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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작은 동물과 인연을 맺은 까닭은 ②

“참새, 갈매기도 사람에 대한 믿음 생기면 경계하지 않습니다”

▲ 성운 대사는 다람쥐 등 작은 동물과의 인연도 소중하게 여긴다. 불광산 사진제공

“호주의 한 산 속에 갔는데 새들이 사람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아서 열 마리가 넘게 제 몸에 내려앉았습니다. 그 중 앵무새 한 마리는 제 머리 위에 발톱으로 저의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서 아팠지만 놀랄까 싶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불광산을 창건하였고 육아원에서 ‘흑호’라는 이름의 토종개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짖는 소리가 크고 또 사람을 무는 개라면서 개가 짖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양로원의 노인들이 저에게 개를 내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개는 육아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라서 보내면 아이들이 섭섭해 할 거라고 말을 해도 개를 보내지 않으면 노인학대로 법원에 고소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흑호’는 진짜 사나워서 혹시나 지나는 사람을 물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해서 할 수 없이 ‘미농(美濃)’에 위치한 조원사(朝元寺) 도감 혜정(慧定) 스님과 의논을 했습니다. “저에게 아주 좋은 개가 있는데 스님께 드릴게요. 이 개가 집을 정말 잘 보는데 불광정사 노인들이 개 짖는 소리를 못 견뎌 하시네요”라는 제 말을 들은 혜정 스님은 “바로 키우겠다”고 답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눈물을 머금고 책임감이 강한 ‘흑호’를 백리길 떨어진 조원사로 데리고 가서 한동안 같이 놀아주면서 환경에 적응하도록 한 다음에 아픈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6~7년이 흐른 후 어느 하루 다시 조원사를 가게 되었는데 아마도 개가 저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도착하자마자 ‘흑호’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저에게 달려들어 앞발로 저에게 매달리고 끌어안고 핥으면서 줄곧 따라다니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감동을 받았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나 자신이 개보다 못하고 개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이 있고 의리도 있는 개에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동물과는 이렇게 기묘한 인연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기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불광산에서 간혹 땅바닥에 떨어진 다람쥐를 보게 되기도 하는데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다람쥐라서 저는 데려다가 우유를 먹이면서 돌보니 점차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혹은 비바람이 불어닥친 이후에는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몇 마리의 작은 새도 데려와 세심하게 돌봐주면서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는 다람쥐도 뛰어다니고 새들도 날아다니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법당에서 소임을 보고 있는 제자가 저에게 이 동물들을 위해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침 그 당시에는 출가 제자들을 ‘만(滿)’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던 때라서 저는 새들은 ‘만천(滿天)’이라고 하고 다람쥐는 ‘만지(滿地)’라고 불렀습니다. 개산료(불광산 성운대사의 거처. 역자 주)는 새와 다람쥐들로 가득했습니다. 온천지가 만천과 만지로 북적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불광산 사방으로 과일나무가 가득하여 생존에 문제가 없을 것이니 스스로 생존하는 능력을 잃지 않도록 야생에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동물들을 바깥에 풀어주어도 어려서부터 살던 곳이 익숙하고 사람들을 가까이하던 습성이 있어서인지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작은 동물들의 감정은 도리어 더욱 깊게 각인이 되는 것 같아 간혹 씁쓸하기도 합니다.

불광산의 수많은 동물들도 우리들과 함께 지내면서 사람의 마음과 통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공양처에서 공양목판이 울리면 참새와 다람쥐가 몰려들고 심지어는 뒷산의 원숭이도 달려와 밥을 얻어먹습니다. 특히 불광산의 영회(永會)와 혜연(慧延) 스님도 저처럼 이 작은 동물들을 잘 돌보아주고 있는데 장애를 가졌거나 죽을 위기의 다람쥐와 새들을 많이 살려냈습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인내심은 동물원 원장이 되어도 아주 적합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제가 세계 각처에서 홍법 포교할 때도 기묘한 동물과의 인연이 다소 있었습니다. 호주를 예로 들어 말하면 골드코스트에 위치한 포교당 마당에 있는 나무에는 매일 황혼 4~5시 경이면 한 무리의 새들이 모여들어 시간에 맞춰 회의를 하는데 여기저기 지지배배 시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부근에 있는 해변에 산책을 나가면 길이가 한두 자가 되는 큰 물고기가 저를 향해 헤엄쳐오더니 물 밖으로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합니다.

산에 위치한 남천사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게 되면 저는 간혹 빵으로 먹이를 주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매일 오후 4~5시가 되면 갈매기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절 마당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스님! 먹이를 대기가 정말 부담이 돼요”라며 남천사 식구들이 저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도들이 먹다 남긴 밥에 소금 간을 해서 볶거나 쌀국수를 볶아서 주면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고 먹이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 남천사의 갈매기를 ‘산 갈매기’라고 불렀습니다.

갈매기 가운데에는 아마도 캠핑장의 고기 석쇠에 잘못 내려앉았다가 화상을 입었는지 잘 걷지도 못하는 불쌍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상처 입은 나약한 갈매기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다른 무리들과 먹이 경쟁을 할 필요 없이 우선적으로 먹이를 먹도록 배려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침을 먹고 있는 저에게 참새나 새들이 날아와 잠시 마주보고 있으면 저의 빵을 물고 날아가 버립니다.

어느 한번은 색깔이 아름다운 앵무새와 온갖 새들이 살고 있는 호주의 한 산 속에 갔는데 새들이 사람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아서 열 마리가 넘게 제 몸에 내려앉았습니다. 그 중 앵무새 한 마리는 제 머리 위에 발톱으로 저의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서 아팠지만 놀랄까 싶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빈승은 ‘출가인’이라 다행히 아들도 딸도 없고, 비록 제자들은 많지만 대부분 성년이 된 이후에 출가하여 승단에 들어왔기에 많은 근심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도리어 이 귀여운 동물들이 마치 어린 자식들처럼 저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기대니 부모와 자식 간에 어려움 속에서 서로 돕는 자연스러운 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불광산 대중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겨준 것은 강아지 ‘라이파(來發)’라고 하겠습니다. 1974년 8월 세계청소년야구대회가 미국에서 열렸을 때 중화팀 선수인 ‘이래발(李來發)’이 친 2루타 안타에 텔레비전 앞에서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을 때 ‘정벽운(鄭碧雲)’이 2개월 된 강아지를 안고 와서 저에게 “스님! 이 강아지 이름을 지어주세요”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본래 불광산에서 동물을 기르지 못하게 규정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동물과 사람 간에 정이 생기면 서로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두들 중계방송에 집중해 있었고 저도 체육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물론 경기에 몰두해 있었기에 ‘이래발’ 선수의 2루타 안타를 축하하는 의미로 별 생각없이 “그러면 ‘라이파’라고 부르지”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근 6년 동안 이 개는 빈승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라이파’는 흰 털의 발바리 종류로 아주 귀엽게 생겨서 모두가 다 예뻐했는데 창건불사와 학교를 짓느라 바빴던 저는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라이파’는 남들이 아무리 예뻐해도 저한테서 한 발짝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개밥을 주는 것도 아니라서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밥을 먹고 나면 곧바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몇 년 간은 누구라도 불광산에 와서 저를 찾고자 할 때는 ‘라이파’를 찾으면 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업을 하면 교실 바닥에 엎드려 있고 제가 절을 하면 저를 따라서 절을 하였고 제가 삼귀의계 의식을 진행할 때 수계자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 사람들 정수리 냄새를 맡기도 했는데 법단 위에서 행사를 진행하던 저는 엎드린 사람들한테 오줌을 싸지는 않을지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 손님을 만나도 제 옆에 앉아 있으려고 하는 ‘라이파’를 아무리 쫓아도 나가지 않으니 남들이 보면 우리 출가인이 짐승이나 데리고 노는 부류라고 생각할까 싶어서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적절하지 않다 싶어서 다른 곳에 보내려고 했는데 어찌 알았는지 며칠간 밥도 물도 먹지 않아서 위로하고자 그대로 남겨두기로 하였습니다.

‘라이파’는 특히 차타고 나가는 것을 좋아해 매번 제가 타이베이에 홍법활동을 가게 되면 어찌 알았는지 이 개는 언제나 몰래 차에 타서 의자 밑에 숨어 있다가 차가 출발해서 절반쯤 갔을 때 나타나곤 했습니다. 더구나 개가 차멀미를 하는 탓에 동행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창문을 열어서 신선한 공기를 맡도록 해줘야 했습니다. 그렇게 개를 돌봐주도록 시키기까지 해야 하니 간혹 화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저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라서 더욱 잘 보살펴주었는데 사실 그 몇 년 동안 ‘라이파’가 저를 귀찮게 한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가 외출하면 이 개도 밥을 먹지 않으니 사람들의 걱정을 샀습니다. 어느 하루 개가 갑자기 안보이면서 물론 마음 속으로 유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침내 벗어버리게 됐으니 이것도 잘된 일이라 싶었습니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산 아래 마을의 촌민 ‘래순(來順)’의 어머니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와서는 “대사님의 개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여기 이 개를 대사님께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저와 이 노파와는 말도 통하지 않아서(중국대륙 출신의 성운 대사는 대만 토속어를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하지는 못함. 역자 주)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고 그냥 강아지를 내려놓고 가버렸습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이 강아지가 점점 자라면서 모양새, 색깔, 하는 짓, 습성, 표정이 다 그 전에 있던 ‘라이파’와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자장 스님도 ‘라이파’로 알기에 저는 아예 개 이름을 ‘라이파 2세’라고 지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개 역시 밥을 먹으면 바로 달려와서는 도통 저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수시로 출국을 해야 했고 출국 때마다 몇 달이 걸리기도 했는데 매번 제가 돌아오면 저를 뱅뱅 돌면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개는 마치 저하고 감응하는 듯이 제가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반응하였는데 전기가 통하듯이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개 역시 말을 아주 잘 들었는데 손님을 접대할 때 나가 있으라고 하면 아주 불쌍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서 할 수 없다는 몸짓을 하면서 천천히 나갔다가 잠시 후 살짝 훔쳐보고 나서는 다시 살금살금 들어왔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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