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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9.26 11:15
  • 수정 2016.09.26 11:17
  • 댓글 0

어느 날 눈에 자연이 들어옵니다. 파르스름한 하늘이 보이고 하얀 솜털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있습니다. 그 순간 ‘아! 하늘이구나’ ‘그래 내가 하늘아래 살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나를 퍼뜩 깨웁니다. 둘러보면 바닥은 온통 시멘트 바닥이고 주변은 온통 사람이 만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본래부터 있었던 하늘이 눈에 보인 것입니다. 절에 도착해서 다시 하늘을 봤습니다. 과연 내가 하루에 얼마나 하늘을 보면서 살까 싶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지만 놓치고 살아
무심코 올려 본 가을하늘서
자연으로 가고픈 마음 느껴

아침이면 뜨는 해를 보고, 저녁이면 지는 해를 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젠 이런 일이 꿈이고 소망이 되어버린 삶입니다.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 새벽잠을 설치며 어디론가 가야하고 노을을 보기 위해서 1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삶이 요즈음 갑자기 싫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환경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편으론 안타깝고 한편으론 어렵습니다. 얼마 전 30년 사업을 하다가 시골로 농사 지으러 가신 분을 만났습니다. 얼굴은 까맣게 탔지만 몸은 더 건강해 보입니다. 마침 해가 뜨면서 구름이 봉황의 날개인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너무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그 분은 매일아침 보는 게 이런 장면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예뻐서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이젠 사진도 들이대지 않는답니다. 매일 아침 보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노을이 더 예쁘다고 한마디 던집니다. 저는 그 말에 심장이 조금 뛰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노을을 너무 좋아해서 제 이름을 ‘노을’이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노을이 보여주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장면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매일 보는 일상이라고 합니다. 살짝 흥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젊어서는 세상을 정의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료되었고 세상 속에서 그것을 실현해 보기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그것이 제 삶의 의미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식사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지듯이 아마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은 실컷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아보았고 칭찬과 사랑도 받아보았고 비난도 받아보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자연은 우리의 고향입니다. 때가 되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냥 때가 되어서 돌아올 뿐입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얼마 전에 인연 있는 노보살님의 임종을 보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약속을 몇 번을 미루었습니다. 함께 갈 노보살님들은 그 분과 인연이 깊어서인지 임종 전에 저를 꼭 보게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보살님도 저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임종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말은 하지 못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오늘 내일 하신다길래, 안 되겠다 싶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병원 의사선생님이 2~3시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숨만 헐떡일 뿐입니다. 저는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할머니,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부처님 따라 가세요. 더 좋은 모습과 건강한 모습으로 늘 함께 할 거예요’라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저도 하늘이 더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자연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젠 신도님들의 임종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제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늘 평온하게 나를 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1360호 / 2016년 9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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