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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월관음과 용왕이 만난 이유는?

기자명 주수완

수월관음도 등장 용왕은 의상대사의 관음 친견 도운 주인공 유력

▲ 일본 다이토쿠지 소장 수월관음도. 고려.

수월관음도란 달이 뜬 배경으로 바닷가 바위에 관음보살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것을 말한다. 이 장면은 ‘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인도 전역을 순례한 이야기 중에서 28번째로 포탈락가(Potalaka) 산을 찾아가 관음보살을 만나 가르침을 구한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日 다이토쿠지 소장 수월관음도
선재동자 자리에 용왕 그려 넣어

‘삼국유사’에 전하는 의상 대사의
낙산사 창건 설화속 인물설 제기
고려인들의 자부심 담아낸 작품

최근 용왕 등장 中 수월관음 소개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난 현상이란
기존의 학계 주장 뒤집어진 상황
의상설화 中에 영향 가능성 커

수월관음도의 가장 오래된 작품은 중국 오대~북송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돈황 출토의 수월관음도들이다. 당나라시기에 활약했던 화가들을 기록한 ‘역대명화기’에 의하면 저명한 궁정화가 주방(周昉)이 이를 창안했다고 한다. 주방은 특히 궁정의 여인들을 주로 화폭에 담았는데, 그 때문인지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도는 언뜻 주방이 그린 사녀도(仕女圖)에 등장하는 여인들과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당대에 그려진 수월관음도는 찾아보기 어렵고, 오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 중 일부를 당나라 말기에 그려진 것으로 올려보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수월관음도로부터 주방의 흔적을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그 모습도 제각각이어서 과연 주방이 창안한 도상이 전래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 중국 오대시기의 수월관음도. 감숙성 돈황 출토.

그러나 수월관음도의 기본 도상이 전적으로 주방에 의해 창안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주방이 수월관음도를 주제로 작품을 남김으로써 비로소 불화의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주방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된 수월관음도가 이후의 수월관음도들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하간 주방이 수월관음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 고려불화 중의 수월관음도는 마치 하나의 원본을 답습한 듯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중국은 몰라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방, 혹은 주방 스타일로 그려진 특정 도상을 계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수월관음 도상의 특징은 우선 기암괴석 위에 관음보살이 걸터앉아있는 모습이다. 이 기암괴석은 관음보살이 거주한다고 믿어졌던 인도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전설적인 산을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는 인도 타밀나두 지역의 포티가이(Pothigai) 산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 전설적인 산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절강성 해안가 바위절벽을 택하여 이를 포탈락가산으로 간주했는데, 한자로 음역하여 보타산이라고 불렀다(포탈락가산은 의역하여 광명산, 혹은 소백화산으로 불렸다). 티베트에서는 달라이라마의 궁을 포탈라궁이라고 부르는데 포탈라 역시 포탈락가에서 기원한 말이다. 달라이라마가 관음보살의 화신이기 때문에 달라이라마가 머무는 궁을 포탈락가산에 비유한 것이다.

▲ 서하시대의 수월관음도. 하라호토 출토,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오대 이후 수월관음도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서하 시대의 불화에서도 발견된다. 서하 시대에 그려진 불화들은 중국의 불화와는 다른 독특한 도상으로도 유명한데, 리움미술관 소장의 고려시대 ‘아미타삼존내영도’처럼 특이하게도 중국에는 없지만 고려불화에만 보이는 도상들과 매우 흡사한 불화들이 서하불화에서 발견되어 과연 우리나라와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의문을 자아낸다. 수월관음도도 마찬가지여서 최소한 지금까지 알려진 오대~북송대의 수월관음도 보다는 서하시대의 수월관음도가 고려불화에서의 수월관음도와 더 많이 닮아있다.

나아가 수월관음도는 기본 바탕을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두고 있지만, 주변에 어떤 장면이 첨가되는가에 따라 또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림굴 제2굴의 수월관음도에는 손오공과 삼장법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아직 저팔계, 사오정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1570년경 오승은에 의해 쓰여진 ‘서유기’ 이전에 전해지던 손오공 설화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고려불화 중에는 단잔진자(談山神寺) 소장 수월관음도 우측 하단에 금니로 이야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맹수와 독사에 쫓기는 모습, 불타는 집, 도둑에게 화를 당하는 장면, 풍랑을 헤쳐가는 배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장면은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환란을 당한 사람이 관음보살을 찾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결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일본 단잔진자(談山神寺) 소장 수월관음도 우측 하단의 ‘법화경 보문품’ 장면. 고려.

그런데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수월관음도에는 특이하게 바다에서 솟아오른 용왕과 그 권속으로 생각되는 인물들이 화면 좌측 하단에 묘사되어 있어 주목된다. 원래 이 자리는 선재동자가 서있는 곳인데, 용왕장면을 넣기 위해 선재동자의 위치를 굳이 우측 하단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관음보살과 용왕 모티프의 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더구나 용왕 모티프는 고려불화에서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더욱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그러던 중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이 용왕 모티프에 대한 근거를 우리에게 친숙한 ‘삼국유사’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삼국유사’의 ‘낙산이대성’조에 등장하는 의상대사와 동해용의 설화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의상대사께서 동해안의 어느 절벽 동굴에 관음보살이 머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목욕재계한 후 7일 동안 수행하였다. 그러자 용천팔부(龍天八部)의 시종들이 굴 안으로 안내해 들어가 수정으로 만든 염주 한 꾸러미를 내어주었고, 동해의 용은 여의보주(如意寶珠) 한 알을 바쳤다. 의상대사가 이를 받들고 나와서 다시 7일 동안 재계(齋戒)하니 드디어 관음보살의 진신을 보게 되었다. 관음보살이 ‘산마루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佛殿)을 짓도록 하오’라고 하므로 대사가 굴에서 나오니 정말로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나왔다. 그곳에 금당(金堂)을 짓고 관음상(觀音像)을 봉안하니, 그 둥근 얼굴과 고운 바탕이 마치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았다. 이로 인해 그 절 이름을 낙산사(洛山寺)라 하고, 법사는 자기가 받은 두 구슬을 성전(聖殿)에 봉안하였다.”

▲ 중국 산서성 오대산 수상사 대문수전 후불후벽의 수월관음상. 관음보살 오른쪽으로 용왕과 그 권속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시립해있다.

이곳이 바로 낙산사인데, ‘낙산’이 바로 포탈락가산을 줄여 음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 묘사되는 풍경을 보면 관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므로 기본적으로 중국에서 묘사된 포탈락가산의 특징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고, 여기에 덧붙여 의상이 관음의 진신을 만날 수 있도록 도운 동해의 용왕과 그의 권속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포탈락가산과 용왕이 만나는 접점이 바로 의상대사가 찾아갔던 강원도 양양 동해 바닷가의 낙산사였던 것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고려 수월관음도의 배경이 된 기암괴석은 인도의 포탈락가산이나 중국의 보타산이 아니라, 우리의 땅 강원도 낙산사가 배경이 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를 통해 고려인이 고려 영토에 대해 어떠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다이토쿠지 수월관음도의 상단 좌측에는 꽃을 입에 문 파랑새 한 마리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 파랑새 역시 양양 낙산사와 원효대사의 설화 속에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이다. 즉, 의상대사가 관음을 친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원효대사 역시 친견하기 위해 동해안을 찾았으나 숲 속에서 몇 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결국 파랑새로부터 희롱을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원효대사에게는 쓰라린 경험이었을 것이다.
수월관음도는 아니지만 강진 무위사의 후불벽 뒤에 그려진 커다란 백의관음벽화에도 파랑새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선재동자 대신 노비구가 관음을 향해 합장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 인물이 혹시 의상대사는 아닐까 추정된다. 더구나 벽화에는 고려시대의 유자량이 양양 낙산사를 소재로 지었다는 오언율시 ‘낙산관음찬’이 적혀 있어서 이 벽화 역시 양양 낙산사의 관음을 묘사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양양 낙산사의 관음보살을 그린 수월관음의 전통이 조선시대에까지 분명히 계승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매우 명쾌하고 자긍심을 자극하는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근래 이를 부정하는 의견도 등장했다. 반론의 발단은 중국의 수월관음도 중에도 용왕이 등장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몇몇 중국의 수월관음도가 새롭게 소개됨에 따라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이었는데, 과거 용왕과 수월관음이 결합된 양상이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주장이 뒤집어진 것이다.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지만, 중국에 수월관음과 용왕, 혹은 용의 모티프가 결합된 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양양 낙산사 관음보살 설화와의 연관성을 부인하기는 아직 이르다. 비록 그러한 도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중국에서 수월관음과 용왕을 연관 지을 수 있는 문헌적 근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 도상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분명히 남아있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중국에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의상대사는 중국·일본에서도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의상대사 설화가 중국에까지 알려져 시각화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는 셈이다.

주수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강사 indijoo@hanmail.net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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