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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식이 바로 당신이다

기자명 최원형

공양게는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가는 지침서

깜빡 잊고 아침에 지어 놓은 밥을 솥에 그대로 두고 하룻밤을 지냈다.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 사람이 없어서 그만 밥 관리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에 퍼뜩 생각나서 부엌으로 달려가 밥솥 뚜껑을 여는데 시큼한 냄새가 났다.

따스한 마음 담긴 ‘밥 먹자’
‘밥=생명’이란 생각서 나와
감사 모르는 음식문맹보단
욕심내려놓고 음식 대해야

아뿔싸!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여름마다 몇 번씩 이렇게 아까운 밥을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이미 시큼하게 쉬어버린 밥을 놓고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걸까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밥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물건이라면 이리 허투루 대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밥에게 미안했다. 밥이 된 쌀에게 미안했고 벼를 키우고 추수한 농부들에게, 햇볕, 바람, 물 등 한 톨의 쌀로 내게 오도록 도움 준 모든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번져갔다.

우리에게 밥은 대체 뭘까? 내 몸을 지탱해주는 고마운 것이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한 걸까? 나 자신에게 반문해봤다. 밥이 없어도 먹을거리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그깟 밥이 뭐냐고 할 이들이 적지 않게 떠오른다. 하루 세끼 가운데 겨우 한 끼 정도나 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요즘 사람들이라고 하니, 밥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밥은 뭘까? 밥을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거룩한 것이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한 단어씩 음미해 보면 모두 옳은 말이다. ‘밥 한 번 먹자’, ‘밥은 먹고 다니니?’하는 말 속에는 상대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배려가 담겨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밥 먹었느냐?’가 ‘안녕’이란 인사말 대신 쓰였던 적도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도 있었겠으나, 밥은 곧 생명이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린 말이기도 하다.

글자를 모르는 이를 문맹이라 하듯이 음식을 모르는 이를 일컬어 음식문맹이라 한다. 여기서 음식을 모른다는 것은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이나 음식 이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음식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을 음식문맹이라 한다. 음식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이들도 음식문맹에 속한다.

가령 값비싼 명품가방을 들고 유명 브랜드 옷을 입으면서 끼니는 대충 패스트푸드로 때우는 이들이 음식문맹에 해당된다. 음식문맹의 반대편에는 음식시민이 있다. 음식시민은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음식에 감사할 줄 알며 음식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 한발 더 나아가 음식시민은 지역의 경제, 사회, 환경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식량체계를 지지 한다.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며 누구나 음식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집에서 밥을 짓지 않아도 끼니를 해결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시스템으로 사회가 바뀌었다. 이런 시스템에 편승해서 다양한 패스트푸드 세상이 열렸다. 철학자 포이에르 바흐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면서 우리 몸의 각각을 구성하게 되니까 이 말은 매우 과학적인 말이다. 공장에서 물건처럼 생산된 음식을 후딱 먹어치우는 것은 그런 점에서 참 서글픈 일이다. 그 음식은 곧 내가 되기 때문에. 생명 가진 어떤 것도 먹지 않고 살 방법이 없다. 생명활동의 가장 근본이 바로 먹는 일이며 곧 음식이다. 이토록 중요한 음식이 패스트 문화와 만나면서 대단히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패스트 문화는 결국 경쟁을 의미한다. 빨리 빨리 해치우고 효율적인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 그 효율적이라는 것은 소유이고 이윤추구이며 다분히 현재지향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슬로문화는 어떤 것일까? 경쟁보다는 협력을, 소유보다는 존재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 슬로문화다. 쌀 생산을 예로 들어보면,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심지어 바람, 햇빛 등 자연의 도움까지 조화로울 때 비로소 농사는 완성된다. 농약이나 비료의 사용은 내 몸을 망가뜨리고 땅을 망가뜨리는 일이며 그것은 미래세대의 삶까지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다. 이러니 슬로문화는 공동체를 지향하게 되며 내일을 생각하는 미래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하고 자신을 참회하며 욕심을 내려놓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 공양게야 말로 음식시민이 되는 지침서로서 손색이 없다. 공양게의 의미를 생각하며 음식과 관계 맺기를 잘 하는 일은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가는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겠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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