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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키워드 만들기와 스토리텔링 ③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가르침

루소는 ‘마음’을 자연발생적인 거라고 보았다. 인간의 자연성을 강조한 점에서 불교적이다. ‘고독한 산책인’ ‘고독한 사색인’으로 불렸던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파했다. 그는 섬에서 찬란한 빛에 몰입돼 황홀감을 느끼던 순간, 고통의 늪은 타인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그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늘은 인위적 의식과 부조리의 소산물이다. 그래서 인위적 것을 버리고 마음의 원천인 고향,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역설했다.

성인들, 스토리 담긴 설법으로
마음에 위안·삶의 이정표 제시

우리는 가열차게 서구화를 위해 달려왔고 산업화와 서구적 삶과 학문의 그늘만큼 자연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그늘의 파생상품의 일원이 된 우리는 선과 악, 위와 아래, 부와 가난 등 대립적 수직적 사고방식으로 마음과 세상을 갈라놓았다. 현실공간은 가상공간과 혼재돼 공전한다. 컴퓨터는 0과 1의 길밖에 모른다. ‘ㄱ’은 ‘00001’로 표기한다. 우리는 이런 이진법 세상에서 마음의 길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다. 컴퓨터 사이트를 여는 순간, 이메일 아이디를 입력하려는 순간부터 무엇을 먼저 클릭할까? 어느 길로 가야 하나? 디지털시대 또 하나의 자화상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음, 그 참된 마음, 맑은 마음을 찾아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법구경’은 “잡초를 뿌리 째 뽑아버리듯 욕망을 뽑아 버려라. 그리하면 거센 물살이 갈대를 쓰러뜨리듯 마라(악마)가 그대를 쓰러뜨리지 못하리라”고 일러준다. ‘소부경집’에서는 “모든 속박을 끊어 버려 두려울 것이 없는 자, 매듭을 풀어 자유로운 자, 이러한 자를 성자라 부른다”고 했다. 부처님은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 했다. 나를 돌아보고 계율을 등불 삼아 살아가란다.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란다. 그러니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心則佛 佛則心)”이다.

성철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지만, 그 내용은 모두 마음 심(心)자 한 자 위에 놓인다. 마음의 문제만 옳게 해결하면 일체의 불교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체 만법을 다 통찰할 수 있다”고 했다. 구약성서 잠언에서도 “자기만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고 했다. 사서삼경 ‘대학’에서는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두 발로 걷는 직립인간이다. 두 발, 두 눈, 두 귀로 ‘마음’의 균형을 잡으면서 수평적 삶을 지향한다. 두 발로 어디로 갈 것인가? 두 눈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두 귀로 무엇을 들을 것인가? 시소처럼 그네처럼 움직이는 두 마음의 무게 추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을 오간다. 알고 보면, 산다는 것은 마음의 추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일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행복의 집을 짓는 여정이다. 설법은 그런 여정으로 가는 길라잡이이다.

살다보면, 막연한 두려움 혹은 후회로 가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회도 추억으로 보듬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늦게 시작하는 일을 새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있다. 이 마음과 저 마음은 다르지도 크지도 않으면서 단지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생각, 그런 마음으로 인도하는 희망찬 항해자이자 길동무의 역할이 진정한 설법의 길이리라. 인생 길 마다 갈등과 반전, 도전과 응전의 변곡점이 있다.

시인 프로스트는 그런 길 위에서 마음의 위안과 삶의 이정표를 찾았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다시 가는 길은 늦은 게 아니라 새로 가기 위해 남겨둔 길이라는 프로스트는 시골학교 교사와 신문기자를 전전하다 늦깎이 시인으로 데뷔해 하버드대 교수가 되고 저명시인으로서 이모작인생에 성공했다. 이런 스토리텔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 설법이고 그런 아름다운 동행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파크 파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가르침은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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