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덕은 행복성취 도움 되는 신구의(身口意) 습관들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0.12 10:07
  • 수정 2016.10.12 10:08
  • 댓글 0

며칠 전 길거리에서 행인이 말을 걸더군요.

화를 잘 내는 습관 보다는
친절 습관이 공덕 더 있어
자신 공덕에 확신 가질 때
당당한 태도 보일 수 있어

"뭐 좀 여쭤봐도 되나요?"
"그럼요."
"얼굴을 보니 공덕이 참 많으세요…"

일명 '도를 아십니까?'였습니다.

사실 길거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출가하기 전에 명동거리를 걷고 있던 도중에도 똑같은 상황을 만났던 적이 있었죠.

그때는 풋풋한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을 땡땡이치고 명동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향해 신나게 걸어가던 도중 누군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청년! 내가 자네 얼굴을 보니 공덕이 아주 많군. 집안을 일으킬 얼굴이야."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럽고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참을 그 자리에서 그들이 말하는 '도'에 대해서 억지로 들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숫기가 너무 없어 가겠다는 말조차 하지 못해 결국은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늦었던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그분들 흉을 보며 핑계를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 한마디 못해서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낭비한 그 상황이 바보 같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요즘도 숫기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출가해 수행한 지 10년 정도 지나니 조금 달라진 점이 있기는 하더군요.

다시 오늘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그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을 보니 공덕이 참 많으세요!"

그리고 전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죠.

"그럼요. 제가 출가해서 수행하는데 당연히 공덕이 많죠."

황당한 표정의 그분을 남겨두고 전 제 갈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갔습니다. 걷는 도중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자나 깨나 신묘장구대다라니 암송을 하니 천수경의 구절처럼 다라니를 수지하고 있는 이 몸이 광명의 깃발로 변화하는구나!'

공덕은 행복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구의(身口意) 습관들입니다. 예를 들면 화를 잘 내는 습관보다는 친절의 습관이 공덕이 더 있는 것이고, 자신을 비하하는 마음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공덕이 더 있는 것이죠. 우물쭈물 당황하는 것보다는 당당한 태도가 더 공덕이 있고, 욕설하는 습관보다는 친절한 말투가 더 공덕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대학교 1학년 학생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원빈 스님이라는 존재가 물론 같은 존재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 위에서 볼 때 연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분명한데, 똑같은 상황 속에서 나타내 보인 신구의 삼업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자신의 공덕에 확신을 가지고 훨씬 더 당당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죠.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은 장(醬)과 중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매달, 매년 그 사실을 삶 속에서 증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빈 스님이라는 연극 속 인물의 삶을 통해 수행의 공덕을 임상 실험하고 있는 것이죠. 의심이 많아서 그런지 부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수행의 모습만으로는 확신이 들지 않으니 직접 해볼 수밖에요.

앙굿따라니까야 빠하라다경에서 아수라왕 빠하라다에게 부처님께서 승가의 위대함에 대해 이렇게 찬탄하십니다.

"빠하라다여, 예를 들면 큰 바다가 죽은 시체와 함께 머물지 않아서 큰 바다에 죽은 시체가 있으면 그것을 즉시 기슭으로 실어가서 땅으로 밀어내 버리는 것처럼, 승가는 계를 지키지 않고, 나쁜 성품을 지니고… 청정하지 않은 사람과는 함께 머물지 않고, 승가가 함께 모여 즉시 그를 내쳐버린다."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빠하라다여, 예를 들면 큰 바다가 하나의 맛인 짠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법과 율도 하나의 맛인 해탈의 맛을 가지고 있다."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승가는 바다와 같기에 그 안에 들어온 출가자들은 해탈 열반의 단 하나의 맛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바다가 청정하지 못한 것을 바깥으로 밀어내듯 승가도 청정치 못하고 공덕이 없는 수행자들을 밀어내죠. 전 여기서 조금은 황당한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렇다면? 청정하기 위해 정진하며 밀려나지 않고 버틴다면 나 역시 승가의 힘으로 해탈 열반인 단 하나의 승가의 맛을 성취할 수 있겠구나!'

출가자의 삶과 수행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혜택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없는 스승인 세존께서 보장하는 청정 승단에 귀의하고 그곳에서 제시하는 법과 율을 수지하고 정진하는 것만으로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갈 것이 보장된다니! 이 좋은 출가자의 삶을 누리는 불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건, 함께 나눠야 하니까요!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