그때의 경이로움 그리고, 봉암사에서 여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부처님처럼 살아보자’라는 기치 아래 모든 사람들이 결사에 함께 해 제대로 살아봤던 그 분위기, 또 아버지와 속가 인연이 찾아와서 성철 스님과 상봉하는 장면들은 글을 쓰면서도 상당히 울컥하게 했던 대목입니다.

스님 : 그러한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감동적이었던 장면이 많습니다. 성철 스님 같은 경우는 딸까지 출가를 시키셨지요. 아버지가 아들 성철 스님의 ‘살생하지 말라’는 말에 복수심으로 경호강에 그물을 쳤는데, 모친이 그물을 걷게 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결국 성철 스님의 보살님과 따님도 출가를 하셨지요. 성철 스님이 향곡 스님을 공부하게끔 만드는 기연도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편지를 띄우게 됩니다. “만약에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결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내가 불을 지를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향곡 스님은 “진짜 안 오면 불 지를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동참하게 됩니다. 또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대문 밖에 내치고 하는, ‘공부할 수 있는 기연(奇緣)’을 만들어주는 것은 매우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인홍 스님에게도 겨울에 얼음이 언 못에 빠트려 기연을 만들어주었던 일, 혜춘 스님 같은 사람 등 기연을 통해 수행하게끔 만들어 주신 대목은 선지식으로서 탁월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읽을 때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남 : 스님께서는 직접 성철 스님을 모셨는데 스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스님 : 지금도 성철 스님의 기백이 생각납니다. 부처님오신날 교회에서 찬송가 부르는 부처님, 공장에서 망치치는 부처님, 법당에서 염불하는 부처님, 전부 부처님으로 보는 안목을 보면 마음속에는 항상 훌륭한 스승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저에게 항상 힘든 일을 시키던 스님이었지만 돈오점수(頓悟漸修)라든지 돈오돈수(頓悟頓修)라든지, 옳고 그름을 떠나 정말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신 부분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께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3000배를 시키신 것과 언론 관계자를 만나 무엇을 더 이야기할 것이 있는가 하신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저 경전에 있는 이야기가 전부이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을 산으로 볼 줄 알고 물을 물로 보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볼 줄 아는 그 놈이 주인공인데 다른 것 찾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 속에서 오히려 더 넓고 큰 세계를 보고 계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 경선 스님과 김택근 작가, 남배현 대표 등이 7월15일 부산 범어사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남 :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도 항상 청규로 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면목을 잊지 않는 가르침이자 청규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합니다.

스님 : 그렇습니다. 스님께서 일상에서 보여주신 모습, 변함없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율사라고 자칭한 적은 없으셨습니다.

김 : 연재를 하면서 꾸준히 그분의 행적과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니 진리를 위해 살아가겠다고 서원을 세우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열반 때까지 수행자로서의 생활을 하셨다는 부분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선승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그러한 부분이 매우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진리를 위한 삶, 저는 그 부분이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스님 : 사실 성철 스님은 상상근기(上上根機)라고 생각합니다. 진리 하나를 보고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을 떠올리면 사회적인 관계, 부자지간, 부녀지간 관계까지 진리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신 대목 그 자체가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일생 동안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상의 모습은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범부가 따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첫 마음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남 : 두 분 말씀을 듣다보니 성철 스님께서는 구도의 길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선지식이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의 평전을 쓰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전도 쓰셨는데 성철 스님 평전을 쓰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 인연이 아닐까요. ‘경향신문’을 그만두었을 때 동쪽나라 김형균 선배께서 성철 스님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해서 40~50매 정도 분량의 원고를 써서 보냈습니다.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선배님과 성철 스님 행장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수락을 하고 작업을 한 것이 4년 동안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교의 세계를 잘 몰랐는데 쓰다 보니까 알수록 빨려들고 해서 지금은 만약 불교를 모르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되묻곤 합니다. 저에게는 너무도 귀한 기회이자 인연이었습니다.

남 : 성철 스님 연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김 : 매주 연재를 하다 보니 매번 쫓기는 겁니다. 증언하실 분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으시고 그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철 스님께서 남긴 저서 전체를 읽고 스님과 관련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한 작업을 하다 보니 일체 다른 일을 못할 정도로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돌아보면 참으로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남 : 성철 스님과 관련한 책은 많지만 평전으로 연재가 마무리 되고 책으로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성철 스님의 평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 : 평전의 경우 그분의 삶 이상으로 더 좋아졌을 때는 괜찮겠지만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는 그것도 하나의 걱정거리가 될 듯합니다. 잘 마무리를 해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삶을 올곧게 전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이왕이면 누구나 읽어서 성철 스님이 국민적 스승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불자가 아닌 분들에게도 성철 스님에 대한 기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남 : 평전을 마무리 하셔야 할 작가님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김 : 저는 여러 가지로 부족합니다. 물론 성철 스님의 삶이 구도소설로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평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분들도 평전을 쓰고 싶었지만 평전으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상으로 쓸 수 있지만 평전은 사실에 입각해야 되니까, 그런 부분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의 생애를 사실에 바탕을 두어 입체적으로 구성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성철 스님이 갖고 계신 수행의 미담들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 : 1947년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발원 아래 봉암사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선지식과 고승들께서 동참하셨습니다. 봉암사 결사가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앞으로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김 : 그간 스님의 구도나 깨달음, 열반을 보았을 때 고비마다 성철 스님의 역할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불교계와 불교 밖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왜색으로 한국불교가 물들어 있을 때 홀연히 일어나 왜색을 뿌리치고 우리 고유의 승풍을 회복한 것이나 정화불사라는 거대한 태풍이 불었을 때 성철 스님은 성전암에 들어가셔서 또 다른 불사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또 다른 불교를 구해낸 부분이 있었습니다. 종정이 된 이후에도 불교가 세속화되면 안 된다고 주창하시면서 본연의 자리를 지키며 산승이 되어 승려들을 경책하고 승려들의 나태함을 꾸짖으면서 또 한 번 불교를 한 단계 높였습니다. 돌아보면 종단 밖이 아닌 내부를 향해 죽비를 들었습니다. 가혹할 정도로 스님들을 나무라며 맑고 깨끗해지라고 일렀습니다. ‘참으로 부족한 너희들이 그리고, 정화되지 않은 한국불교가 과연 이 사회를 꾸짖을 수 있느냐’는 호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다 먼 곳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의 생애는, 감히 제 생각엔 성철 스님이 생각하는 정도의 청정수행 가풍이 확립되지 않은 불교계와 사회에서는 여전히 스님의 유훈이 절실하고 그 말씀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스님 : 그렇습니다. 사실 은사스님께서는 정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정진하셨는데 본인은 자기 일만 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그 깊은 뜻은 성철 스님 본인만은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각자의 수행을 철저히 하는데 진정한 정화의 참의미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이 확신으로 변하게 됩니다. 정화한 지 50년이 다 되었는데 ‘정화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꾸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펴볼 때 그 당시 진정한 정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거듭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화를 진정으로 계승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남 : 경선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보니 스님의 평전이 이 시대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스님 말씀처럼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뜻을 받들어 모실 때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이 사회에 온전히, 이 시대에 가장 잘 구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문이기는 하나 성철 스님께서 이 시대에 다시 현신하신다면 어떤 가르침을 내리셨을까 궁금합니다.

스님 : 걱정은 많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중이 더불어서 동참을 해줘야 합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성질도 급한 분이셔서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내셨을 겁니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처님께서 훌륭하셨지만 많은 중생을 다 제도하시지 못하셨던 것처럼 안타까워하시리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지치지 않고 원력을 세워서 ‘이 일은 반드시 해야 되겠다’며 내외적으로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발원을 했으면 부처님 법대로 끝까지 해보라 이르셨을 겁니다. 

남 : 1년 반 동안 평전을 연재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이서 성철 스님을 연구하고 모셨는데요, 작가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김 :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오신다면 여전히 3000배를 시키고, 여전히 자기를 바로 보자고 하시고, 여전히 남모르게 남을 돕고, 남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셨을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스님께서 깨달으신 다음 무량불사로 실천하신 가르침입니다. 생전과 같이 늘 참회하면서 남을 위해 살자고 하시면서 백련암에서 (밖으로) 나오시지 않고 사실 것 같습니다.

스님 : 그럴 겁니다. 그 고집이 어디 가겠습니까? 그렇게 평생을 사시다가 가셨는데 어디 바뀌겠습니까? 김택근 작가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김 : 그리고 그것이 큰 어른으로서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큰 힘이었고 큰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봅니다.

스님 : 맞습니다. 저도 그것이 바로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 : 성철 스님의 ‘부처님 법대로 살자’, 불기자심(不欺自心,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은 우리 불자는 물론 우리 시대에도 항상 절실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성철 스님의 평전을 스님의 가르침과 일생의 수행을 담아 바르게 편찬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철 스님과 스님을 기억하는 모든 분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평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스님 : 평전 회향을 잘 마무리하셔서 성철 스님의 깊은 뜻과 가르침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면 평전이 곧 이 시대에 스승이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남 : 책을 만드는 방식은 법회와 불사를 원만히 진행하기 위한 방식인 설판(說辦)과 같이 진행하려 합니다. 보다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십시일반 나눔을 실천해 성철 스님의 평전을 출간하기 위한 설판을 구성할 계획입니다.

스님 : 저도 수희 동참하겠습니다. 성철 스님과의 인연과 더불어 지금 이러한 만남도 인연차 공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인연복전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합니다.

정리=주영미·최호승 기자


[1353호 / 2016년 7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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