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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리치(Mārīcī) 또는 마리지천(摩利支天)

동아시아 불교에서 전란 피하거나 전쟁 승리 목적 숭배

▲ 마히샤 아수라를 죽이는 두르가 여신상. 녹니석. 12세기경. 콜카타 인도박물관 소장. 이러한 호전적인 힌두의 전투 여신은 아마도 마리치의 도상 발전에 기본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불교의 과거 속에서 전쟁의 여신을 숭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의례나 도상 등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문헌으로만 그 흔적이 겨우 남아있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과 일본 등에는 비교적 널리 유행했던 불교의 전쟁 여신이 있는데, 이 여신이 바로 마리지천, 또는 마리치이다. 동아시아 불교의 맥락 속에서 마리지천은 주로 전쟁과 국란의 위험 속에서 자주 그 전란의 화를 피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숭배되었으며, 주로 무인(武人)들 사이에서 숭앙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고종 4년(1217)에 거란을 물리치기 위해서 마리지천도량(摩利支天道場)을 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일본의 사무라이가 이 신들을 섬겼던 것은 이 여신 신앙의 기본적인 성격을 말해준다.

고전기 이후 숭배된 힌두 여신
두르가 영향에 인도 불교 정착

고려 고종 4년 거란 물리치려
마리지천도량 열었다는 기록

태양 밝기 전 새벽녘 광채 의미
여명의신·새벽의 신으로도 불려
고대 인도에서는 칠성현을 대표

많은 불교 속의 신중과 같이, 이 여신도 역시 본래 인도에서 기원한 여신이지만 인도 내에서도 상당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 여신으로 추정된다. 다소 의아하겠지만 이 여신의 시작을 초기 인도미술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약시(Yakṣī에서 시작된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미란다 쇼(Miranda Shaw)가 그 가운데 한 명일 것이다. 그에 따르면, 나무의 정령신 가운데 아쇼카(Aśoka) 나무, 즉 무우수(無憂樹)의 정령인 아쇼카 약시가 대승불교 속으로 들어와 개별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바르후트나 산치 등의 조각에 나타난 바와 같이 무우수를 휘감고 있는 약시는 풍요와 다산을 암시한다. 후대의 조각에서 보듯이 마리치 여신은 무우수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도상의 특징이 초기의 흔적을 반영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사다나말라 Sādhanamālā’와 같은 밀교 문헌 등에 나타나는 것처럼 ‘무우수의 광명 속에서 마리치가 등장했다’는 표현도 이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아마도 마리치라는 표현이 초기 베다문헌에 등장하지 않고, 베다 후기 문헌이나 마하바라타 속에 처음 등장할 정도로 후대에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초기 수목의 정령이 갑자기 무기를 들고 있는 전쟁의 여신으로 둔갑하는 것도 너무 급작스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간 과정으로 학자들은 초기 힌두 밀교의 여신숭배가 팽배하던 6세기 무렵 이후 두르가(Durgā) 신앙의 영향을 제시한다. 두르가 여신은 고전기 이후 가장 널리 숭배되던 여신이었기 때문에 이 힌두 여신의 영향으로 중세의 인도 불교 속으로 마리치가 전쟁의 여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한다. ‘데비마하뜨미야(Devīmahātmya)’ 같은 문헌을 통해 두르가는 가장 위대하고 용맹한 전투의 여신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같은 문헌의 등장과 조각은 후기 고전기에 크게 발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려지는 전투 여신은 그 어떤 남성신들도 감당하지 못했던 적까지 물리칠 수 있었던 매우 강력한 여신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 6세기경)’ 같은 초기의 밀교경전에 일찍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의 마리치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불분명하다. 초기 수목의 여신에서 어떻게 강력한 전투 여신으로 부상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후에 마리치 여신은 매우 독특한 자신만의 특징을 부여받은 채 인도 밀교 속의 중요한 여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여신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독특한 면모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이 여신이 들고 있는 무우수의 나뭇가지는 악귀를 쫓는 샤먼의 경향을 반영한다. 그렇지만 마리치 여신을 말해주는 강력한 특징은 무엇보다 이 여신이 타고 다니는 멧돼지이다. 멧돼지는 곧장 비슈누의 화신 가운데 하나인 바라하(Vāraha)를 떠올리게 되지만 비슈누와 직접적인 관계는 거의 없다. 다만, 고대 인도에서 멧돼지는 고전기부터 뛰어난 전투의 동물로 묘사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투의 여신으로 자리 잡은 마리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멧돼지는 물 속에서도 자유롭고 땅을 잘 파헤치는 특징 때문에 수중과 육상에서 자유로운 동물로 그려졌다. 악마 히란야악샤(Hiraņyākṣa)와 싸워 땅의 여신을 물 속에서 구출해냈던 신화적 사건 속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그려지고 있다.

▲ 마리치 여신상. 팔라왕조 11세기경. 콜카타 비를라 박물관 소장. 무우수 가지가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다. 여덟 개의 팔에는 바즈라를 비롯한 여러 무기가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마리치가 보여주는 빛의 상징이다. 비슈누는 가끔씩 수리야(Sūrya)와 혼합되기도 하는데(중세 이후 두 신상이 혼합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빛을 쏟아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신이 빛의 신이라는 점에서 유사한데, 이 점에서 마리치는 비슈누나 태양의 신 수리야와 일정한 관련을 맺게 된다. 마리치를 흔히 여명(黎明)의 신, 혹은 새벽의 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태양이 밝아오기 이전의 새벽녘의 광채를 의미한다. 태양이 오기 전, 새벽의 여신인 우샤스(Uṣas)의 흔적이 여기에 나타난다. 하지만 베다의 신 우샤스를 마리치와 연결시켜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새벽의 광채는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석가모니 붓다가 완전한 무상정각을 이룬 그 시각이 새벽의 빛이 떠오를 때이기 때문이다. 부다가야에 이 신상이 많이 세워진 이유의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리치가 즉각적인 깨달음을 암시하는 밀교적 신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이 새벽빛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멧돼지와 관련해서, 마리치는 다시 한 번 태양신과 유사한 특징을 갖는다. 태양신은 일곱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지만 마리치는 일곱 마리의 멧돼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것은 힌두교의 태양신에 대응하는 신을 불교가 각색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리치와 관련해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북두칠성과의 관계이다. 본래 마리치는 고대 인도의 칠성현(七聖賢 Saptaṛṣi)을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물론 그 일곱 명의 현자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 칠성현은 북두칠성을 이루는 각각의 일곱 개 별을 의미하는데 이들에게는 각각의 일곱 부인들이 존재한다. 이 부인들을 크리티카(Kṛttika)라고 부르는데, 이 일곱 여신들이 집단적으로 도상화된 적은 거의 없다. 이들은 북두칠성을 따라 움직이는데(그래서 이들을 부부로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좀생이 별자리, 또는 플레이아데스라고 부르는 별무리들이다. 마리치는 어쩌면 이들 일곱의 통합적 표상일지도 모른다. 중국불교나 도교에서 북두칠성을 두모(斗母)라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크리티카는 본래 위태천(韋駄天)의 양모(養母)가 된다. 따라서 크리티카나 칠성현(북두칠성)이 마리치로 변형되었거나 이들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면, 중국 등에서 마리치와 위태천이 함께 조성되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 사진 2의 세부 사진. 양쪽으로 멧돼지 일곱 마리가 나뉘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라후가 새겨졌다. 라후가 새겨진 것으로 미루어 이것은 일곱 멧돼지가 어떤 별을 표상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특징들과 더불어, 11세기 또는 12세기 경에 조성된 마리치 조각은 주로 비하르 지방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는 인도 동북부 지역에서 이 마리치의 신앙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 조성된 조각상들은 대체로 여덟 개의 팔마다 무수한 무기를 취하고 있는 상들이 대부분인데, 칼이나 활, 화살, 바즈라, 곤봉, 올가미, 무우수의 가지 등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일곱 마리의 멧돼지(또는 그냥 돼지)가 발 아래쪽에 조각된다. 자세는 앞쪽으로 상체를 내밀게 되는 듯 보이는 자세로, 왼쪽 다리는 뻗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굽혀서 앞쪽으로 도약할 듯한 자세(pratyālīḍha)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앞서 언급했듯이 두르가 여신이 많이 취하는 역동적이며 때로 호전적인 자세의 조성에 등장한다.

각설하고, 마리치는 매우 다양한 변화의 과정과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불교의 신 가운데 하나이며, 그 기원과 발전과정이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신이 호전적인 전투의 여신으로 조성되어 불교의 밀교 수행이나 의례 전통 속에 있었던 승려들과 신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 신상이 요기니탄트라(yoginītantra) 수행 속에서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졌는지는 이들 의례에 대한 연구가 더 수반되어야할 것이다. 마리치가 가질 수 있는 밀교 고유의 사상적 특징들 뿐 아니라, 이 여신은 동아시아에서 실제 전투에 임하는 국가에서 승전을 기원하기 위한 의례적 목적으로 신앙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무사들이 승리하고자 하는 기원에서 주술적 의도를 갖고 숭배되기도 했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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