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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소유 가치가 절실한 시절

기자명 최원형

최소한의 공간서 재발견하는 고귀한 삶의 방식

재미있게 본 영화는 많지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영화는 드물다. 그 몇 안 되는 영화 가운데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가 있다. 실존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한창 유명하던 전성기에 돈과 명예의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걸어 내려왔다. 원하는 만큼 무대에 서서 연주할 수 있었지만 음악을 상업적으로 보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맘껏 작곡하고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음악회에 온 듯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에 푹 빠질 수 있었고, 마치 세이모어와 마주 앉아 그의 레슨을 받는 듯한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는 건반을 얼마나 깊이 얼마나 세게 눌러야 하는가를 비유를 들어가며 제자들에게 일러줬다. 그의 깊고 풍부한 연주는 깊은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마다 음악은 ‘조화로운 언어로 괴로운 세상에 말을 걸어주며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 준다’고 그는 말했다. 음악은 우리 마음속에 있던 생각과 감정을 찾아내 그 안의 진실을 일깨워준다고도 했다. 세이모어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수행자가 하는 말처럼 들렸다.

많이 소유할수록 헛헛한 시대
소비는 미래세대 희망 앗는 길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무소유
내 발밑 살피며 기준 생각해야

며칠 전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런데 떠올리게 된 계기는 그의 연주도, 세이모어의 깊은 철학도 아니었다. 바로 그의 집이었다. 세이모어의 집 내부는 여러 차례 영화에 공개됐는데, 단순 소박한 공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의 집은 거실 하나에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있는 공간이 전부였다. 거실 한 귀퉁이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거실은 낮 동안에만 거실이었고 밤이면 침실로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이모어는 제일 먼저 침대를 접어 소파로 만든다. 그렇게 하니 침실은 순식간에 거실로 바뀌었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제자들이 오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세이모어는 다시 소파를 펼쳐 침대로 만든다. 노구를 이끌며 그 일을 날마다 하는 그를 보며 ‘측은’, ‘가난’ 따위의 낱말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귀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광활한 우주를 사유하는 그의 삶을 통해 잊고 있던 고귀한 삶의 방식을 재발견했다면 정확한 표현일까?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들었던 생각이 또 하나 있었다. ‘한 가지 물건을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진보가 아닐까?’하는.

소비문화가 팽배한 이 시대에, 집집마다 사람이 짐을 떠받치고 산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인의 집에 방문했을 때, 나는 그가 막 이사를 왔거나 이사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집안 곳곳에 짐 보따리가 쌓여있는 풍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이리 바쁜 와중에 왜 집으로 불렀냐며 밖에서 만나도 될 일이라 했더니,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는 그곳에서 10여년째 살고 있었다. 그 많은 물건을 다 써보기는 할까 아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기억은 할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쇼핑을 즐긴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났다. 오늘 우리들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물건에 욕망을 투사하고 소유하는 걸로 욕망을 발산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유한한 지구라는 말과 흔해빠진 물건은 서로 다른 세상의 일처럼 우리에게 오가는 것만 같다.

최근 일본에서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단순하게 사는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이라 한다. 사사키 후미오가 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가 히트를 하면서 그가 사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절집같이 휑한 공간에 침대 겸 소파인 물건과, 탁자로 밥상으로 때로는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내릴 때 디딤판으로 쓰이는 또 하나의 물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건 몇 가지나 될까? 계절별로 입을 옷도 따지고 보면 덧입거나 덜 입으면 가능할 것 같다. 입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자는데 드는 공간의 최솟값은 얼마일까? 사사키 후미오의 집을 보면서 세이모어의 공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면 예전 한옥의 방들은 얼마나 작고 나지막했던가. 그 공간에서 몇 세대가 함께 살았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오히려 헛헛하기만 한 이 시대, 소비는 현세대는 물론이고 미래세대의 목줄까지 죄는 일이며 희망을 앗아가는 일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이라 말씀하신 법정 스님과 피아니스트 세이모어가 오버랩 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필요한 것의 기준은 뭘까? 내 발밑을 살피며 그 기준을 생각해 볼 일이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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