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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자비의 말씀’의 위기

기자명 이학종
서울과 부산에 거주하는 불자들에게는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다름 아닌 지하철 승강장의 벽에 걸려 있는 ‘자비의 말씀’을 읽는 기쁨이지요. 내로라하는 불교작가들과 글 솜씨 좋은 스님들이 정성껏 작성한 아름답고 지혜로운 글들이 예쁜 액자에 담겨져 불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감동과 여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비의 말씀’은 불자에겐 열차를 기다리는 짜투리 시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번 더 읽는 즐거움을, 비불자에겐 자연스럽게 불교를 받아들이게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주관하는 풍경소리의 일꾼들은 ‘자비의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거나, 불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는 시민들의 감사전화를 받을 때면 지친 어깨가 저절로 치켜세워진다고 합니다.

지하철 ‘자비의 말씀’은 불자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글귀를 읽고 또 읽고 하다가 열차를 놓치는 일이 잦다는 즐거운 비명이 들려오는가 하면, 이웃과 친지들에게 지하철 승강장 벽에 걸려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읽어보면 불교가 얼마나 훌륭한 종교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면 두 어깨가 으쓱거려진다는 불자도 적지 않습니다.

현재 서울에만 약 1000개의 ‘자비의 말씀’ 액자가 지하철 역사에 걸려 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인구가 하루 800만 명을 넘고 있음을 감안하면 1000여 개의 ‘자비의 말씀’으로 인해 얻어지는 포교의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고 할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지고 여력만 있다면 서울과 부산만이 아닌 전국의 모든 역사에서 ‘자비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 소중한 ‘자비의 말씀’이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 위기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자비의 말씀’ 액자의 유지 및 관리는 대개 지하철 역 인근에 있는 사찰의 협찬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데, 꽤 많은 사찰에서 ‘자비의 말씀’ 액자에 적힌 사찰연락처를 보고 찾아온 신도가 거의 없다며 이제 1년이 되었으니 효과도 없는 협찬광고를 그만하겠다는 통보를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한 달에 20000원으로 책정된 협찬비의 수금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자비의 말씀’이 지하철 역사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풍경소리 관계자들은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지방의 주요 사찰에 협찬을 요청하거나 운영기금 모금 계획을 강구 중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든 지하철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게 그들의 반문이지요.

수십·수백 억대를 넘는 불사(佛事)가 도처에 즐비한 현실에서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정말 큰 공덕이 있는 불사는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편집부장 이학종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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