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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웃 종교와의 조화와 교류-하

“필리핀의 아기 예수님도 불광산 부처님을 참배합니다”

▲ 불광산 스님들이 중국 하북성 우거사에서 도난당한 불두를 중국 문화부에 기증하기 위한 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나중에는 신명들이 갈수록 점점 많아져서 요 근래 2~3년 사이에는 1000명이 넘는 신명들이 매년 12월 25일 예수교의 크리스마스 당일 불광산에 와서 부처님께 참배를 하기로 약속하고 모든 신명의 우호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의 산토니뇨, 중국 미주(湄洲)의 마조(媽祖), 상해의 성황신까지 모두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 날에는 1000명의 신명들이 1만명이 넘는 신도들에게 둘려 쌓여서 불타기념관 대각당과 보리광장에서 춤을 추거나 기쁘게 노래를 하니 정말 즐겁기 그지없는 날입니다.”

빈승이 불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아침예불에서 매번 “삼세일체불 아미타제일(三世一切佛 阿彌陀第一)”이라고 독송할 때마다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아미타불이 첫째라고 하면 “석가모니불은 둘째가 되어야 하고 어떤 부처님이 셋째, 넷째가 된다는 말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미타불을 모신 염불당에서는 당연히 아미타불이 첫째이고 대웅전에서는 석가모니불이 첫째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첫째이고 성황당에서는 성황신이 첫째인 것으로, 우리 모두가 신앙하는 대상은 마땅히 첫 번째로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등불을 밝혔지만 당신이 다시 하나 더 밝힌다고 해도 그 빛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 “부처와 부처는 가르침이 같고, 빛과 빛은 서로 지장을 주지 않는다(佛佛道同 光光無礙)”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대상은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대상이 다르다고 신도가 자기 입장에서 대립할 필요가 없습니다.

50년 전 불광산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일부 신도들이 자신들의 신명을 가마에 태우고 불광산 대웅전 부처님께 예를 올리러 왔는데 “신명이 자신들에게 참배 가자고 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낮에 왔지만 한밤 중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신명의 시간을 따졌습니다. 신명이 대웅전에 들어올 때 그들은 모셔온 가마를 위아래로 흔들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의 이 모습이 정말 보기 흉하다며 그들을 대웅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 당시 대웅전 노전 소임을 맡고 있었던 의정(依靜) 스님이 저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빈승은 “사람도 부처님께 절을 올릴 수 있는데 신명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이 왜 안 되냐며 신명이 하는 절은 가마를 든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이상하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부처님께 하는 절은 사람이 하는 절모양이 있고 신이 부처님께 하는 절은 신의 절모양이 있는 것인데 이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불광산의 우리는 불교를 대표해 신명도 포용하여 한 집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신명과 부처가 우호적이니 ‘산토니뇨(어린 예수상)’도 불광산 참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불타기념관이 2011년 낙성한 이후 많은 신명들이 끊임없이 참배를 왔습니다. 높이 48m의 불광대불 좌상은 기단부의 불광루까지 합해서 높이가 108m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동불좌상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신도교의 신도들이 신명을 태운 가마를 메고 성지순례를 올 때 모두가 “우리는 대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신명 신도들은 부처님께 예불 드리는 것을 “대장께 인사 드린다”라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데 이 말투가 비록 길바닥 어투이기는 하지만 토속적인 분위기가 가득하고 친근하게 느껴져서 정말 귀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실 이 말도 틀린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과거의 수많은 신명들 가운데 선공여조(仙公呂祖)는 황룡(黃龍) 선사를 스승으로 모셨고, 관운장은 여몽의 수하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후 혼령이 흩어지지 못하고 “내 머리를 돌려줘! 내 머리를 돌려줘!”라고 날마다 울부짖었습니다. 나중에 관운장은 천태산 지자대사를 만나게 되어 “과거에 네가 참수했던 안량(顏良)과 문추(文醜)의 머리는 어떻게 돌려 줄테냐?”라는 대사의 말에 순간 깨닫고 지자대사께 귀의하였습니다. 마조 임묵낭(林默娘)은 관세음보살의 신도였고 민간에 유명한 청수조사(淸水祖師)도 출가자이며 ‘북항마조상’은 중국 복건지역에서부터 수벽(樹璧) 선사께서 짊어지고 대만으로 모셔온 것입니다.

그래서 빈승은 수많은 신명 도교 신도들에게 불교와 도교는 옛날부터 마치 형제처럼 다툴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가 아껴주고 보살펴주는 사이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수많은 신명들이 성지순례를 처음 왔을 때 빈승은 그들에게 홍바오(紅包 : 빨간 봉투에 담아서 주는 용돈, 역자 주)를 하나씩 주어서 인연을 맺거나 종잇장처럼 얇은 금패를 주어서 환영의 뜻을 대신했습니다.

나중에는 신명들이 갈수록 점점 많아져서 요 근래 2~3년 사이에는 1000명이 넘는 신명들이 매년 12월25일 예수교의 크리스마스 당일 불광산에 와서 부처님께 참배를 하기로 약속하고 모든 신명의 우호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의 산토니뇨, 중국 미주(湄洲)의 마조(媽祖), 상해의 성황신까지 모두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 날에는 1000명의 신명들이 1만명이 넘는 신도들에게 둘려 쌓여서 불타기념관 대각당과 보리광장에서 춤을 추거나 기쁘게 노래를 하니 정말 즐겁기 그지없는 날입니다. 종교계의 단결과 조화로움에 모두가 찬탄하게 되니 어찌 아름다운 대만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대만에서는 종교간 다툼과 분쟁이 없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음에도 싸움이 없고 서로 왕래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니 정말 민주적인 선진국이라는 말을 유엔에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보물섬’이라는 대만에 대한 별칭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우의라는 면에서 우리 대만은 모두가 종교적으로 단결하고 우호 교류하는 곳입니다. 종교간 조화와 공존의 가치를 진정으로 구현하고 있기에, 세계적인 본보기의 바른 예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공표할 수 있습니다.

전통 종교들은 연합하여 총회를 설립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조화와 상생의 기반 위에 빈승은 ‘중화전통종교총회’를 연합하여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하였습니다. 총회조직을 통해 바른 믿음을 가진 궁묘(宮廟)와 신도들과 왕래해 종교융화와 사회화합의 기능을 이루게 되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2014년 12월24일 불광산 운거루에서 추진준비대회를 먼저 개최했습니다. 입법원 원장 왕금평(王金平) 선생이 참석하여 의장을 맡았고 수백 명의 궁묘 책임자와 이사장 등이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비록 아직 정식으로 설립이 되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한결 같은 호응을 보여주어 왕금평 원장을 총회장으로 추대하고 부총회장은 심보화상, 입법위원 허첨재(許添財), 북항 조천궁(朝天宮), 이사장 채영득(蔡咏鍀)과 행정원 정무위원 양추흥(楊秋興)이 각자 주요 소임을 맡았습니다.

나중에 또 가오슝시(市) 진국시장을 수석고문으로 모셨으며 자용 스님이 감사장을 맡았으며 진가륭(陳嘉隆)이 사무총장을 맡았습니다. 여상 스님이 내정부(內政部)에 창립신청을 하였는데 이미 입안 통과되어 2015년 6월 초 창립대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가오슝 내문 지역에서 200여년 동안 전해 내려 온 전통인 “나한문에서 부처님을 영접하다(羅漢門迎佛祖)라는 경내 퍼레이드 행사가 국가주요민속행사로 지정이 되었다”는 말을 제자로부터 들었습니다. 우리도 일 년에 한 번 거행하는 불타기념관 신명성지순례친목회가 우리 국가와 사회를 위해 다원화된 문화를 보여주고 종교융화를 이루는 소중한 자산임을 다 함께 보여주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과거 불교에는 본래 가람(伽藍) 보살과 위타(韋馱) 천신 두 분의 호법신장이 있었는데 모두 무장(武將)입니다. 현재 불타기념관에는 특별히 ‘문전(文殿)’과 ‘무전(武殿)’을 지어 산동성 곡부(曲阜)의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와 산서성 운성(運城)의 관성제군(關聖帝君) 관운장을 모셨는데 네 개의 탑에 모신 사대보살과 문무 두 성현이 함께 공존하고 계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타기념관 보리광장의 한쪽 편에는 행문(行門)의 선종, 정토종, 율종, 밀종 조사를, 다른 한쪽 편에는 해문(解門)의 화엄종, 천태종, 삼론종, 유식종 조사 등 여덟 종파의 조사들을 모셨습니다. 이 외에도 빈승은 불교의 남녀평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나한 18분 가운데 세분의 여성나한을 모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며 하신 첫마디 선언이 바로 “대지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라는 말씀으로, 일체중생 모두가 평등하니 서로 존중하고 서로 포용하며 상호 침범하지 않아야만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이러한 상호 존중과 포용의 정신은 이미 대만에서 입증이 되었기에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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