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 보리선수 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42. 성공의 진행방식 ②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8.09 11:17
  • 수정 2016.08.09 13:09
  • 댓글 0

물처럼 흐르되 인생서 겪는 수많은 걸림돌을 주춧돌 삼아야

 
대단히 무례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어리석고 무식해. 저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고, 지나치게 못생겼어’라고 비판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전체적으로 그들의 결점만을 보는 것입니다. 혹은 분명히 결점이 아닌데도 억지로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떠한가요? 자신만 옳고 자신만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아니었나요? 사실 누구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원인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은 스스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붉은 것은 붉게 보이고 푸른 것은 푸르게 보입니다. 또한 사각형은 네모나게 보이며 긴 것은 길게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네모난 것이 납작하게 보이고, 둥근 것이 네모나게 보인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에 북방 사람들의 음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잡곡과 국수입니다. 옥수수, 밀, 쌀, 콩 등은 모두 하나같이 단단한 것들로 이것들을 그냥 먹거나 볶아서 먹는다면 먹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물에 넣고 삶으면 곡식은 부드러워져 먹기 편해집니다. 예를 들어, 옥수수를 물에 삶으면 보통 먹기 좋아하는 옥수수이고 더 오랜 시간 삶으면 알갱이는 문드러져 그 형체가 사라집니다. 옥수수 알갱이가 물에 융화되어 맛있는 옥수수 수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종의 융합이고, 다른 것과 결합하여 만들어 낸 변화의 결과입니다. 만약 딱딱한 옥수수에만 집착하여 물에 융화시키는 것을 소홀히 하면, 마치 맨밥을 먹고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아서 부드럽게 소화되지 않습니다.

음식을 예로 들어서 집착에 관해 말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은 마땅히 새로운 사유방법을 배우기 바랍니다. 예컨대 과거에 옥수수 알갱이처럼 단단한 것에 집착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활 속에 물을 좀 넣어 보라는 것입니다. 딱딱한 옥수수 알갱이라도 물과 융합하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인화(人和, 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함)를 이룬다면 원하는 인생으로 성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런 물의 성질을 배워, 절대로 자기 자신에게 “나는 어떤 성격이다”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물은 변화하고 형체가 없지만, 성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의 정신을 배워서 자기의 모습과 태도를 너무 고정시키지 않고 물처럼 만물과 융합하고 만물을 길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은 그 상태는 변할 수 있습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기체로 변하는데 나쁜 것 같지만 사실은 승화한 것이고, 낮은 온도에서는 얼음으로 변해 자기를 보존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물의 특징을 배우길 바랍니다. 승화하여 수증기가 되든지 응고하여 결정체가 되든지 간에 상태는 변하지만 그 성질을 잃지 않는 물은 모두 배워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앞서 저는 천시, 지리, 그리고 인화의 결합을 통해 인생이 완전하고 원만해지며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사업뿐만이 아니라 자녀 교육과 같은 가정일이나 사회생활에까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자기 자신에게 어떤 특정한 꼬리표를 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땅에 금을 그어 놓고 자기를 그 속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심을 우리의 영혼과 성공의 뿌리로 삼는 것입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그리고 사오정 중에 사실은 삼장법사가 가장 무능한 인물입니다. 설법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결국은 가장 높은 정과(正果)를 성취했습니다. 그럼 그의 남다른 특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높은 자비심을 가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 해도 자비심이 없다면, 어떤 일을 하든 부족함을 남기거나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행한다면 비로소 우리가 완전하고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으며, 또한 포용하여 더욱 위대한 사업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세계를 돕고자 한다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계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더욱 힘차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욕심만을 성취하려고 하면 쉽게 자기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타이완에 있는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에는 정옌(證嚴)이라는 대단히 훌륭한 스님이 계십니다. 한 명의 비구니가 서양종교 자선 사업의 영향을 받아 늘 사회 약자에게 경제적으로 혹은 실생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발을 만들고, 털옷을 뜨는 일부터 시작하여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제공덕회는 전 세계에 있는 중국인 자선단체 가운데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여자로서, 출가한 스님으로서 이렇게 커다란 자비심으로 이 세계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바로 커다란 자비와 관대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비로소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큰 사업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물의 성질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모습과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평소에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노력하며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기회를 만나면 그것을 충분히 파악해야만 창조적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 수련생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어떻게 해야 과거의 일을 잊고 내려놓고 잊을 수 있을까요?”
“그대는 늘 과거의 즐겁지 않았던 일을 회상하는가?”
“즐거웠던 일과 혹은 즐겁지 않았던 일, 모두를 생각합니다.”
“즐겁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자신이 더 즐겁지 않을 텐데?”
“그렇습니다. 과거에 잘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아주 유감스럽게 느껴집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그런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네, 그렇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지 몰라 더욱 더 괴롭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는 잡을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다고 했네. 이미 지나간 것은 마치 죽은 것과 같으며, 미래의 것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니,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와 커다란 관계가 없네. 우리들이 유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라네.”

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때 그 일을 그렇게 처리한 것이 정말 후회된다. 그렇게 엉망으로 처리하다니.”

이런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역시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괴로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어찌하여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까요? 바로 이것이 가장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유감스러운 일을 지금은 정확하게 똑바로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시 비슷한 일을 만나면 조심하여 같은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고뇌를 반복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하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이 아무리 유감이었거나 즐거웠다 하더라도 모두 지나간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지나간 일에는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젊은 시절에 늘 나도 모르게 소중한 인연이나 일들을 흘려버렸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만약 그 시절에 그러한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영원히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번뇌가 바로 보리(菩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장애와 고통, 유감과 빈곤은 모두 우리들의 마음과 의지[心志]를 단련시켜 주고, 우리들의 인생을 더욱 크고 충실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좋았던 기억은 비교적 쉽게 잊어버리지만 반대로 좋지 않았던 일이나 마음 아팠던 일들은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둡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표면적으로는 부정적인 기억이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마치 농부가 뿌린 비료와 같은 작용을 하여 우리를 성장시키고, 튼튼하게 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인생에 경종을 울리는 작용을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곤란과 번뇌는 사실 우리를 성장시켜 주는 긍정적인 힘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번뇌가 바로 보리(菩提)다”라는 이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들의 고통이 어떻게 지혜이고 깨달음일까요? 마음을 가다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번뇌는 우리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게 하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타이완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취두부(臭豆腐)’를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그것이 대단히 향기롭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취두부’는 두부를 발효시킨 음식으로, 타이완에서는 누구나 쉽게 즐겨먹는 아주 유명한 음식이지만 처음 그것을 접하는 사람은 그 독특한 냄새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게 맛있다면 저도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타이완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취두부’ 한 접시를 먹어보았습니다. 그러나 한입 먹어본 저는 곧바로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걸 어찌하여 타이완 사람들은 좋아할까?’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이미 ‘취두부’의 냄새에 익숙해져서 도리어 향기롭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아무리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즐겨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취두부’를 처음 대한 사람에게 그것을 권하면, 그들은 냄새만 맡고서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이런 고약한 물건은 어디서 가져 온 거야? 이런 걸 먹으라니 누굴 해치려고 장난하나?” 그러나 타이완 사람들은 도리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취두부를 나눠주다니. 정말 마음씨 좋은 사람이구나.” 이렇듯 같은 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우리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안 좋았던 일이 지금에 와 보면 꼭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셨을 때에 충분히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잘 쉴 수 있었거나 제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더라면, 저는 10여년 동안 수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여러분에게 수행 방법을 전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며 여러분도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과거에 제가 경험했던 고통과 가난은 결국 저에게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인의 눈으로 보면 모든 일은 좋은 일이 될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니면 모두 나쁜 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성공과 실패는 모두 우리 인생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이를 잘 응용하고 파악하면, 당신은 원래의 한계를 뛰어넘어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인생’중에서 (번역:권중달)
보리선수 약사선원 T.1661-0803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