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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와 낙인찍기

낙인은 나치즘 선동방식
600만 유대인 학살 활용
근래 교계에도 낙인 횡행

요제프 괴벨스(1897~1945)는 가장 열광적인 히틀러 숭배자였으며 나치즘의 핵심 인물이었다. 문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소아마비 탓에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히틀러가 ‘좌절한 지식인’ 괴벨스를 등용하자 그는 타고난 선동가로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평전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에 서술돼 있듯 그는 타고난 연설가이자 천재적 선동가였다. 단 몇 마디 말과 몇 줄의 글로 사람들을 분노와 열광, 광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국민들은 라디오로 매일 괴벨스의 선전을 들으며 집단최면에 빠져들었다. 그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에게 한 문장을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등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장애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 괴로워했던 그는 훗날 유대인을 ‘짐승’ ‘비인간’으로 낙인찍었다. 나치 정권이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독일국민이 방조하거나 죄의식을 갖지 않았던 배경에는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괴벨스의 선동이 큰 역할을 했다.

‘낙인(Stigma)’은 쇠붙이를 불에 달궈 찍는 도장으로 가축이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내거나 범죄자임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됐다. 근대 이후 ‘낙인찍기’는 학살, 탄압,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동방식으로 적극 활용됐다. 특정인과 단체의 긍정적 이미지를 단박에 끌어내리고 동조자들을 결속시키는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요즘 인권, 남북관계 개선,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면 곧바로 ‘종북’의 낙인이 찍히고, 간첩 취급받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돼 있다.’는 말처럼 한번 실추된 이미지를 되돌리기란 극히 어렵다.

그런데 이런 낙인찍기가 불교계에도 횡행한다. 특정 스님들을 지칭해 ‘탱화절도범’ ‘표절총장’ ‘권승’ 등 낙인을 찍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무차별 확산시킨다. 여기에는 다른 뜻깊은 숱한 논문을 썼다거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앞장섰다거나 신행운동을 펼쳤다거나 고통받는 이들의 생명을 살리려 애썼다거나 전법과 불사를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저 절도범이며 표절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 이재형 국장

 

불교 언어철학에는 ‘아포하(apoha)’라는 개념이 있다. 5세기 불교논사였던 디그나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개념은 흔히 ‘타자의 배제’로 해석된다. 베다의 절대적 권위를 숭상하는 인도의 학파들이 언어를 통한 인식의 실재성을 인정했던 것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그것을 명백한 오류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아포하’ 개념을 둘러싸고 불교논사와 힌두논사들은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700여년 간 논쟁을 지속했다.

‘아포하’론에서 지시, 단정, 낙인은 지극히 비불교적이다. 불자라면 누군가의 행위를 비판하되 그 사람 자체를 악인으로 규정짓지는 말일이다. 훌륭한 선지식들의 언어관을 따르지 못할지언정 학살을 정당화했던 괴벨스의 선동방식을 따라서야 되겠는가.

이재형 mitra@beopbo.com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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