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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더위는 죽비다-상

기자명 김용규

편리와 방만한 삶이 가져온 인류적 위기

지난 두 주 동안 어떠셨는지요? 잠은 잘 이루셨는지요? 저는 도시와 숲을 오가며 여기저기 강의를 했는데, 머무는 곳이 어디든 잠을 설치는 밤들이 많았습니다. 한낮은 물론이고 밤까지도 너무나 무더워 뒤척여야 했던 밤이 많았습니다. 도심 속의 숙소는 말할 것도 없고 산방에까지 열대야가 찾아온 날이 몇 날 있을 만큼 이번 여름의 무더위는 맹렬했습니다. 십여년 전 내가 숲으로 처음 들어온 그 시절, 나는 선풍기 한 대 없이 3년의 여름을 거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자노라면 삼복의 더위에도 새벽에는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려 덮어야 할 정도로 밤공기가 서늘했습니다. 하지만 4년째 되는 해 나는 선풍기를 장만해 여름의 낮을 나야 했습니다.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날 수 없다는 도시 사람들의 푸념에 상관없이 숲에 사는 나는 다행히도 작년까지 그렇게 반 십 년을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의 한낮을 버티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두 주 동안 한밤의 열대야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를 잠시라도 틀고 잔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선풍기를 처음 들여놓던 육칠년 전, 나는 점점 더워지고 있는 여름을 걱정했습니다. 숲에서 선풍기 없이도 거뜬히 여름을 살 수 있던 날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구 온난화가 이미 아주 심각한 상태로 진행하고 있음을 한 인간의 일상에까지 알리고 있는 심각한 징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불길한 예감은 몇 해 동안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선풍기를 꺼내놓는 시기가 점점 빨라졌고, 급기야 올해는 밤에도 몇 번 선풍기를 틀어야 했으니 말입니다. 나는 지난 2주 동안 이러다가 멀지 않은 장래에 이 숲 속의 산방에 까지 에어컨을 들여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나는 점점 더워지고 있는 이 여름의 징후들을 진실로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해마다 겪고 있는 이 무더위를 이 지구가 인간들을 향해 내리치는 죽비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가이아’라고 불렀습니다. ‘가이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름한 ‘대지의 신’입니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단순히 거대한 물질덩어리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살아있는 거대한 유기적 존재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방점은 지구는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생물과 무생물은 물론이고 공기와 물의 영역들까지 서로 연기적(緣起的) 관계와 순환의 질서 위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는 살아있는 행성이 바로 지구라는 것입니다.

러브록의 주장은 이를테면 오장육부로 이루어진 우리 몸이 우리 몸 밖은 물론이고 몸 내부의 기관과 세포, 조직까지도 서로 긴밀하게 관계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의 질서 속에서 작동하듯이 지구 역시 그러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술을 마실 때 좁게는 우리의 간과 심장과 혈관과 뇌 등에 영향을 주고 넓게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듯 지구에서 물질을 소비하는 생명의 활동이 다시 지구의 대기와 수질과 토양 등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마침내 다시 생명을 미치는 연기적 관계와 순환의 질서를 따르고 있는 것이 지구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농사를 위해 질소비료를 많이 쓰면 그 농작물은 더 푸르고 실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료는 작물은 물론이고 흙과 물, 그리고 공기, 그리고 다른 생명에게도 동시에 작동하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작물은 일반적으로 살포한 비료의 1/4정도만을 흡수합니다. 나머지는 토양과 수질과 대기로 흩어집니다.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다한 비료의 사용은 당연히 수질과 대기에 영향을 미칩니다. 비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은 물을 흐리고 온실가스로 전환하며 지구를 더욱 덥게 만듭니다. 내가 소비하는 종이컵 하나 역시 지구에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차로 이동하며 사용한 연료 역시 그렇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 내가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 역시 지구 가이아의 연기적 관계와 순환 위에 놓여 있습니다. 숲 속 산방의 밤마저 이제 선풍기를, 나중에는 에어컨을 틀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결국 나와 당신이 살아가는 편리와 방만의 방식이 먼 길을 돌아 지금 우리에게 죽비로 내리치고 있는 현상인 것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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