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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두 날개만으로 날아가는 새처럼

기자명 이미령

“여행은 출가 흉내 낼 수 있는 대단한 기회”

▲ 일러스트=강병호

누군가가 저 하늘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면, 푸하하 웃음을 터뜨릴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한쪽에서는 슬픔에 겨워 깊이 탄식하고, 한쪽에서는 죽이겠다며 총을 쏘고, 한쪽에서는 살려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한쪽에서는 집으로 돌아가고, 한쪽에서는 집을 떠나고 있습니다.

여행 주제 원고 청탁하니
죽음과 연관짓는 글 많아
모로코 여행 앞두고 설레
여행지에선 모두가 이방인
새처럼 자유롭게 다녀올 것

스님, 휴가철입니다.

처음에는 휴가의 ‘가’라는 글자가 집 가(家)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쉰다’는 뜻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틈 가(暇)였어요. 빡빡한 일상에서 잠시 틈을 내어주는 것이 휴가였지요. 아하,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저는 지금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11일 일정으로 모로코를 다녀오려고 해요. 여행을 앞두면 가슴이 설렙니다. 그런데 이 설렘은 처음과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이국땅을 밟는 것 자체가 설레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외국여행을 하다보니까 정작 이국에 도착해서는 더 이상 ‘심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쉴 틈 없이 빽빽하게 굴러가는 일상에 틈을 내어 훌쩍 떠난다는 ‘사건’ 그 자체가 제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여행을 떠나려 할 때면 늘 생각나는 글귀가 있습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빨리 죽을 수밖에 없다.”

‘야간열차’라는 책을 쓴 프랑스 작가 에릭 파이의 말이랍니다. 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꽉 짜인 세상 밖으로 달아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 글귀에 홀랑 마음을 빼앗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독일인 알피니스트 라인홀트 메스너는 길고 긴 산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던 중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와 소파에 쓰러져 한참을 울었다고 하지요. 목숨을 걸고 산소가 희박한 고산을 단독으로 오르는 여행길, 너무나 고생스런 길이었기에 한 번 다녀온 뒤에는 두 번 다시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테지만 또 다시 배낭을 꾸리는 자신의 운명이 어쩐지 서러웠을 겁니다. 이 알피니스트는 울면서 등산배낭을 꾸렸고 그래도 산에 오릅니다.

여행이란 게 이러네요. 떠나본 사람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몇 해 전, ‘여성불교’에서 제게 원고청탁을 했습니다. 주제는 ‘여행’이었고, 여러 필자들이 같은 주제로 글을 실었지요. 그런데 편집자인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여행이란 주제로 글을 부탁했는데, 보내오신 글들을 보자니 필자들이 대체로 죽음과 관련을 짓고 있더군요. 참 신기했어요.”

여행 짐을 꾸리는 과정이 마치 삶을 마치는 자의 행장과 같다는 글을 쓰면서 그것이 나만의 심오한 여행철학인 양 생각했는데 그 친구의 말을 듣고서 괜히 민망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모두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을 죽음과 연관 짓고 있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멋지게 관광하고 돌아오면 되는데 왜 그런 어두운 생각들을 다들 했던 것일까요? 어쩌면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풀려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느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구를 떠받치고 있어야 했던 시시포스처럼 일상이라는 짐을 한시도 내려놓지 못하고 숙명처럼 버티다가 어느 날 홀연히 몸을 빼낼 때, 그것이 글쟁이들에게는 죽음처럼 느껴졌을 테지요. 그만큼 우리는 일상에서 놓여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스님들은 참으로 강단이 세신 분들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저는 유통기한이 십년도 훌쩍 지나버린 립스틱 하나, 몽당연필 하나도 버리지 못해서 서랍 속에 그대로 쌓아두고 있는데 스님들은 세속의 그 숱한 것들을 어찌 그리 초연히 버려두고 떠날 수 있었을까요? 참으로 엄청난 전생의 인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인생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행을 죽음과 연관 짓는 것은 가방을 꾸리는 과정에서 오는 깨달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노련한 여행자일수록 가방 속은 단출하지요. 웬만한 것은 없어도 살 수 있고, 정말 필요하면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니까요. 여행 가방에 넣어갈 것들의 목록을 적어가다 보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달랑 가방 한 개가 소유물의 전부인 인생이 되어보는 것이 여행이라니까요. 무소유을 지향하는 스님들에게는 그것도 많다 싶으시겠지만 우리 같은 재가자들에게는 그건 엄청난 일이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여행은 어쩌면 재가자가 ‘출가’를 한 번 흉내내보는 아주 대단한 기회일 수도 있겠네요. 없는 채로 살아보기, 그리고 그동안 챙겼던 직함은 전혀 통하지 않고 그저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 던져지는 것이 여행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불설무량수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세상 사람들은 온갖 물건이 다 갖춰지지 않은 것을 걱정해서 이것들을 가지려고 애면글면하고, 그러다 하나를 갖게 되면 다시 하나가 부족해지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적어 언제나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한다”라고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라는 구부득고(求不得苦)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해요. 죽을 때까지 가지려고 애를 태우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죠.

‘맛지마 니까야’의 27번째 경인 ‘코끼리 발자국 비유에 관한 짧은 경’을 보면 부처님을 가리켜서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배고픔을 지울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하며, 어디든지 필요한 물품만을 몸에 지니고 다니시니 마치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신의 두 날개만을 지니고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우리 부처님은 새처럼 자유로우셨다네요. 상상만 해도 홀가분해집니다. 얼마나 소유를 줄여야만 새처럼 두 날개만 가지고 그 즉시 어딘가로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스님, 이번 여행은 한번 두 날개만 가지고도 온 세상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떠나볼까 해요. 가급적 더 줄이고 줄여서 아주 가볍게 말이지요. 어쩌면 다음 편지는 여행지에서 부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안하시길. 이미령 두 손 모으고.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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