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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보리선수 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48. 자비의 근기 ③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11.08 16:01
  • 수정 2016.11.08 16:02
  • 댓글 0

몸과 마음, 영혼이 청정하고 자재하려면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여러분 그렇다면 증오하는 마음,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무엇을 얻게 될까요? 먼저 그를 미워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모두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먼저 증오하게 되면 욕을 하게 됩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때리게 됩니다. 셋째는 험담을 하게 됩니다. 시비를 조작하지요. 넷째는 그를 해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좋지 않은 것은 증오의 대상에게 돌려질 것입니다. 증오의 가장 심각한 결과는 바로 살해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늘 살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자란 환경이 저에게 준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높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가난하니까 천대를 받았습니다. 천대를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지적당하고 욕을 먹는 것입니다. 덕행이 부족한 사람은 아주 잔혹하게 수모를 줍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속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 한은 저에게 전해져 저도 한을 품었습니다. 부모님의 경지, 인품, 수준이 낮으니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겨졌고 매를 맞았습니다. 부모님의 한과 저의 한이 모여 우리는 한편이 되었습니다. 모두 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잘 이해했습니다. 어머니가 “저 사람이 우리를 업신여겼어. 아들아, 꼭 성공해야 해!”라고 하면 저는 “좋아요. 무술을 열심히 연마하고, 칼을 잘 다루어서 언젠가는 저놈을 죽여 버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열 몇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이야기한 그 집안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난 다음 몰래 뒤따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안을 우습게봤지? 내가 오늘 어떻게 혼내주는지 두고 봐!’ 지금 생각하면 아주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왜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고 했을까요? 상대방이 저보다 강했을 경우, 그날로 벌써 목숨을 잃었겠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 당시 상대방이 저보다 강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또 그 사람보다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부모님을 업신여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란 후에는 그가 저보다 강하지 않아 저에게 수모를 당한다면 그의 자녀와 친척들은 어떨까요? 보복은 서로 갚아주려고 할수록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몸에도 좋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이 지혜로울까요? 지혜롭지 않습니다.

이러한 느낌을 모든 가정으로 확산시키면 사회의 치안이 어떻게 될까요? 하루 묵고 있는데 한밤중에 살인이 일어나고 어렵게 살인사건을 해결하니, 그다음엔 불이 납니다. 그 불을 끈다고 한들 마음 편할 수가 있을까요? 언제 누가 불을 놓을지, 누가 약을 넣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자재롭지 않고, 사회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잠을 자더라도 이쪽엔 부엌칼을, 저쪽엔 망치를 두고 모든 문에 잠금장치를 하여 집에 불이 났을 때 스스로 문을 열 수 없다면 공포 속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하며, 아이가 정원에서 산책하지도 혼자 길거리에 나서지도 혼자 공원에 가지도 못한다면, 그 상황 자체만으로도 질병에 걸릴 것입니다. 무슨 병에 걸리느냐고요? 공포증입니다. 고소 공포증이 아니라 공포증입니다. 그리고 곧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릴 것입니다. 위, 신장, 심장 모두 안 좋아집니다. 그래서 복수심이나 상해를 불러오지 않으려면 욕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고치는 것입니다. 욕하는 버릇을 깨끗이 고치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이가 속으로 욕하는 건 괜찮은지 묻더군요. 그건 더욱 심각합니다. 마음으로 욕을 하지 않아야 하고, 가장 높은 경지는 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단번에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무시당하고 엄마가 그 일 때문에 병에 걸리고 화를 낸 후 화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오늘 그 사람을 사랑하라니….”

아들이 아주 잘 생겼거나, 딸이 아주 예쁘거나 혹은 아주 부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음에도 사랑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초인입니다. 무한한 지혜를 지니고 아주 부귀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타가 직접적인 상해이며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자신이나 가족이 매를 맞아 다치거나 장애가 되거나 사망하면 아주 고통스럽고 원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인과를 피하고자 오늘부터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이해했으면 실행해야 합니다. 실행하면 풀립니다.

우리가 반드시 확인하고 고쳐야 할 일은 입으로 지은 죄입니다. 방금 욕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상해는 입으로 저지릅니다. 꼭 욕으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의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이 예를 들어, 사기를 치거나 시비를 조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불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닌 사욕을 채우기 위해 유혹하는 것과 같이 입으로 지은 죄라면,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입으로 많은 업장을 짓습니다. 그런데도 병이 깊어지면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전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습니다.”

사실은 아주 손쉽게 저질렀을 것입니다. 말이 나오는 대로 저질렀겠지요. 다만 스스로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만 합니다. 정말 좋은 사람일까요? 얼굴은 그렇게 교활하지 않습니다.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입으로 남을 팔아 버립니다. 이런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이런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저지르게 되면 업장이 여러분과 후손의 몸에 쌓입니다. 믿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욕을 하면 욕을 먹거나 매를 맞는데, 이것은 종교의 관점이 아니라 자연법칙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자연법칙입니다. 불가사의한 일보다는 아주 간단하고 소박한 인생의 이치입니다. 늘 사람을 때리면 틀림없이 매를 맞거나 살해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타인을 속였습니다. 속여서 돈을 얻어냈거나 감정을 얻어냈습니다. 감정을 속이게 되면 살인이 일어나지 않나요? 일어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살하나요? 타인을 속이고 감정을 농락하여 상대방이 떨쳐내지 못하고 자살합니다. 떨쳐내지 못해서 그렇고, 떨쳐내면 당신을 죽여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그의 감정을 농락했지만, 그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곤란해집니다. 당신의 목숨만 노린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그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속이고 험담을 하고 시비를 부추기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거나 모욕하는 것은 말로 짓는 죄입니다. 이런 죄는 모두 살인죄 못지않은 심각한 죄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업보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어질고 너그러운 말을 하고 오늘부터 자신의 말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입을 잘 다스려 입이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 합니다.

보살의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보살이 아주 자재롭고 길상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대자재관음보살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첫 구절이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관자재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해 보세요. 어제 막 다른 사람을 속였는데, 지금 자재로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뒤에서 몽둥이가 날아올까 혹은 돌멩이가 날아올까, 아이가 유괴될까 등 걱정으로 자재로울 수 없습니다. 무엇이 자재입니까?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없고 공포와 근심걱정이 없어야 자재로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탐욕의 마음, 책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감정도 내려놓아야 자재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재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고득락과 해탈을 얻으려면, 몸과 마음의 청정 자재 건강을 얻으려면, 그 근본은 하나입니다. 먼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이렇게 여러 가지 자비와 지혜의 싹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며 하늘을 찌르는 거목이 됩니다. 자비의 뿌리에서 생깁니다.

이것은 당신이 단지 병 치료 중이거나, 공부할 때 집중이 안 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은 성적이 좋은데 당신은 왜 부족할까요? 업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속이 좁아서 아들이 좀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이 잘못을 바로잡으면 엄마의 잘못도 고쳐지고 당신의 문제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엄마의 잘못도 고쳐집니다. 당신이 수행으로 정신적인 위로와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당신이 시작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날 저지른 잘못, 사람을 욕하거나 곤경에 빠뜨리고 험담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사람을 속이고 기만한 모든 일을 참회하게 되면 지난날의 잘못을 상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운전하다가 신호를 위반하여 경찰에게 잡히면 어떻게 할까요? 길거리 청소 3일, 체벌이나 벌금으로 죄를 상쇄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참회하는 것은 업장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수행이나 염불을 할 때 참회하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대해야 합니다.

시집을 간 여인에게 첫째 원수는 시어머니일 수도 있고 시누이일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먼저 그들을 떠올리며 참회할 수 있습니다. ‘욕을 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비록 여러 번 욕을 들었지만, 욕을 하는 건 잘못이었습니다. 욕을 했을 뿐만 아니라 험담을 하고 여러 나쁜 짓을 했습니다’라는 참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대하고 털어버릴 수 있다면 그 변화가 아주 커질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상처투성이 환자에서 백옥 같은 몸으로 빠르게 치유될 것입니다. 청정하고 자재로워야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질병이 빠르게 사라집니다. 진정 부처님의 정법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빨리 극락세계에 당신의 황금빛 연꽃이 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가?’입니다. 불교의 가르침, 즉 보살행은 좋은 일을 하는 것 외에 ‘자신의 행위가 사람들을 어떻게 이끄는가?’입니다.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보살행은 자신의 선행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합니다. 인과의 발생점을 두려워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 품격 있는 깨달은 이는 행동할 때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여 모두가 따라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바로 이점입니다. 인연이 있어 제 법문을 들으면 빠르게 보살이 될 것입니다. 시작하면 바로 보살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을 유발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원한이 있는 사람을 대하고 욕하고 책망하는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나약해서 마음이 시련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요리하는데 소금을 넣지 않았어요. 당신은 맛이 괜찮긴 한데 소금을 안 넣은 것 같다는 가족 말에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요리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이것저것 트집을 잡다니’ 얄미운 마음에 소금 한 주먹을 넣으면서 어디 한 번 짠맛을 봐라 하겠지요. 상대방이 죽을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당신이 죽은 후 염라대왕이 귀신을 데리고 와서 당신의 장에 소금을 채워 넣을지도 모릅니다. 결과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당신의 행위가 많은 사람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금 양을 조절 못 할 때 다른 사람이 일러주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경우이므로 일깨워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적정량의 소금을 더 넣으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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