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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수 스님과 대흥사 된장찌개

양념 단순한 것이 특징…담백함은 수행정신과 맞닿아 있어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고불총림 백양사를 대표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운문선원이다. 총림 내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면서 여름에는 운무, 겨울에는 백설이 별천지를 만든다. 또한 이곳은 오랫동안 한국불교 선종의 산실로 불려왔다. ‘운문암 선방 문고리만 만져도 삼악도를 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산 태공암, 변산 월명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수행처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청화 큰스님, 곡식가루로
일종식하며 수행에만 전념

스님들 찬거리 직접 기르고
양념이 적어 반찬은 더 정갈

맛있는 된장찌개 요리 비결
처음부터 된장 넣어 끓여야

도시의 가혹한 환경 이겨낼
좋은음식 제시하는 게 과제

운문선원의 책임자는 백양사 유나 일수 스님이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삶의 문제에 대해 고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흥사 노스님의 짐을 들어드린 것이 인연이 돼 출가하게 됐다. 대흥사에서 행자로 살다 현 고불총림 방장 지선 스님을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계를 받은 뒤에는 해인사승가대학과 율원에 머물며 수행했다.

스님의 기억 속 대흥사는 엄격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도량이었다. 조실 기산 스님과 대강백 운기 스님을 모시고 30여명의 대중이 생활했다. 모든 대중은 불가의 예법에 따라 대방에서 발우공양을 했고, 공양 후에는 주지스님이나 어른스님들의 법문이 이어졌다. 평범한 말씀 속에는 언제나 수행자로서의 자세와 행동, 그리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와 조언이 가득 담겨있었다. 특히 당시 뵈었던 청화 스님은 대단히 존경스럽고 인자한 선지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루는 스님께 곡식가루를 전달해 드린 일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곡식가루로 일종식을 하면서 한 철을 나셨다.

스님 역시 대흥사 시절 공양주, 채공 등의 소임을 살았다. 당시 대흥사 살림살이는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배추와 무, 시금치, 고추 등의 찬거리는 직접 농사를 지어 장만했고, 김이나 두부는 보통 불자들의 보시로 마련했다. 소작을 준 토지가 있어 도지세가 나오긴 했지만 사찰을 운영하는데 쓰기도 빠듯했다. 불공이 들어올 때만 쌀밥을 먹을 뿐 보통은 보리와 쌀을 2대 1의 비율로 섞어 지어야 했다.

“처음 공양을 만들 때는 밥물을 맞추는 일조차 어려웠어요. 하루는 설익고, 하루는 태우고 거기에 국이며 반찬도 간이 맞질 않으니 꾸지람은 물론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대충 먹었던 기억과 어깨너머로 보았던 기억들을 더듬어 음식 만드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실력이 늘더군요. 그렇게 음식 만드는 법을 하나씩 스스로 터득해 갔습니다.”

그렇다고 공양거리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반찬은 무생채·백김치·열무김치 등 김치류와 간장, 국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전부였다. 김치 만드는 법은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대흥사 김치는 양념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말 그대로 ‘허연 김치’였다. 고춧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건강이나 맛 때문이 아니라 가난해서 그랬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대흥사 김치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담백한 맛이 났다.

“특식이라고 해봐야 음력 14·29일 삭발일에 제공되는 찰밥과 미역국 정도였습니다. 대흥사는 바닷가 근처에 위치해 미역보시가 많아 미역국을 자주 해 먹었습니다. 설에는 큰스님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이나 만둣국을, 동지에는 새알을 넣은 팥죽을 끓였습니다. 근엄한 산중에서도 이런 날은 웃음꽃이 피고 엄격한 산사의 법도를 벗어나 한담을 주고받기도 했지요.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는 노스님이 편찮으시면 병인식으로 해 드렸던 잣죽입니다.”

당시 스님이 가장 자신 있게 만들었던 음식은 된장찌개다.

스님만의 된장찌개 만드는 법을 설명할 때는 당장이라도 공양간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비법은 찬물에 다시마를 담가 육수를 낸 후 된장을 풀어 두부와 무를 썰어 넣는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에 보글보글 끓여내면 완성이다. 보통의 경우 된장을 나중에 넣는데 처음부터 넣는 것이 스님만의 방법이라고 한다. 김치찌개 역시 스님만의 방식이 있는데 찌개를 끓일 때 된장을 넣으면 맛이 더욱 깊어진다고 귀띔했다.

가끔 된장을 끓인 막장과 콩비지, 두부전골 등 콩으로 만드는 음식도 해먹었다. 이러한 공양물은 속가의 것과 비슷하지만 절집 음식은 물이 좋고 양념이 단순해 재료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이러한 담백한 맛이야 말로 반드시 전승돼야 할 사찰의 음식문화라고 강조했다.

“모든 병은 물과 공기, 음식에서 기인합니다. 운문암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는 전통적인 사찰음식만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은 방편입니다. 마치 티베트 스님들이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육식을 하는 것처럼 수행정신이라는 승가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도시의 가혹한 환경을 이겨낼 음식의 방편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찰음식의 계승은 물론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고민이 함께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일수 스님은

1973년 지선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했다. 해인사 승가대학과 율원을 졸업한 후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현재 고불총림 유나 소임을 맡아 운문선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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