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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

기자명 이미령

세월호 트라우마 곳곳에서 드러나는 사회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태풍 소식이 들려옵니다. 태풍의 길목에 자리한 제주는 이번에도 큰 비를 맞았다고 하는데 스님 계시는 약천사는 피해가 없었는지요.

지난 번 경주 지진도 그렇고, 재해를 당할 때면 인간이 얼마나 미미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느낍니다. 자연재해뿐이겠습니까?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빚어내는 인재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지하철 불꺼지고 잠시 섰는데도
바로앞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
두려움으로 인해 우왕좌왕 소란
상호 믿음 회복해야 안심도 복원

며칠 전, 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을 때 일이랍니다. 파업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하철은 정상에 가깝게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낮에 지하철을 탔는데 마침 제가 탄 칸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잔뜩 타더니 이내 시끌벅적 소란스레 떠들고 장난을 쳐댔지요.

그런데 갑자기 달리던 지하철이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실내등도 일부가 꺼졌지요. 소란스런 객차 안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승객들은 서로의 얼굴을 흘낏 흘낏 살피고 있었습니다.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학생들이 소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옆의 한 남학생은 지하철이 기울어졌다고까지 소리쳤습니다.

“어떻게 하지?” “왜 이러는 거야?”라는 여학생들의 낮은 비명도 들렸습니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거의 중계방송에 가까운 통화를 하는 아이도 있었지요. 뒤늦게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파업 중이라서 대체근무자들의 익숙하지 못한 운전조작 때문이었는지 개미소리만 해서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일부 어른들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급기야 제 옆 자리의 남자 어르신께서 크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가만히 좀 있어!”

스님, 그 소리를 또 듣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사실 저도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많은 아이들이 일시에 불안에 사로잡혀 술렁거리니 어떻게 해서라도 안심을 시켜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은 아무 효력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한참 소란피우더니 누군가가 조용히 좀 하자고 소리치더군요. 그 소리에 아이들이 조용해졌고, 객실 내 안내방송이 들렸습니다.

그 날, 지하철에서의 이 모든 소란은 얼마나 길게 이어졌을까요?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커먼 지하 굴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갇혀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사실 불안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저 잠깐 지하철에 잔고장이 생겼을 뿐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일견 제 머리에는 그동안 뉴스에서 봤던 온갖 재난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 두려움이라니….

지하철은 금방 다시 정상운행이 되고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르내리는 가운데 제 뇌리에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라는 말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무외시라고 하지요. 재물의 보시, 법의 보시와 함께 대표적인 보시가 바로 무외시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알게 모르게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바로 그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시라는 것이지요. 불교는 생명들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반야심경’에서도 무유공포(無有恐怖)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보살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이 구절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출요경’에는 부처님께서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남자를 교화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에게 재물을 베풀라고 일러주지 않고 ‘살생하지 말고, 주지 않는 것은 갖지 말고…’라며 5계를 주십니다. 좀 엉뚱하다 싶지요. 남자는 처음에 불안했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재물을 남에게 주라고 할까봐서요. 하지만 부처님은 그의 불안을 잘 알고 계셨던지 재물을 남 주라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덤덤히 5계를 일러주셨지요.

재물을 잃을까봐 손해볼까봐 전전긍긍하던 남자는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까요? 안심이 된 남자는 부처님이 5계 항목을 하나씩 일러주실 때마다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지요.

“예, 부처님! 저는 잘 지키고 있었고 앞으로도 잘 지키겠습니다.”

이 남자가 평소 5계를 지킨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만 재산이 축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런 남자의 인색함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찬탄하십니다.

“참으로 잘 하셨소. 당신이 5계를 지키는 덕분에 뭇 생명체들은 당신 옆에서 두려워하지 않았고 편안했소. 당신은 생명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었던 것이오.”

남자는 제 귀를 의심하지요. 자신이 무외시를 해왔다는 말 아닙니까? 이런 사실을 일깨워준 부처님이 고맙기 그지없었고, 기꺼이 재물을 보시하려고 마음을 내게 됩니다. 남자에게서 가장 큰 단점인 인색함을 깨고 크게 재물의 보시를 하도록 인도한 배경에는 이렇게 무외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교화방법이지요.

무외, 즉 두려움을 없애주는 일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안심시켜주고, 가장 소중한 것을 보장해주는 일보다 더 큰 보시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 신뢰가 먼저 이뤄져야겠지요.

그날 지하철 안에서 잠깐 동안의 소요와 소란은 그간 우리 사회에 벌어졌던 재난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지요. 지하철이 기울어졌다는 한 아이의 외침은 지금도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서 처박힌 채로 있는 세월호의 트라우마 그 자체였습니다.

그 재난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가만히 있었지요. 가만히, 그리고 차분히 기다리면 틀림없이 구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비명에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깨져버린 자리에 두려움만 가득했던 지하철, 만약 부처님께서 타고 계셨더라면 사람들에게 어떤 무외시를 하셨을까 가만가만 상상을 했더랬지요.

이렇게 스님에게 당시를 돌아보며 편지를 쓰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제게 이런 위안을 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미령 드림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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