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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소임을 내려놓으며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0.18 10:10
  • 수정 2016.10.18 10:11
  • 댓글 1

오늘은 아침 먹고 바로 방으로 올라와 무작정 뒹굴뒹굴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밝은 낮 시간에 방에서 보내는 것을 불안해했던 것 같습니다. 신도분들이 절에 왔는데 아무도 맞이하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라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아침이면 몸과 마음이 일주문 옆 찻집이나 종무소, 법당 앞에 가 있었습니다. 하루 일과도 아침공양하고 잠시 방에 들렀다가 나가면 밤 9시가 지나서야 제 방에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방은 잠만 자는 곳이었습니다. 때론 방을 두고도 쉴 곳을 찾아 바깥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 방에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데 어디를 찾은들 자기 방만큼 편한 곳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마 어릴 때부터 해가 뜨면 ‘뭔가 일을 해야지, 방에 혼자 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쉬더라도 집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다 일하는데 혼자 쉬고 있다는 것이 편치 않아서인 듯합니다. 이곳이 일반 가정집이 아니고 절이라는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
일과 적당한 거리두기는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소
“신도들 위한 일에 매진”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과의 적당한 거리두기는 사람에게 휴식을 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때론 출퇴근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 거리만큼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힘이 들 때면 ‘아! 나도 밖에 휴식공간을 두고 절에 출퇴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젠 포기 했나봅니다. 그런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영어공부를 하겠다며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를 수십 번 반복해서 본적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부인을 잃은 후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 일을 겪은 주인공에게 주변에서 여행이나 휴양을 권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니요. 그런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나는 진정한 변화를 원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뉴욕에서 비행기로 5시간 넘게 걸리는 서부의 시애틀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합니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 역시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는 내면의 외침이 들립니다. 2년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의지하는 도반스님이 마음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주지를 한 만기 쉬기로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절에서는 주지스님에게 모든 하중이 집중됩니다. 그러다보니 소임살기가 무척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중스님들이 역할을 나눠 잘 살아가는 사찰도 많습니다. 보기도 좋아 보이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형제간이라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늘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서 갈등을 합니다. 그러나 서로가 이해와 사랑으로 대화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행한다고 하는 사찰이 그보다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싶습니다. 소임에 따라 잘 모시고 살면 될 것입니다. 저는 수행과 교육에 힘을 모아 보려고 합니다. 신도님들이 힘들 때 도움을 주고 기도를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게 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저도 더 준비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 하림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병원을 가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 공부하는 스님들이 돌봐야 합니다. 의사가 진료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듯  스님이 신도님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는 만큼 역량만큼 전법하라고 한 부처님 말씀처럼 괴로워하는 불자들에게 스님들의 역할이 절실합니다. 그런 일을 할 때 정말로 시주의 은혜를 갚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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