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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웃 종교와의 조화와 교류-상

“당신이 좋아하고 당신이 믿는 그분이 가장 위대합니다”

▲ 불광산의 포교를 견인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이 점심공양에 앞서 공양게를 염송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종교는 같은 속에서 다름이 존재하는 것이니 굳이 다른 가운데에서 같음을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 자기 말을 하면서 천주와 붓다가 각자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면 그만입니다. 종교적 교의에서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서로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

빈승은 불교도이지만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은 비록 사람이 다르고 종교의 대상이 다르지만 어떤 종교이든 신앙이라 함은 자신의 마음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 마음에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 같습니다. 당신이 토지신을 믿으면 당신 마음이 토지신이고, 당신이 성황신을 믿으면 당신의 마음이 바로 성황신이며, 당신이 예수를 믿으면 당신의 마음이 예수이고, 당신이 마조신을 믿으면 당신의 마음이 바로 마조신이고, 당신이 부처를 믿으면 당신의 마음이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2000년으로 기억하는데 빈승이 호주에서 홍법하고 있을 때 “이 세상에서 어떤 종교가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는 참의원 로스 카메론 선생의 질문에 제가 “당신이 좋아하고 당신이 믿는 그 분이 가장 위대하다”고 대답하자 “하하”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저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신앙으로 남을 가볍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을 존중하면 남들도 당신의 신앙을 존중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 되는 것이지 굳이 통일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1989년 ‘연합보’에서 저와 나광(羅光) 주교를 초청하여 타이베이에서 ‘우주를 뛰어넘는 정신세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나광 주교와 저는 서로 알고 지낸지 오랜 사이로 비록 피차의 신앙이 달랐지만 우리들은 종교를 갖고 논쟁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그분이 불광산에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는 불광산을 개산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라서 응접실조차 없었기에 저는 그분과 같이 정자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행사를 시작하기 전 “주교님! 잠시 후 우리가 토론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 분은 역시 저보다 경험이 많은 분인지라 “각자 자기 말을 합시다”라고 하였는데 저는 이 대답이 아주 오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종교는 각자 자기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에도 다름이 있습니다. 어느 한번은 천주교가 타이베이교구청에서 종교우의모임을 열었는데 대략 3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모두 각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였기에 다들 우호를 표시하고자 “세 종교가 한 집안”이라거나 “다섯 종교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날 모임의 의장을 나광 주교가 맡았었고 저에게 주제 강연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그분께 제가 조용히 “만약 단석 위에 성황신이 있고, 마조신도 있고, 관음보살도 있고, 예수도 있다면 예를 올릴 수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분은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종교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으로 교주와 교의와 교도라는 세 가지 보물을 갖추어야 합니다. 종교의 교주를 한 군데로 모아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마치 당신에게 당신 아버지가 계시고 저 사람에게는 저 사람 아버지가 계신 것처럼 각자에게 각자의 아버지가 다른데 굳이 아버지를 모두 한군데로 모아 당신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를 구별하기 어렵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종교는 단지 “같은 속에서 다름이 있는 것”이지 “다른 속에서 같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적 가르침 역시 다릅니다. 기독교 같은 데서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불교 선종에서는 “의심을 일으켜야 깨달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종교적 교의에서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서로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교도들은 서로 왕래할 수 있으니 이는 아주 정상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호법신장이 법문을 듣고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불은 사람이지 신이 아닙니다. 신의 권한은 권위를 중시하고 있어서 바람신, 비신, 천둥신, 번개신, 산신, 물신 등 각각 자신만의 신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신명 중에는 정직한 존재가 신이고 그렇지 않으면 귀신인 것으로, 귀신은 한 등급 아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신에게 예를 올릴 때 귀신에게도 같이 예를 올립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윤회의 천신은 사람보다 높으며 사람은 기타의 지옥, 아귀, 축생보다는 좋습니다. 그러나 천신과 인간의 위에는 다시 천인의 스승이 있는데 바로 보살과 부처님입니다. 신명을 포함한 육도를 초월하여 번뇌를 끊었고 생사를 초탈하였기에 이미 육도에 속하지 않아 “삼계를 벗어나고 오행 속에 들지 않는다(超出三界外,不在五行中)”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신명을 배척하지는 않으셨기에 재세 시 경전을 설하실 때마다 항상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迦) 등이 모두 출현했던 것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진정으로 중생평등을 주창하시고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갖고 있다는 가르침을 진리로 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부터 중국에서 전해오는 전설이 있는데 신은 신선보다 높습니다. 신선의 세계라 함은 신선 이외에는 모두 귀신이고 요괴로서, 신앙의 대열에 속하지 않습니다.

빈승과 40년이 넘게 우의를 이어왔던 천주교 ‘단국새’ 추기경이 암 투병 이후에 ‘생명과 작별하는 여행’이란 책을 출간한 뒤 타이베이에서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저를 초청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저는 ‘단국새’ 추기경은 하북사람으로 황하의 물이 천주교의 추기경으로 길러냈고 저는 강소 사람으로 양자강의 물이 저를 오늘 불교의 승려로 길러냈다고 말했습니다. 추기경께서 내생에도 천주교의 추기경이 되시고 저 역시 불교의 승려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마땅히 충돌이 없을 것입니다.

합동으로 기도하며 신앙의 진선미를 활짝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대만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정송균(丁松筠) 신부가 “성운대사님! 만약 스님께서 미국에서 태어나셨다면 아마도 우리 미국에서 뛰어난 신부가 되셨을 것 같고요, 만약 제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중국의 신심있는 스님이 되었겠지요”라고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듯 많은 종교 인사들의 열린 마음은 정말 기뻐해야 할 현상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진수편(陳水扁)총통이 취임 후, 대만에 있는 18개 종교의 종교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저를 추대하였고 저는 간지충(簡志忠) 선생을 사무총장으로 모셨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각 종교의 대표들은 타이베이 국부기념관과 판교현 지역 정부강당 등에서 새해맞이 ‘음악기원대회’를 개최해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기원행사를 주관했습니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인간관계이자 종교친목이었습니다.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로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을 때 당시 뉴욕의 인사들이 불교계에서도 그 곳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천도와 기원을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빈승은 “오늘 이곳에서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는 천주교의 신도도 있고, 예수교의 신도도 있으며, 불교의 신도들도 있고, 이슬람교의 신도도 있으며 심지어는 아주 많은 종교의 신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하나님, 예수님, 마호메트께서는 각각 당신을 신앙하는 신도들을 보살피시어 그들이 당신의 가피를 받아 명복을 얻도록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재난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행복한 미래를 얻어 아름답고 원만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여주십시오”라고 기원했습니다.

존중을 우선으로 하여 분별과 대립을 없애야만 조화를 이룰 수 있고 상생할 수 있습니다. 빈승이 대만에서 60년을 넘게 보냈는데 제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도교사당의 일부 책임자들로, 제가 성황당이나 왕야묘 앞 광장에서 설법하고 포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누구도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그들 모두가 불교를 인정해주고 서로 한 집안처럼 가깝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항(北港) 마조궁(媽祖宮) 책임자도 여러 번이나 저를 초청해 사당 앞에 있는 단석에서 불법을 강연하도록 하였습니다. 곽경문(郭慶文) 이사장은 40~50년 전에 빈승에게 마조를 위해 노래를 한 곡 만들어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비록 그 분이 서거했지만 저는 ‘마조기념가’를 완성하였습니다. 그것은 친구와의 약속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고 그분의 영전에 위로를 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모든 마조궁의 뒤쪽 전각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이는 마조를 신앙하는 신도들의 관음보살에 대한 존중이며 또한 마조가 자신이 과거에 신앙하던 관세음에 대한 근본을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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