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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장자가 있으면

진정한 지혜는 제 속에서 우러나야

위산에서 앙산을 거쳐 남탑(南塔)으로 내려오는 위앙종의 법맥을 이은 이에 파초혜청(芭蕉慧淸)이 있으니, 신라 출신으로 당(唐)에 건너가 거기서 일생을 마친 선사다. 그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다음같은 설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네게 주장자가 있다면 나는 네게 주장자를 주려니와, 네게 주장자가 없다면 나는 네게서 주장자를 뺏으리라’



이 한마디가 선객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선문염송집』에 십여명의 내로라 하는 선사들의 게송과 논평이 나와 있는데에다가, 후대의 『무문관』까지 이 화두를 다루고 있는 데서도 짐작이 간다. 지금은 죽암사규(竹庵士珪)가 이에 언급하면서 읊조린 게송이 시사하는 바 큰 듯하므로 이를 통해 화두에 다가서 보자.



많으면 조금 더하고 적으면 좀 덜어서

바꾸려곤 하지 말라.

옮겨 팔고 깎아도 주면

세 곱의 이익!

자식에겐 장사의 비결

가르치지 말지니,

한번 크게 밑지고 나야

절로 터득하느니라.

多添少減休那兌 支移折變加三倍

平生有子不須敎 一回落自然會



○多添少減. 그의 설법 내용으로 보면, 많은 것에는 좀 더해 주고 적을 경우에는 약간 덜어내는 뜻. ○休. 그만두라. ○那兌. 당대(唐代)의 속어인 듯, 뜻이 확실치 않다. 兌는 바꾸는(易) 뜻이어서 지금도 兌換이라는 말이 있고, 兌換을 那換이라고도 하는 점에서는 那도 동일한 뜻인 듯 하다. 곧 사태를 제 뜻에 맞게 바꾸는 일인듯? ○支移. 장소를 옮겨서 파는 일. ○折變. 값을 깎아 주는 것. ○不須敎.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 ○落. 속아서 큰 손실을 입는 것. ○自然. 저절로. ○會. 이해함. 깨달음.



상거래에 있어 남이 밑질 것이 뻔한 상품을 잔뜩 사들일 때도 조금은 더 밑지도록 조장하고, 이익을 얼마 올리지 못하는 경우에도 더 그렇게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그런 실수를 통해 ‘옮겨 팔고 깎아도 주는’ 따위 상술을 스스로 체득케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게송의 취지인 듯 싶다. 그러면 이것을 화두로 옮기면 어떻게 되는가.

큰 선사들의 냉담한 대응은 정평이 나 있다. 위산(山)선사는 입문한지 얼마도 되지 않은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네가 지금껏 배워서 알게 된 것이라거나 경전을 읽고 알아낸 것에 대하여는 묻지 않으려니와, 네가 어머니의 태(胎)에서 나오기 이전, 동서도 못 가리던 때의 네 본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어디 한번 말해보라.’

이리하여 대답에 막힌 향엄이 아무리 애걸복걸 매달려도 물리침으로써, 끝내 절망한 향엄으로 하여금 울면서 절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덕산(德山)스님은 무조건 때려대고 임제(臨濟)선사는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할(喝)부터 터뜨렸다. 매우 비교육적이어서 요즘 같으면 인권유린으로 처벌 대상에 오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불친절 속에서 향엄을 비롯한 많은 용상(龍象)들이 배출돼 나왔으니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상술의 비결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는 말과 관련해서는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비유가 생각난다. 밤을 이용해 아들을 데리고 부자집 빈방에 들어간 도둑은, 거기에 놓인 거대한 궤짝 속으로 아들을 들여보내고는 궤짝의 문을 잠구고, ‘도둑야, 도둑야’ 외쳐대며 도망쳐 버렸고, 곤경에 빠진 아들은 궤짝을 긁어대서 쥐가 그러는가 싶어 하녀가 궤짝 문을 열려는 순간에 뛰쳐나와 줄행랑을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뒤쫓자 우물에 돌을 던져 제가 뛰어든 것같이 그들을 착각에 빠뜨린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항의했더니, 네가 이제야 도둑질 하는 비결을 터득했구나 하면서 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는, 그런 이야기다.

외부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제 속으로부터 우러나온 지혜라야 진정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점에서, 파초선사가 알리고 싶었던 것도 여기에 있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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