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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위 소보면 정토원

선농일치·나눔실천으로 ‘군민도량’ 자리매김

▲ 정토원은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이웃과 나누며 군민도량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북 군위군 소보면 맑은 물 굽이쳐 흐르는 위천을 따라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농로를 거슬러 황산 줄기를 오르다 보면 이내 목탁소리 청아한 도량 하나와 마주한다. 단출한 모습의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한 동이 전부인 이곳은 군위의 새로운 전법도량으로 떠오르고 있는 ‘정토원’이다. 일주문서 바라본 모습은 소박한 시골 사찰이 분명한데 요사채 뒤로 돌아들면 영락없는 농가의 일상이다. 경운기며 트랙터, 농기구가 즐비하고 너른 마당에는 가을걷이를 끝낸 사과와 나락, 고추, 깨 등의 농작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삶을 실천하는 도량이라는 소문이 과언은 아닌 듯싶다.

빈 농가에 부처님 모시고 개원
전법 발원하며 1000일 절수행
직접 농사지어 지역·사찰 회향
버스개조 순회 만발공양 추진

군위 사람들은 정토원을 “퍼주는 사찰”로 부른다. 공들여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지역사회와 나눌 뿐 아니라 동화사, 해인사, 내원사 등 전국의 사찰과 제방선원으로 회향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산문을 연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신흥 사찰이 군위 사람들 속에 스며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토원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8년 전인 2008년이다.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고봉 스님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포교와 전법에 집중하기 위해 만행에 나섰고, 여러 지역 가운데 선택한 곳이 지금 정토원이 서 있는 자리다.

시작은 초라했다. 버려진 농가에 부처님 한 분을 모신 게 전부였다. 인적 드문 산기슭, 이곳이 사찰임을 알리는 표지석 하나 세웠다고 사람들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개의치 않았다. 1000일 절수행을 시작하며 ‘포교’와 ‘전법’이라는 원력을 더욱 굳건히 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백장청규를 원칙으로 세웠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을 빌려야 했는데 외지에서 온 젊은 스님에게 선뜻 마음을 여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날 며칠을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찾아가 지역 어르신들에게 부탁했고, 간신히 사용하지 않는 산비탈 밭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스님이 목탁 대신 호미를 쥐고 기도할 시간에 농사를 짓는다는 게 어색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세 번 예불은 물론 농사일 외에는 절수행으로 일관하는 스님의 일상이 알려지면서 주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스님 또한 누구를 만나던 몇 번을 만나던 먼저 합장으로 인사하고, 예불을 모시거나 정진을 할 때는 반드시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수행자다운 위의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정토원은 ‘선농일치’와 ‘일일부작일일불식’의 삶으로 군위 주민들 속에 스며들어 갔다.

더딘 걸음이지만 분명 변화가 찾아왔다. 군위군 공무원 불자모임 금강회가 지도법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산비탈 작은 밭에서 시작한 농사일도 어느새 3만평으로 늘어났다. 거동이 불편해 농사일을 포기했던 마을 어르신들이 정토원과 고봉 스님을 믿고 맡긴 땅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토원은 그 땅에 사과를 중심으로 쌀과 고추, 깨 등을 재배해 생산량의 3분의 1은 토지를 대여해준 어르신에게, 3분의 1은 다음 해 농사를 위해, 3분의 1은 불사와 나눔활동으로 회향하고 있다. 일이 늘어날수록 나눔의 규모도 커졌고, 나눔의 횟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군위 농산물에 대한 홍보의 기회로 이어졌다. 스님을 대하는 지자체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렇듯 생산과 회향, 나눔과 지역홍보의 선순환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정토원에 대한 군위주민들의 믿음과 지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정토원은 현재 또 다른 자비행을 준비 중이다. 거동이 불편한 지역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공양을 대접하는 일이다. 최근 지역의 한 독지가로부터 좋은 일에 써달라며 대형버스 한 대를 기증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정토원은 어르신들을 위한 순회 만발공양을 계획하고 이 버스를 조리시설은 물론 테이블까지 갖춘 식당차로 개조했다. 더욱 의미 있는 변화는 정토원 신도와 지역주민들이 스님을 돕겠다며 자원봉사팀을 구성한 것이다.

노동과 수행의 실천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온 정토원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부족한 것들을 채우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포교와 전법이라는 정토원의 원력은 가을볕에 붉게 물드는 사과와 같이 시나브로 영글어가고 있다.

 

“회향 즐거움 일깨워준 모두를 예경합니다”

군위 정토원 주지 고봉 스님


 
“단출했던 정토원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믿고 지지해준 불자님들과 지역 어르신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향의 즐거움을 일깨워준 모든 분들을 예경하며 군위도량 정토원이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정토원 주지 고봉<사진> 스님이 환한 미소와 함께 감사의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후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양분이 되어준 지역주민들은 스님에게 부처님과 같은 존재들이다. 스님은 “처음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량이 도량답고, 수행자가 수행자다우면 언젠가는 군위의 일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며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나누는 불자들이 함께했기에 지금의 정토원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토원 개원과 함께 세운 전법과 포교 원력은 신심을 북돋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으로 채워간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고 농사일로 바쁜 지역의 특성상 교리나 경전을 앞세우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지도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선한 마음을 내어 자비나눔을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뒤따르는 불자들이 제법 생겨났다며 이것이 정토원의 포교법이라고 전했다.

“작은 것이라도 선한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불자가 되도록 이끌어주는 게 제 역할입니다. 뜨거운 땡볕 아래 작물을 키우는 농부의 마음으로 늦더라도 욕심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걷고자 합니다. 군위주민과의 약속인 만발공양을 비롯해 템플스테이 등 불교를 느끼고 동행할 수 있는 다양한 자리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조금 더 움직여 조금 더 회향할 수 있도록 소의 걸음으로 정진하는 정토원을 일구어 갈 것입니다.”

한편 고봉 스님은 1994년 산청 내원사에서 원경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육군 제50사단, 201특공여단, KBS대구총국, 군위군공무원불자회 금강회 지도법사 등을 역임하는 등 포교에 매진해왔다. 2000년 법련 스님에게 건당해 2008년 군위 정토원을 창건했으며, 현재 미륵종 포교원장 소임을 맡고 있다.

군위=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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