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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얻은 것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1.01 10:58
  • 수정 2016.11.01 10:59
  • 댓글 0

무량사에서 지내는 일상은 평범합니다.

길 위에서 살다 가신 부처님
흐르는 물처럼 유행 삶 살아
고요한 수행도 효과적이지만
한 발짝 나간 삶도 배움 돼

아침에 일어나 자비도량참법을 하고 공양 후 도량을 간단히 청소합니다. 청소가 끝나면 커피를 마시며 대중들과 함께 모여 회의를 하죠. 그 후 대중들과 함께 경전을 읽는 시간을 가집니다. 공부하다 보면 사시마지 올릴 시간이 되는데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점심공양 시간입니다.

해제 철의 경우 이렇게 오전 일정을 마치면 오후 시간에는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보내지만 안거기간에는 계속되는 좌선 수행이 마련되어 있죠. 밤 9시에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 일정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고 각자 숙소로 흩어져 휴식을 취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평화로운 일상들이 단조롭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스님들이 응당 소화해야 하는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하며 그 단조로움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어제까지 그러한 일상을 살아가던 제가 지금은 목포에서 출발한 제주행 배를 타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화물칸에 싣고 승객들이 머무는 객실로 올라온 순간, 수많은 사람의 인파를 목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집단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 무리들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시끌벅적 깔깔대며 웃어 댑니다.

가장 저렴한 배표를 끊어서인지 좁은 객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누워있습니다. 그 속에서 5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갑갑할 것 같아 편의점 앞 카페에 짐을 다 옮기고 자리를 잡습니다.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맛봅니다. 혓바닥에서 시작된 알싸함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깨워내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기분이 상쾌해지고 기뻐지니 몸을 좀 움직이고 싶어졌습니다.

배 갑판으로 나가봅니다. 아직 10월이지만 바닷바람이 상당히 쌀쌀합니다. 이곳에도 왁자지껄한 고등학생 무리가 여기저기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탁 트인 풍경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다시 편의점 앞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머리카락을 하얀색으로 염색한 한국인, 머리카락이 노란빛이고 눈이 파란 외국인, 학생들처럼 싱글벙글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싱그러운 젊음의 학생들까지… 마음이 짜증 날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제 마음은 기뻐졌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셨다고 기록된 35세부터 열반하셨다고 기록된 80세까지 45년간의 기간을 길 위에서 살아가셨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를 쏟아붓는 우기 4개월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항상 길 위를 걸으셨고, 길 위에서 탁발 공양하셨으며, 길 위에서 설법하셨고, 길 위에서 주무셨습니다. 한 곳에 고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물처럼 인연 되는 중생들과 만나 그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유행의 삶을 사셨죠.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안거기간 동안 고요하고 어찌 보면 단조롭고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에서 내면으로 깊게 여행하는 수행의 삶은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수행의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해제 철 다양한 외연들과 접촉해 일어나는 마음을 잘 관찰하고 조절하며 삶을 살아내는 것 또한 큰 배움이 있죠.

앉아서 배울 수 있는 것과 길 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동안 앉아서 스스로를 고요 속에 가두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제 고집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부처님처럼 길 위에서 마을로 한 발짝 먼저 다가가 그들과 만나 소통하는 유행 설법의 삶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해동 사문 원빈 이제부터 마을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을 만나러 갑니다.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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