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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숲이 전하는 공생공영의 길

기자명 김용규

나눔으로 더 큰 생명력 얻는 숲속 식물 생존법

생명들은 종류별로 모두 그들이 사는 동안 저마다 누리거나 감당해야 할 선물과 형벌을 부여받고 있지 않나 합니다. 먼저 식물에게 내려진 형벌이 있다면 그것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것. 그곳이 아무리 척박한 땅이어도, 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쏟아지거나 가뭄이 찾아와도, 엄혹한 추위가 엄습해 와도, 지진이나 산사태가 온다 해도 식물들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부여받은 자리에서 살아내고 피워내고 이뤄내며 살다가 그 공간에서 스러져야 합니다. 하지만 형벌만 있을까요? 선물도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 밥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즉 광합성입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수만 가지의 고(苦)를 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들은 움직일 수 있는 선물을 부여받았으나 그들은 반드시 누군가를 잡아먹고 살아야 하는 참담한 형벌을 받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동물의 세계에는 피가 흐르고 인류의 역사 역시 피로 점철되는 긴 시간을 가졌습니다.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나 형벌은 무엇일까요? 나의 생각은 ‘깊게 사유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만이 깊게 사유합니다. 사유를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채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나’라는 존재가 전부가 아니요, 마주한 당장과 현실만이 또한 전부가 아님을 알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인간 고유의 특성에서 또한 자비가 움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깊게 사유하는 능력이 바로 탐진치(貪瞋痴)의 근원이니, 그래서 사유, 그것은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기도 한 것이지요.

식물은 제게 주어진 선물, 즉 스스로 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움직일 수 없어 감당해야 할 형벌을 극복하며 제 삶을 살아갑니다. 동물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제 선물을 통해 누군가를 취해서 살아가야 하는 형벌을 극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 역시 스스로에게 주어진 깨달음의 능력으로 탐진치(貪瞋痴)를 지우며 살아갈 때 마땅히 극복해야 할 무엇을 극복하며 사는 것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나는 인간과 식물에게 공통으로 내려진 형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돈일 것입니다. 오늘도 전 세계 금융자본의 계좌는 어마어마한 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넘치도록 돈이 많지요. 그런데도 인류의 절반 가까이가 굶주리고 있습니다.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은 모자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의 어느 곡물회사는 곡물을 바다에 폐기하면서까지 곡물 값을 조절하여 이익을 취합니다. 나는 이것이 인류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형벌이 아니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식물 역시 비슷한 조건입니다. 아시다시피 비료의 3요소는 질소, 인, 칼륨입니다. 제일 먼저 등장시킬 만큼 식물에게 꼭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양분의 하나가 질소인데, 대기 속엔 질소가 넘칩니다. 무려 78%가 질소인 것이지요. 그런데 왜 농부들은 질소를 비료로 줘야 할까요? 그것은 식물들이 둥둥 떠다니는 그 질소를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질소의 3중 결합이 깨져 수소나 산소와 결합돼야 양분으로 전환이 되는데, 그게 너무도 안정적이어서 깨지지 않는 것이지요. 돈과 식량이 넘치는데 인류가 굶주리는 것과 같은 형국인 것이지요.

그런데 숲의 식물들은 그 형벌을 풀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미생물과 맺어온 공생공영의 연대입니다. 공생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식물들 대부분은 자신이 생산한 광합성 산물의 약 25% 가량을 뿌리로 흘려 미생물에게 당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당을 먹기 위해 모여든 미생물이 토양 속 질소를 식물이 먹을 수 있는 질소의 상태로 바꿔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뿌리혹박테리아도 그 중 하나인 미생물입니요. 자신이 이룬 것의 1/4을 나눠 발아래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연대로 자신들에게 내려진 형벌을 풀어낸 이들이 바로 숲의 주인공들입니다.

지옥과 극락은 모두 숟가락 길이가 엄청나게 길다지요? 그런데 지옥사람들은 밥을 못 먹고 극락 사람들은 밥을 배불리 먹는다지요? 그 비밀도 서로 먹여주는 연대에 있다지요? 바로 숲처럼 사는 것이겠지요. 인류는 지금 극락에 있는 것일까요? 지옥에 있는 것일까요?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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