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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규 불교문화재硏 유적연구실장-상

부처님 손짓 따라 불교유적의 길로

 
“미술사 중에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데?”

미술사 관심이 신심으로 승화
‘이불병좌상 연구’로 석사논문

유홍준 선생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민족미술협의회가 운영하던 ‘그림마당 민’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대학 4년 동안 전공했어도 몰랐던 한국미술사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됐다. 이후 선생님이 이끄는 답사에 함께하고 술도 나눠 마시며 인연을 쌓았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선생님이 영남대에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가려 마음먹었다. “불상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부처님을 조각한 상을 공부하고 싶어서,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불교조각사 최고 권위자는 문명대 교수다. 불상을 공부하고 싶다면 동국대 대학원으로 진학해라.” 그렇게 시작됐다. 그 짧은 대화는 결국 내 삶을 이곳으로 이끌어주었다.

서울 토박이 집안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을 잡고 북한산 자락 사찰들을 순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목재소와 금광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도 아버지와 큰아버지 이름으로 사찰을 만들 만큼 신심이 깊었다. 중학생이 되고는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전혜린에 빠져 문학도의 꿈을 꾸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책들을 섭렵했는데, 그 가운데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있었다. 나날이 커지는 미술사에 대한 관심은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주어 1987년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전공도 살릴 겸, 답사동아리에 가입했고 매주 경주 남산을 올라 불교유적을 조사했다. 아니, 내 경우 조사라기보다 순례였다. 학우들이 유적을 열심히 연구하는 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 상호를 바라보곤 했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환희심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발심이었다.

유홍준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동국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조각회화사를 전공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 공부양의 80%는 아마 대학원 시절에 하지 않았을까. 매일 새벽에 일어나 대학원 공부방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밤 10시에 공부방을 나와 학우들과 술을 마셨어도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공부방으로 향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원 2학년 1993년 여름, 러시아 연해주 지역 발해유적 발굴조사단에 합류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를 토대로 한국에 돌아와 석사논문 ‘발해 반랍성 출토 이불병좌상의 연구’를 썼다. 이불병좌상은 ‘묘법연화경’의 ‘견보답품’ 내용 중 석가모니부처님이 다보부처님과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도상화한 불상이다. 논문을 쓰기 위해 불상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 동경대를 찾아 수장고에서 직접 눈으로 살피고 사진을 찍으며 연구를 진행했다. 그렇게 완성한 논문을 한국미술사학회에서 발표했다. 이불병좌상이 고구려 것이라는 판단을 뒤집고 발해의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 흥전리사지에서 발굴조사를 하는 모습.

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구공항 문화재 감정관실에 취직했다. 비교적 일도 편하고 월급도 괜찮았다. 대학원 시절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현장에 대한 갈증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천생 현장체질이었다. 그때 조계종이 불교문화재연구소의 전신인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을 창립하기로 했다. 종무원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루 종일 감정관실에 앉아 사람을 상대할 것인가, 현장을 누비며 불교유물을 조사할 것인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딱 한 명만 가라고 하면 사표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만두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상황인데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가느냐”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자”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본 뒤 마음을 접기로 했다. 선배는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사표를 냈다. 2000년,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에 합류했다.

정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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