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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재사용과 재활용

기자명 최원형

고물상 물건순환은 낭비 줄이는 재사용의 지혜

어릴 적 방학이면 이웃집에서 빌려온 리어카에다 우리들이 봤던 지난 학기 교과서며 날짜 지난 신문, 빈병 등을 모아서 4남매가 고물상에 팔러가는 게 연중행사였다.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는 그렇게 집 안을 청소하시고 대신 고물상에 폐품들을 팔아서 생긴 수입을 우리 4명에게 고루 나눠주셨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활보하는 일이 점점 창피했지만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전자계산기는 고사하고 눈금을 쉽게 볼 수 있는 저울도 흔치 않았다. 추를 올려놓으며 양팔의 수평을 살펴 무게를 재는 저울이었는데 나는 그 무게를 재는 게 늘 어려웠다. 기억을 되살려보니까 워낙 중량이 나가는 것들을 취급하는 고물상이어서 그런 저울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가져간 고물들을 다 부려서 일일이 무게를 쟀고, 내 바로 아래 남동생은 흙바닥에다가 우리가 부르는 무게를 덧셈했다. 고물상 주인은 내 동생더러 계산을 잘도 한다며 늘 칭찬했고 동생은 그 칭찬에 춤추는 고래가 되어 나중에는 암산을 척척하기에 이르렀다. 쓰레기로 생각하던 것들이 돈으로 바뀌는 과정도 신기했지만 저 많은 쓰레기를 고물상아저씨는 대체 왜 돈을 주고 살까 하는 의문이 늘 남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그렇게 고물상으로 가져가지 않았던 폐지며 빈병들은 쓰레기로 매립되거나 소각되었을 것이다. 비록 아버지 강압에 못 이겨 시작했던 일이나 물건의 순환에 아주 작은 기여를 했던 소중한 추억이다.

빈용기보증금 제도 활용 통해
빈병의 재사용 대한 인식 가져
재활용도 상당한 에너지 소요
쓰레기 생산 대한 면죄부일 뿐

우리 집 분리배출을 담당하는 작은 아이는 대체로 수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모아놓은 재활용품들을 들고 나선다. 먹고 마시느라 남겨진 쓰레기들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물건을 사면서 생긴 포장재들이다. 유독 택배가 많았던 주는 그 양이 엄청나다. 집안에 플라스틱, 빈병, 알루미늄, 비닐, 종이류를 따로 분류해 모으기 때문에 어떤 게 유독 많은지가 눈에 띄는데 대체로 비닐과 플라스틱 그리고 종이류다. 집안에서 종류별로 분리해서 버리는 통들을 각각 두던 걸 올 초에 그 통을 바구니 하나로 줄여봤다. 그 안에다 개별 봉지들을 두어서 분리하려니 감당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오는 양이 얼마나 많은지를 시각화하기에 좋을 듯싶었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날에 곁들여 맥주라도 한잔 하게 되면 빈병이 꽤 나온다. 사실 빈병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 빈병 환불이 시행되고 있어서 그걸 들고 슈퍼마켓으로 가져가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게 귀찮아 재활용 분리 배출할 때 슬쩍 함께 버리곤 했다.

안되겠다 싶어 어느 날 빈병만 따로 모으는 통을 두었다. 식구들은 왜 갑자기 빈병을 모으느냐고 궁금해했다. 재사용에 대해 얘길 들려줬더니 그 자리에서 내가 빈병 재사용 담당이 돼버렸다. 모여진 맥주 병 일곱 개를 들고 처음으로 동네 슈퍼에 갔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규모의 슈퍼는 빈병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빈용기보증금’제도라는 게 있는데 거부를 하니 이상했다. 주인과 더 얘길 하려다 다른 곳엘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하고 동네에 있는 대형 유통 마트로 갔다. 그곳에서는 순순히 받아줬다. 그렇게 처음 빈병을 돌려주고 받은 돈이 330원이었다. 고작 병 일곱 개를 들고 와서 환불받는 나를 마트 매장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며 어릴 적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으로 가던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게 그때와 다른 점이긴 하지만.

사실 빈병은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을 해야 맞다. 재활용이란 명분은 우리가 함부로 쓰레기를 마구 생산하는 일에 일종의 면죄부역할을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차피 재활용하니까 괜찮아, 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빈병이 재활용의 길로 들어설 경우 병을 녹여서 새로 만든다. 원료를 재활용하는 측면은 있으나 여러 공정을 거치는데 에너지는 여전히 든다. 그러나 재사용은 그 병을 그대로 세척해서 다시 쓰게 되니 상당한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재사용을 할 때는 쓰고 난 병은 지체 없이 깨끗하게 헹구고 가능하다면 뚜껑을 닫아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재사용에 쓰이는 에너지마저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빈병을 깨끗이 헹구어 재사용의 사이클로 넘겨주는 일은 연결된 모든 생명들을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재사용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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