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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보리선수 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47. 자비의 근기 ②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10.25 16:44
  • 수정 2016.10.25 16:45
  • 댓글 0

자비심 가진다면 업에 따른 근원적인 질병도 치유할 수 있어

 
수행에 정진하여 최고경지에 도달하려면 자비심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제 이야기가 불문에 귀의한 제자가 갖춰야 할 최고 경지에 달하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늘 두통이나 요통에 시달렸던 사람은 통증 해결을 위해 왔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도 제 음악 소리를 들으면 즐거워하고 건강해지는데, 하물며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여러분의 질병도 철이 없어 비롯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무명하여 업장을 쌓고 공덕을 깎기 때문에 질병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심리적인 질병도 많습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이지요. 지혜가 없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질병을 앓는 이유는 거짓말이나 사기, 울화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공덕이 없거나 자비심이 없어서 생기게 되는 질병입니다. 최소한 이곳에 온 사람 중 절반 이상은 그럴 것입니다. 심지어 탐욕도 있기 때문에 병이 듭니다. 병이 들었을 때 빨리 깨닫고 자비심으로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아끼고 중생을 사랑하며 주위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진푸티상사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생각만 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고 이가 갈려요.”

이런 분이 계신다면 당신도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니 똑같은 미움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면 끝장입니다. 대대로 지옥에 떨어지니까요. 지옥에 가지 않는다 해도 인간 세상에 살면서 신체의 반이 지옥의 고통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생에서 절반이 지옥에서의 고통을 겪습니다. 이 질병들의 원인은 바로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아파서 쓰러졌습니다. 같은 도시에 살지 않지만, 주위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어 아들은 아내가 어머니를 보살펴주기를 바랐습니다. 전화를 받은 며느리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저도 다리를 다쳐서 어머님을 보살필 수 없어요.”

멀쩡한데 거짓말을 했다가 2달 후 진짜 이유 없이 넘어져 무릎 뼈가 깨졌습니다. 정말 집에 누워있게 되었지요. 이 병이 어떻게 생겼나요? 자비심 때문에 생겼나요?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철없이 “시어머니와 결혼했나요? 아들과 결혼했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결혼한 상대가 친정어머니에게 매질해도 전혀 상관이 없나요? 너무 이기적이면 자비심이 모자란 것이고, 너무 질투가 심한 것도 자비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더욱 자비가 없는 행위입니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이 모두 나쁜 사람으로 보이면 당신도 자비심이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은혜를 몰랐으니까요. 모두 늘 함께 있는 사람인데 상대방에게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온정이 더욱 많을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을 하지 않고, 나쁜 면만 보거나, 고통을 주거나, 불편하게 했던 점만 보고,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인데, 평소에 아무리 칭찬해도 기억하지 못하다가 조금만 야단쳐도 평생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속이 좁기 때문에 큰 자비심이 영원히 생기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질병도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진실한 자비심으로 온 세상 사람을 사랑하고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그들의 장점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심장은 따뜻해지고, 에너지가 생겨나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증가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는 자연히 줄어듭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광명이 오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질병이 차도를 보이거나 완치됩니다. 질병은 큰 문제입니다. 질병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유전됩니다. 많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체의 질병은 대부분 유전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심장병을 앓았다면 당신 대에 이르면 한결 더 심각한 풍습성 심장병이, 3대에 이르면 심장을 이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돼지 심장을 이식하여 별일 없으면 잠만 자는 것도 여러모로 괜찮겠군요. 유전이 대를 이어갈수록 질병의 강도가 더 높아집니다. 우리의 질병은 끊임없이 발전합니다.

우리의 업장은 사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인데, 잘못이 늘어갈수록 질병도 깊어집니다. 오늘 화를 좀 내고 내일도 화를 내고 1년 내내 화만 내면, 2년 뒤에는 암에 걸리거나 화병으로 죽어버릴 것입니다. 누적되니까요. 사실 누적이 된 화는 그 에너지가 간이나 비장, 심장 혹은 다른 부위에 울체한 것으로, 울체가 오래가면 종양이 되어 버립니다. 양성 종양이라면 몰라도 악성 종양은 귀신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의사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몸 안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종양을 수술하여 적출해도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깨끗이 정리되진 못합니다. 줄기를 다 제거했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고 현미경에도 나타나지 않아서 의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의사가 적출한 것은 고구마가 자라는 그 부분만 수술로 잘라낸 것입니다. 작은 것은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되는 작은 세균이었지만 내년이면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귀신이나 악마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해결하려면 자비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질병을 뿌리부터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법입니다. 건강하고자 하는 낮은 경지이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높은 경지이든, 자비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즐거움은 나중의 일입니다. 고통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교화는 고통을 벗어난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합니다. 병원과 같습니다. 병원이 왜 있지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있습니다. 각 병원과 의료행위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병을 치유합니다. 마음의 병에서 생리적인 병까지 거기에다 번뇌도 치유해주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교화는 근본적으로 우리를 치유하고 도와줍니다. 다만 우리의 업이 너무 크고 오염층이 너무 두터울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사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믿을 수는 없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습니다. 남들은 도금하지만 여러분은 쓰레기를 입히고 있으니까요. 쓰레기 한 겹, 다시 사탕 한 겹, 다시 쓰레기 한 겹, 아스팔트 한 겹, 또 쓰레기 한 겹, 아스팔트 한 겹, 다시 쓰레기 한 겹을 입히면 미사일도 꿰뚫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떨까요? 듣기 싫겠지만, 고통은 여전히 여러분 것이 됩니다.

부처님은 자비롭습니다. 오늘 부처님이 여러분에게 고통의 해결법을 알려 주었으니 믿든 믿지 않든 여러분의 몫입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서 법문하면,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듯 말이지요.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여러분의 몫이고 복의 여부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아도 현재 돈이 많다고 하는데 그것이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부자가 목숨을 잃는 재앙을 초래하고, 가정이 파탄 나고, 집안의 아이는 건달보다도 못합니까! 그렇지요? 가난할 때는 뜻 있게 살고 삶에 활력이 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돈이 있고 보니, 집은 집 같지 않고, 사랑도 없고, 엄마는 엄마 같지가 않고, 아이는 아이 같지 않습니다.

이런 느낌이 있나요? 어떤 이는 정말 그렇습니다. 돈이 많지 않으면 느끼지 못합니다. 돈이 많을수록 정은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없어야 참된 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빈털터리가 되어도 정이 사라집니다. 배가 너무 고프게 되면 진실한 감정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불법의 최고경지란 행복한 삶을 살고 마음으로 세상을 통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날이 아주 즐겁다면 화병 때문에 바보가 된 것이니 틀림없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번뇌하지는 않습니다. 제 말을 기억해 주세요. 돈이 있어도 교만 방자하지 않습니다. “나 부자야!”라고 하면서 어디서든 목소리를 높이고, 허리도 굵어지고, 길을 걸을 때도 뒷짐을 지고 도로 한복판을 걷습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이해한 후에 용감하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치란 이치는 다 알고, 책이란 책은 다 읽고, 매일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지혜를 모두 자신의 행위에 적용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무술을 연마할 때의 여러 가지 법처럼 말입니다. 책에서 그 동작을 따라 연습하고 따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싸움을 하게 되면 동작을 모두 잊어버립니다. 근간인 정신적 경지가 동작과 융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치를 깨달은 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불살생을 예로 들 수 있지요. 깨달음을 얻은 후 살생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사실 이 이치를 이해하면 이미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살생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니까요. 욕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알면 욕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깨달음을 이루면 욕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영원히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이치는 간단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을 설득하면 잘못을 고치겠다고 합니다. 늘 사람을 때리는 사람은 무엇을 얻게 될까요? 다른 사람에게 매 맞게 됩니다. 늘 욕을 하는 사람은 욕을 먹거나 맞게 됩니다. 왜 더 심각해질까요? 욕을 하면 욕을 먹을 뿐만 아니라, 욕보다 더한 보복을 당합니다. 살인하면 살해당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인과관계를 알고 나면 다른 사람을 욕할 수 있을까요? 8대 조상까지 욕을 먹게 할 작정이라면 욕을 해도 됩니다. 욕을 먹고 싶지 않다면 욕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움을 주고 칭찬을 해야 합니다. 칭찬은 비웃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어야 합니다. 칭찬을 해야지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칭찬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아부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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