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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스님들 바르게 외호하기

“범계 스님 비판보다 공양거부 등 자체정화 필요”

 
1980년대 대만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법산 스님(동국대 명예교수)은 지금도 대만 재가불자들의 신심과 철저한 계행을 잊지 못한다. 어느 날 스님은 한국에서 찾아온 지인의 부탁을 받고 빵집을 찾았다. 그런데 승복을 입은 스님의 모습을 발견한 빵집 주인은 대뜸 “우리는 스님에게 빵을 팔지 않는다”며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이유인즉 “빵에 고기가 들어있으니 스님들에게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다시 “그럼 채소만 들어있는 것을 팔면 되지 않느냐”고 요청했지만, 빵집 주인은 “채소를 볶을 때 돼지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도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빵집 주인은 채식 전문 식당을 안내해 줬다.

대만불교 청정유지 비결은
스님들 범계막는 환경조성
술·고기 함께 먹지않기 등
실천할 때 청정교단 회복

법산 스님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스님들의 사소한 범계조차 엄격히 지켜주려는 모습에 감동했었다”며 “대만불교가 청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승단과 불법을 수호하려는 재가불자들의 깊은 신심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불교 교단에서 재가불자는 청정 승단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외호세력이었다. 출가한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의식주 등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때론 승가가 위의를 지킬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이런 재가불자들의 외호는 불교교단이 25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재가불자들의 그릇된 외호가 오히려 승단을 멍들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스님-우리 신도’라는 문화가 팽배해지면서 특정스님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가하면 과도한 공양금으로 승단 내에서 부익부빈익빈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또 자신과 가까운 스님의 범계행위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아버리면서 그렇지 않은 스님은 사소한 문제까지 들춰내 대대적으로 떠들어대면서 승단 전체의 위상을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런 식의  외호는 오히려 승단 내부의 갈등과 범계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사회에서 바람직한 승단외호의 롤 모델은 대만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출재가의 구분이 명확하고 재가불자가 승단의 범계를 예방할 수 있는 적극적인 외호에 나서면서 청정승단을 이루는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는 “대만불교가 청정승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재가불자의 적극적인 외호에서 비롯됐다”며 “스님들의 일탈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사전에 제거하고, 범계를 저지른 스님에 대해서는 공양거부 운동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스님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했던 게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만 역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색불교가 심했다. 취처와 육식을 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대만불교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백성 스님이 승가청규에 해당되는 ‘칠조규정’을 사회적으로 공표했다. 즉 종파에 관계없이 스님이라면 음주, 흡연, 육식 등을 금하고 승복을 벗지 않으며 집과 속세를 떠나 세속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등이었다. 이를 어기는 스님은 승단에 남아 있을 수 없도록 도태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자정선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가불자들은 스님들이 취처와 육식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대만에서 채식식당이 활성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범계를 저지른 스님들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공양거부 운동을 벌여 스님 스스로 참회하고 승가로서의 위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따라서 대만 재가불자들의 이런 외호 방식을 도입한다면 한국불교도 한층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게 불교학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일상에서 △스님들과 함께 술·고기 등을 먹지 않기 △특정스님에게만 보시하지 않기 △범계 행위가 있는 스님의 절에는 가지 않기 등만 실천해도 승단을 청정하게 외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는 “교단은 출가와 재가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만의 청정을 요구할 수 없다”며 “범계 행위를 한 스님에 대해 무분별하게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공양거부 운동 등 자체적인 정화활동을 통해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361호 / 2016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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