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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바닷가 소나무 ‘곰솔’이 이루어낸 道

기자명 김용규

척박한 운명 속 스스로 써 내려간 빛나는 생의 역사

서해안에 와 있습니다. 대천 근처 작은 섬, 서해안을 바라보는 자리에 아주 특별한 한국식 정원을 꾸며놓은 어느 한옥 공간, 이곳에서 강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연못 정원에 앉아 서해와 맞닿아 있는 저 아름다운 풍광을 누리며 이 글을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충북 괴산, 오달지게 내륙인 땅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내게 늘 창연한 그리움의 공간, 바다가 보이는 아름답고 특별한 정원에 앉아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어찌 호사이지 않겠습니까?

멀리 뵈는 수평선의 빛깔은 모호합니다. 흰빛 같기도 하고 회녹색 같기도 합니다. 그 수평선 왼쪽 끝으로 작은 무인도가 보이고, 그 섬과 이 섬 사이의 바다 빛깔은 회녹색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바다의 물결은 북에서 남으로 일렁이고 하얀 돛을 단 요트 몇 대 바람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에서 바다까지는 불과 30m 남짓할까, 섬과 바다의 경계는 굳센 기상의 소나무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정원 연못에는 하얀색 연꽃 몇 송이가 드물게 피었고 이미 열매로 바뀐 꽃은 연밥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분수 중앙에 놓은 커다란 독 안에서 힘찬 몇 줄기 물살이 분수로 솟구칩니다.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독 분수의 물줄기들이 만드는 물의 소리가 섬 절벽으로 밀려와 부서지면서 내는 파도소리와 절묘하게 뒤섞입니다. ‘다다다다다~ 촤아~, 다다다다다~ 촤아~.’

이윽고 나는 네댓 걸음 거리에서 아름드리로 자라 저 바다를 향해 제 가지를 뻗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로 깊은 시선을 던지게 됩니다. ‘몇 년을 살았을까? 이 소나무!’ 소나무들은 오직 1년에 한 마디씩만 자라므로 나무의 꼭대기로부터 아래쪽으로 그 마디 수를 세면 그 나이를 알 수 있는 법, 나는 나무의 나이를 가늠해 봅니다. ‘하나, 둘, 셋, … 마흔 여섯, 일곱…’ 이미 부러지고 사위어 사라진 마디의 흔적까지 어림해 보니 저 소나무는 대략 공자 선생 명명하신 지천명(知天命)은 넘은 듯 보입니다. ‘나무들은 天命을 알까? 천명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질없기도 해라. 소나무의 나이를 헤아려보다가 문득 내 생각이 거기, 천명에 까지 이릅니다.

사념은 계속 뻗쳐 ‘중용(中庸)’의 첫 구절로 이어졌습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고대 유가의 사유는 ‘성(性)’을 하늘이 내린 명(命)이라 하고, 그 성(性)을 따라서 사는 것이 곳 도(道)라 하였으니, 이 소나무가 바람 거세고 소금기 넘치는 이 섬의 이 자리에 생(生)을 얻은 연(緣)도 제 의지와는 무관한 천명에 해당할 것이다. 소나무가 천명을 알 리 있으랴마는 그렇게 부여된 생을 붙들고 소나무는 생의 나날을 유지하고 지탱했으리라. 바닷가에 삶이 주어진 소나무는 아주 많은 날들을 바람, 그리고 바람이 실어오는 소금기와 맞서야 한다. 거센 바람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고, 소금기가 앗아가려는 제 세포의 체액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바닷가 소나무들의 운명이었으리라.’
바닷가에서 제 출생의 명(命)에 담긴 한계, 즉 바람과 염분을 견뎌내고 마침내 제 고유의 성(性)을 지키며 살아낸 소나무들을 특별히 곰솔이라 부릅니다. 육송(陸松)이나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는 내륙의 소나무와 대비하여 흑송(黑松) 또는 해송(海松)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육송도 해송도 모두 그늘진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성(性)을 타고났습니다. 바닷가 빛을 탐하며 사는 성(性)의 소나무 ‘곰솔’은 부여된 제 삶을 완성하기 위해 특별한 수도(修道)를 했습니다. 그들은 붉은 빛깔의 줄기와 가지를 가진 내륙의 적송들과 달리 검은색에 가까운 줄기와 가지의 껍질을 만들었고, 그 잎 또한 육송에 비해 거칠고 굵고 투박한 모양을 이룹니다. 결정적으로 생장점이 배치된 ‘눈(bud, 芽)’의 모양이 극명하게 다릅니다. 곰솔은 제 한 해의 성장을 담당할 ‘눈’을 하얀색 비늘로 감쌌습니다. 염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장치인 것입니다. 육지 소나무에는 없는 모습이지요. 곰솔은 긴 세월 자신을 닦아 주어진 자리에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극복해야 할 과제, ‘바닷바람의 염분’과 마침내 그렇게 제 도(道)를 이루어낸 나무들입니다. 소금기 없는 육지의 소나무를 부러워하지 않고.

곰솔에게 목례하고 이제 나는 육지로 길을 놓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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