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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의 공덕

기자명 이기화

재직한 대학에서 은퇴한 2년 후인 2008년 필자는 전공분야인 지진학의 대중 교양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유라시아판 내부에 위치하여 그 지진활동은 일본이나 캘리포니아같이 판 경계에서 발생하는 지진과는 사뭇 다르다. 판 경계에서는 인접한 판들이 연간 수cm 속도로 상대운동을 하기 때문에 대규모 지진들이 많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그 지진활동에 다소의 규칙성이 있다. 그러나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그 매커니즘이 불분명하며 발생 빈도가 낮고 패턴도 매우 불규칙하다. 바로 이점이 한반도의 지진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매년 세계 각지에서 큰 피해를 주는 지진들이 발생하여 매스컴에 보도된다. 이때 국민들은 이러한 지진들이 우리나라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지진의 과학은 무엇이고 우리나라의 지진활동은 과연 어떠한가에 대한 의문들을 갖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의문들을 해소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지진에 관한 국민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은 매년 연구실적을 생산해야하는 압력에서 자유로워 긴 시간을 낼 수 있는 은퇴 교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해 집필을 시작하였다. 

집필을 시작한 2년 후인 2010년 대한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에서 지진에 관한 특별호를 출간하게 되었다. 필자는 지진학을 공부하는 후진들을 위해 잠시 교양서 집필을 중단하고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의 지진연구를 종합하여 분석한 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하였다. 연구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에 학회지 게재료 20만원은 자비로 부담하였다.

생각하기에 따라 이 논문의 출간은 시간과 경제적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짓으로 볼 수도 있다. 단지 후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상은 대단했다. 필자는 그로부터 3년 후인 2013년 학회의 추천으로 유서 깊은 3·1문화상 과학 분야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선정과정에서 2010년의 논문이 큰 도움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논문에 필자의 지난 30여년의 연구업적이 소상하게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수상의 영예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학회지 게재료의 250배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게 되었다. 

필자의 지진교양서는 작년 10월에 출간되었다. 집필하는데 3년이 걸렸으나 출판사를 결정하고 이를 출간하는데 의외로 많은 시간이 드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또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 고통스런 과정의 결과는 국내 최고의 출판그룹에서 아담한 책이 출간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필자의 책이 출판된 직후 학술원 자연분야 소속 회원 수에 공백이 생겼고 이에 대한 충원 과정에서 지구물리학이 신규 분야로 추가되어 필자는 올해 7월에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의 지진 교양서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불교에서 보살행의 으뜸으로 보시를 들고 그 공덕이 무량하다고 가르친다. 보시는 자기가 소유하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을 뜻한다. 후진을 위한 학회지 논문이나 국민을 위한 교양서 저술은 지진학자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쩌면 일종의 보시로도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각기 3·1문화상 수상과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가져왔다. 필자는 보시의 공덕을 절실히 체험한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남과 주고받는 행위의 장(場)이라고 볼 수 있다. 주는 것은 반드시 상응하는 것을 받게 된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인 인과법이다. 크게 주면 크게 받고 작게 주면 작게 받고 좋은 걸 주면 좋은 걸 받고 나쁜 걸 주면 나쁜 걸 받는다. 나라가 어려울 때 불자들이 국리민복을 기원하며 염불, 기도, 독경, 주력을 한다면 더없이 크고 착한 보시행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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