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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조사상연구원장 법산 스님

“불교학자는 깨달음 나아가도록 돕는 등불”

▲ 법산 스님은 “불교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익혀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1987년 2월, 보조사상연구원이 창립됐을 때 교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종익, 김지견, 강건기, 심재룡, 길희성, 최병헌, 한기두, 박성배, 로버트 버스웰, 권기종, 법산 스님 등 기라성 같은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송광사 주지로서 제8차 중창불사를 진두지휘했던 현호 스님이 이사장을,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원장을 각각 맡으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보조사상연구원 창립은 송광사 중창불사의 일환으로, 외적인 불사와 수행·포교·교육·복지·불교생활화의 사상불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력의 결실이었다.

기라성 같은 국내외 학자들과
1987년 2월22일 창립 주도해
한국불교학계 첫 월례발표회
신진학자 등용문으로서 역할
토론문화 정착·확산에 공헌도

“학문은 실천할 때 의미” 신념
정각원장 시절 신행모임 만들고

2006년 벽송사에서 안거 성만
‘금강경’ 10만 독송 발원 실천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정혜쌍수, 돈오점수, 선교일치 사상을 선양하는 것은 물론 깨달음의 회향으로 정토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보조사상연구원의 활동은 한국불교학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왔다. 1989년 ‘보조전서’를 발간했으며, 1990년 ‘불교사상에서 깨달음과 닦음’ 주제의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돈점논쟁의 중심에 섰다. 특히 1996년 2월24일 한국불교학계 최초의 월례발표회 개설이 일으킨 반향은 대단했다. 발제자 한 명에 두 명의 토론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신진학자의 등용문이 되어주는 한편, 토론문화 정착과 확산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에 백화도량, 불교학연구회, 한국선학회가 잇따라 월례발표회를 만들면서 한국불교학계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침체를 겪은 다른 월례발표회들과 달리 보조사상연구원의 월례발표회는 2012년 6월30일 100회 돌파라는 성과를 일궜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45권의 학술지 발간, 8회의 국제학술대회, 25회의 대규모 학술대회 등으로 한국불교학계 발전에 기여해왔다. 이처럼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쳐온 것에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법정 스님의 뒤를 이어 2대 원장으로서 묵묵히 소임을 맡아온 법산 스님의 원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법산 스님은 2004년 원장에 정식 선출됐지만, 이전에도 실질적으로 보조사상연구원을 이끌어왔다. 15세에 남해 화방사에서 출가한 뒤 1967년 마산대(현 경남대) 종교학과에 입학하면서 학문에 눈을 떴다. 산스크리트어에 능숙했던 스님을 눈여겨 본 고 서경수 동국대 교수의 권유로 동 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했으며 ‘중론 관거래품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도유학을 준비하던 중 탄허 스님의 조언에 따라 대만으로 건너가 중국문화대학 철학연구소에서 공부했다. 한국 간화선 원류로서의 보조사상에 주목한 스님은 중국 선과 화엄사상을 연구하며 지눌 스님에 대한 탐구를 심화시켜 1985년 6월 중국문화대학에서 ‘보조선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중국불교의 사원 경제’ ‘조계종 성립사적 측면에서 본 보조’ ‘거래(去來)에 대한 공관적 고찰’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학문적 역량이 깊어지는 만큼, 이를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스님의 신념도 더욱 굳어져갔다. 한국 대학생들을 위한 정기법회를 열고, 타이베이 한국교민들을 위해서는 홍법원을 개원한 것은 모두 실천을 향한 스님의 발원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월례발표회에서 늘 “학문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 진리를 체계적으로 익혀서 실천하는 것이다. 학문을 하나의 수행 방편으로 삼아 우리의 마음을 맑게 만드는 가운데 잘 정제된 논문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도 맑아질 수 있다. 부처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등불이 되자”고 말한다. 동료학자들에게도 “학문만 하면 부처님께 빚을 지고 가는 것”이라며 “부처님 법 가르치는 사람은 부처님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1986년 3월 동국대 선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201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25년간 후학을 지도하는 동안에도 스님의 이러한 관점은 여지없이 삶으로 녹아들었다. 1988년 동국대 정각원장 소임을 맡고 교수불자회, 보현회, 관음회, 정심회 등의 모임을 차례로 만들어 학교에 신행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부가했다. 또한 한국선학회, 한국정토학회, 인도철학회, 아태불교문화연구원의 회장·원장을 역임하며 한국불교학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조계종 교육위원회위원장, 승가고시위원장 등을 역임, 승가교육제도를 혁신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2006년 10월 스님이 벽송사에 방부를 들이고 안거에 들어가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지만, 사실 스님이 보여준 삶과 철학을 고려하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행과 학문을 방편 삼은 정진은 지눌 스님의 정신을 시대에 아로새기기 위한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벽송사에서 첫 안거를 난 직후엔 ‘금강경’ 10만 독송을 시작했다. 적게는 10독, 많게는 20~30독 어디에 있든 끊임없이 ‘금강경’을 외고 있다. 현재 3만7000독을 마친 상태. 선정과 지혜로써 반야의 사상을 드러내는 보조사상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에 대한 믿음으로, 스님은 10만독 회향의 그날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조사상연구원은 이제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스님은 현재 9월30일, 이를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효봉 스님 입적 50주년을 겸해 열릴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보조사상연구원 창립에 참여했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토론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월례발표회도, 학술지 발간도 계속될 것이다. “오랫동안 원장을 맡았고, 나이도 먹어 이제는 힘들다”고 토로하지만, 학문적 연구와 수행은 여전히 화두로서 스님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든 몸에 배인 신앙이 대번에 나와야 한다”고 역설하는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법산 스님은 만나는 이마다 “관세음보살”을 첫마디로 건네며 학문적 결실과 수행의 면모를 사회 속에서 회향하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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