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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조오현의 ‘취모검 날끝에’

기자명 김형중

출가수행자 투철한 구도심
담박하고 거침없이 노래해

놈이라고 다 중놈이냐
중놈 소리 들을라면
취모검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그 물론 손발톱 눈썹도
짓물러 다 빠져야

수행은 매일 되풀이 하는 훈련
백천 번 죽었다가 살아나봐야
대중을 향해 설법할 수 있어

아들 김문수가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깊은 회의와 불안 속에서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감당했다. 탈모증상이 생기고 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때 오현 큰스님의 ‘취모검 날 끝에서’이란 시를 추천해 주었다.

우리 부자는 수많은 밤을 자신과 싸워서 넘어지고 찢기고 문드러져서 아픔과 기쁨에서 더 이상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경지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이 품은 뜻도 이룰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광 동국대 이사장 스님이 1980년 5사단 군종법사로 근무할 때 삼청교육대에서 한밤중에 현역군인과 순화 훈련생 사이에 총기난동사건이 일어났다. 사장단은 자광 스님의 설법에서 임진왜란 때 생사를 초월하여 나라를 구한 호국대성사 서산대사에 대한 감동적인 법문이 생각나서 훈련생을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자광 스님은 하얀 러닝셔츠를 입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따라 총탄이 쏟아지는 훈련생의 막사를 향하여 걸어갔다. 그들은 “오지 마세요. 법사님! 쏩니다.”하고 외쳤지만 ‘어머니 은혜’를 부르며 당당하게 나아가자 총소리가 멈춘 일화가 있다.

생사가 일여라고 설법하는 스님이 생사의 기로 앞에서 벌벌 떨기만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수행자가 재물과 여색을 탐하는 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아픔보다도 더 무섭다”고 설법하면서 거기에 얽매어 킹킹거리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보기에 흉한 모습이겠는가?

출가 수행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서 부처가 가신 길을 쫓아서 길을 선택한 충천 대장부이다. 그래서 불자로부터 삼보의 예경을 받는 것이다. 거룩하고 멋진 삶이다. 목숨을 거는 일은 아무나 할 있는 일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선객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취모선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참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구도수행이란 긴 훈련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반복훈련이다. 무문관에 입문하여 3년·9년·죽는 날까지 두문불출하고 참선하는 수행은 밖의 세상에서 볼 때는 죽은 사람이다. 백천 번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손톱발톱이 문드러지고 머리털과 이빨이 다 빠지고 새로 돋아나야 살아서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래야 대중을 향해 설법을 할 수 있는 선지식이 된다.

이 시는 출가 수행자의 투철한 구도심을 담박하고 거침없이 노래한 ‘수행가’이다. 취모검이 살아서 춤을 추니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준다. 이렇게 스님들이 수행한다면 세상을 구할 천하 인봉용상의 선지식이 기라성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참된 수행자가 되려면 만해의 시 ‘찬송’에서 노래한 것처럼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가 되어야 한다. 문둥이처럼 세상의 버림도 받고 스스로 자신을 버리고 비우기를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해야 무생법인을 얻은 도인이 될 수 있다.

필자가 무산 오현 큰스님의 시를 읽고, 스님을 생각하면서 ‘진문둥이(오현 스님의 -취모검 날끝에-를 읽고)’란 시를 썼다.

‘식객(食客)의 달인이 되려면/ 식칼에 손가락 하나쯤은 잘라내야/ 공주님 손 가지고는 어림없지/ 영험 있는 무당 소리 들을라면/ 작두에서 춤을 추다가 발가락 한두 개쯤은 잘라내야/ 살금살금 걷다가는 어림없지/ 아침에 일어나 밥 먹다가 손가락 하나 떨어져 나가고/ 저녁 때 자다가 발가락 하나 떨어져 나간 문둥이가 되어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죽고 사는 일에 마음이 변화가 없어야 진문둥이지’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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