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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유안진의 ‘시간’

기자명 김형중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로 시간의 철리 명쾌히 밝힌 오도송

현재(現在)는
가지 않고 항상 여기 있는데
나만 변해서
과거(過去)가 되어 가네.

시간이 귀하고 아까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철이 든 사람이라고 한다. 인생은 시간 싸움이고 시간문제이다. 인생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시간인 생사(生死)를 뜻한다.

시간은 마음이 만들어낸 관념
인식 불가능한 억겁의 무량수
시인은 26자로 압축해 읊어

우리는 오직 현재만을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침이 지나고 밤이 오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몰골이 변화하고 마음도 변화한다. 이것이 인생무상이다. 임제선사는 ‘임제록’에서 “지금 이 자리일 뿐 다른 시간이 없다(卽今現在 更無時節)”고 하였다.

시간은 둥근 시계 모양 속의 화살촉 바늘이 똑딱똑딱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물리적 에너지가 있는 실재인가? 아니면 인간이 사물의 움직임과 변화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하여 인간의 뇌 속에 만들어낸 가상체인 관념인가? 이 질문은 우주가 끝이 있는가의 문제와 함께 현대 과학자들도 해답을 내리지 못하는 궁극적인 문제이다.

인간의 마음이 경험한 공간 속에서 물체의 움직이는 운동 길이를 시간이라고 한다. ‘금강경’에 “과거심 불가득이요 현재심 불가득이요 미래심 불가득이다”고 하였다. 과거는 인간의 뇌(마음) 속에 지난날 경험이 기억되는 현상이요, 아직 오지 않는 미래는 공간이 없는 가상의 관념세계이다.

시간은 죽음과 관계가 있다. 생명의 종이 치면 끝이다. 삶에서 기억되는 과거시간이 죽음을 통해서 일시에 사라진다. 죽은 사람의 시계는 그 순간 정지된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시간의 단면’은 나뭇가지 위에 빨래처럼 널어놓은 시계모양이다. 정지된 시간의 모습이다. 시간은 사물(공간)의 운동이므로 운동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통일 속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 인공위성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면 움직이는 비행기 안에서는 시간이 늦게 흐른다고 한다. 만약 10년 동안 우주여행을 하고 지구에 돌아오면, 지구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100년이 흘러가서 90년이 지난 미래세계가 되어 있을 것이란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가설이다. 시간은 사람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 마음이 생각한대로 노인에게는 시간이 길게 흐르고, 젊은 사람에게는 빨게 흐른다고 한다.

우주(宇宙)의 의미는 ‘회남자(淮南子)’에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宙)라고 하고, 사방과 위아래를 우(宇)라고 한다”고 하였다. 시간과 공간이 같이 어우러져 있다는 뜻이다. 서양의 코스모스(cosmos)에는 시간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이 살아간다. 즉 우주 법계 속에서 인간과 중생이 살아가는 세계이다. 불교의 시간관은 실체가 없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관념이다. 공(空)의 세계이다. 억겁의 무량수이고,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이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불가사의한 세계이다.

시인은 인생과 우주에 대한 수준 높은 철학의 문제를 깊은 사유를 통해서 시화하여 읊고 있다. 26자로 요약한 시간에 대한 철리를 명쾌하게 밝힌 오도송이다. 유안진(1941~현재)이 2011년에 펴낸 시집 ‘둥근 세모꼴’에는 일본의 ‘17자 선시’인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시간’, ‘하이쿠식 피서’, ‘은발이 흑발에게’, ‘오쿠노미치에서는’ 등 몇 편의 좋은 선적인 시가 수록되어 있다.

‘오쿠노미치에서는’는 하이쿠의 시 형식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바쇼를 닮아/ 발걸음도 저절로/ 5·7·5박자.”

유안진의 시 ‘시간’을 읽으니 헨리 롱펠로의 ‘인생찬가’가 떠오른다. “미래를 믿지 말라/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라/ 행동하라,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유안진은 1965년 현대문학에서 박목월의 추천을 받아 등단해 많은 시집을 냈다. 불교적 사유가 깊은 시집으로 ‘다보탑을 줍다’ 등이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60호 / 2016년 9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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