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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헌종법에 율장 정신 담아야

올봄 조계종은 총무원장 선출제도로 어느 때보다 쟁론이 뜨거웠었다. 그리고 현재 그 쟁론은 학자들간에 율장의 유·무용론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의 총무원장 선출제도 브리핑자로서 전국의 사찰을 다녔으며, 총무원장 선출제도에 대한 중립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직선제를 대변하는 것으로 오인 받아 중앙종회에서 곤욕스러운 일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 사찰에서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브리핑하면서 무엇보다 아쉬웠던 일은 이런 개인적 곤욕이 아니라 한국승가가 율장을 현대사회에서는 지킬 수 없는 규범으로 아예 단정해버리고는 종헌종법에만 근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모습이었다.

율장, 혹자는 승가 행동준칙의 최고 전거(典據)로, 혹자는 현대승가의 무용지물로 이야기한다. 전자는 율장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승가의 근본생활규범이라는 입장인데 반하여, 후자는 율장을 2600여년 전 인도승가의 생활준칙으로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생명력이 끊어진 오래된 문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는 한다. 그리고 율장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종헌종법을 현대사회에서 율장을 갈음하는 승가의 규범이자 준칙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종헌종법이 승가의 규범이자 준칙이 되기 위해서는 여법성(如法性)을 갖추어야만 한다. 세속의 경영조직, 행정조직이 아닌 출가집단, 수행집단으로서의 승가 규범을 우선 담아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거는 세속조직의 헌법과 법규가 아닌 출세간 조직의 율장에서 찾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필자가 어떤 종교의 원리주의자나 근본주의자처럼 율장의 조문 하나하나를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인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종헌종법이 율장의 정신을 갖출 수 있도록 개정 내지 제정하자는 취지이다.

붓다는 출가자들이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양한 출가자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율장을 제정하였다. 즉, 율장은 수행과 화합을 위한 승가의 규범인 것이다. 종헌종법이 승가의 여법한 규칙이 되기 위해서는 승가의 수행과 화합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제정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종헌종법은 세속의 헌법과 법령의 자구를 수정하여 차용한 것으로 승가의 수행과 화합을 실현할 수 있는 규칙이 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 있어서 율장의 무용론 내지 종헌종법의 유용론을 주장하기에 앞서 율장의 정신을 살릴 수 있도록 종헌종법을 개정하는 것이 불자로서 사문으로서 행할 우선 자세이다. 물론 종헌종법에 율장의 정신을 반영하는 작업은 정치적·기술적(技術的)으로 매우 지난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그 구체적 시도는 없었다. 하지만 종헌종법의 유용론과 율장의 무용론을 제기하기에 앞서 세속조직의 규칙을 모방한 종헌종법에 근거하여 종단을 운영하는 것은 출세간의 승가를 세속 집단으로 변질시킬 수밖에 없다는 심각성을 주목하여야 한다. 사람은 제도에 구속되고 영향을 받는데, 종헌종법이 세속적 내용으로 가득하다면, 그 종헌종법을 지키는 승가는 당연히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 종헌종법을 열심히 지킬수록 출세간의 승가가 점점 더 세속화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필자는 미력하지만 20여년 간 현대불교의 종헌종법을 근간으로 하는 종무행정 분야를 연구해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불교종단과 한국승가의 다양한 문제를 접하면서 그 문제의 근원이 세속화에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세속화로 인하여 야기되는 문제들의 근원적 해결을 고민하면서 율장의 부재로 인한 아쉬움을 절실히 느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종헌종법에 율장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곧 세속화된 한국승가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승가가 율장을 저버리고 종헌종법만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기에 세속화가 심화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chokiryong@dongguk.edu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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