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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가 주는 교훈

기자명 심원 스님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이 역설의 싯구는, 아무리 힘든 절망 속에 있더라도 ‘날개가 있기 때문에 다시 날 수 있다’는 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의 간절한 소망일 뿐, 현실에선 추락하는 모든 것은 이미 날개를 상실했다. 이제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한다.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식물정부, 무정부 상태로 표현되는 총체적 위기의 현 정치상황과 거국내각, 조기대선 등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갖가지 제안들로 온 나라가 요동치고 있다. 정치 현안에 대체로 무관한 영역의 필자에게도 막장 드라마처럼 드러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정말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의 품격이 추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시인에게 ‘추락하는 날개’라는 영감을 준 그리스 신화 ‘이카로스의 추락’으로 돌아가 보자. 이카로스는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내리는 것도 모르고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추락하였다. 마찬가지로 탐욕과 어리석음이란 밀랍으로 붙여놓은 허망한 날개는 필연적으로 녹아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다. 그러기에 보란 듯이 여느 남성 대통령보다 뛰어난 멋진 대통령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런데 지금 최순실과 함께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는 끝간데 없이 추락하고 있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부처님의 시자 아난존자가 절로 생각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 평생을 곁에서 모셔왔기에 부처님의 열반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픔에 겨워하는 아난존자에게, 부처님은 오히려 이렇게 위로하신다.

“울지 말아라, 슬퍼 말아라. 너는 나를 모시면서 몸과 입과 뜻의 행이 착하였다. 처음부터 두 마음이 없어 나는 한없이 안락하였다. 과거와 미래의 그 어떤 부처님도 너만한 시자를 두진 못하였으리라.”

애초 아난존자는 시자 소임을 몇 차례 거절했으나 목련존자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마지못해 수락했다. 대신 세 가지 사항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부처님의 헌 옷이건 새 옷이건 받아 입지 않고, 따로 청한 부처님의 공양을 먹지 않으며, 뵈올 때가 아니면[非時] 부처님을 뵙지 않겠다.”

옷과 음식을 받는다는 것은 재물의 축적을 말하고, 때가 아닌데 윗사람을 찾아뵙는다는 것은 권력의 남용을 상징한 것이다. 시자라는 직책은 부처님의 권위를 빌어 갖가지 사익을 챙길 수 있고, 최고 권력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자리다. 그러기에 아난존자는 혹여 그러한 상황에 놓일까 염려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아난존자의 인품을 알아본 부처님도 현명하셨지만, 아난존자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웠다. ‘관계의 안전거리’를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최고 지위의 최측근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안전거리가 무너졌을 때 야기될 위험과 혼란을 알고 있었기에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이 아닌 사촌으로, 수석비서 직책인 시자가 되었기에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할지, 그러면서 얼마나 가까이 모셔야 할지를 항상 잊지 않았던 것이다.

옛사람들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과 경이원지(敬而遠之)로 관계의 미학을 표현하였다. 너무 가까우면 분에 넘치기 쉽고 너무 멀면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 그러기에 공경하면서도 지켜야할 경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난존자도 평생을 그렇게 부처님을 시봉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했던가? 어리석은 군주와 권력에 편승해 사욕(私慾)을 도모했던 이들이 파멸해간 말로를 동서고금의 역사가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또 되풀이 되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잘잘못을 분명히 가린 다음 지혜를 모아 현명하게 난국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최순실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snu.ac.kr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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