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수행
41. 수행
  • 일창 스님
  • 승인 2016.11.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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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억압·제거하는 마음 늘어나게 하는 것

열 가지 공덕행의 토대 중에 세 번째는 수행(Bhāvanā)이다. 이 수행이라는 단어는 ‘생겨나게 한다(uppādeti)’ ‘늘어나게 한다(vaḍḍheti)’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번뇌를 억압하거나 제거하는 마음을 계속 생겨나게 하는 것, 늘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닦는다, 계발한다’라는 등으로도 표현한다.

수행에 대한 믿음 떨어졌을 때
부처님 아홉 가지 공덕 새겨야
분명하지 않은 대상 관찰 말고
달아나는 마음 없애지도 말아야


수행은 크게 사마타(samatha) 수행과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이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마타란 고요하게 한다, 가라앉힌다(sameti)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즉 어떠한 대상에 의도적으로 계속 마음을 두어 다른 장애나 번뇌를 가라앉히는 수행이다. 그렇게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전혀 장애나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한 대상에 몰입된 상태인 선정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한 선정은 다음 생에 색계 천상이나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결과를 준다.

사마타 수행주제에는 40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어떠한 수행자든 자신의 수행주제를 다른 심한 번뇌로부터 보호해주는 네 가지 보호명상을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부처님 공덕명상이다. 이전에 소개한 부처님의 아홉 가지 공덕을 마음에 거듭 새기는 것이다. 수행에 믿음이 떨어졌을 때, 심하게 두려울 때, 도저히 어떻게 하지 못할 때 등에 부처님 공덕명상을 잠시 하면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자애 명상이다. ‘내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같이 수행하는 도반들이…(집에서 닦는다면 가족이…이웃 사람들이…) 나를 보호하는 천신들이…집을 보호하는 천신들이…정사를 보호하는 천신들이…모든 생들이…’라는 등으로 자애를 닦으면 특히 심한 성냄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보호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더러움 명상이다. 자신의 몸이 실제로는 여러 가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 깨끗하지 않고 혐오스럽다고 마음에 기울이는 것으로 특히 자신과 남에 대한 심한 탐욕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보호해 준다. 네 번째는 죽음에 관한 명상이다. ‘목숨이란 견고하지 않다. 죽음만이 확실하다’라는 등으로 죽음이 언제든 다가올 수 있다고 마음 기울이는 것으로 수명에 대한 자만, 건강에 대한 자만 등 자만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보호해 준다.

위빠사나 수행은 ‘특별하게(visesena), 혹은 다양하게(vividhena) 관찰한다(passati)’라고 단어를 분석할 수 있다. 즉 분명하게 존재하는 실재성품, 혹은 물질과 정신에 대해 물질과 정신일 뿐이라고, 원인과 결과의 연속일 뿐이라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일 뿐이라고 특별하고 다양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관찰하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일 뿐이라고 아는 위빠사나 지혜, 더 나아가 모든 물질과 정신의 소멸한 성품인 열반의 증득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게 열반을 증득하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되어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과를 준다.

위빠사나 수행도 무더기, 감각장소, 요소, 진리, 연기 등 다양한 주제로 관찰할 수 있다. 어떠한 주제를 통해서든 우선 자신에게 가장 분명한 대상을 관찰해야 한다. 분명하지 않은 대상을 경전에서 외운 대로 일부러 찾아서 관찰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분명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나’라고 사견으로나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고 분명한 대상에 대해서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분명한 대상인가?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을 예로 들어 보면 정신보다는 물질이 생멸도 느리고 거칠기 때문에 분명하다. 물질 중에서도 호흡할 때마다 생겨나는 배의 부풂과 꺼짐이 분명하다. 따라서 다른 분명한 대상이 없으면 그 배의 부풂과 꺼짐을 기본으로 ‘부푼다, 꺼진다’라는 등으로 관찰을 한다. 그렇게 수행하다가 다리의 저림이나 아픔이 부풂과 꺼짐보다 분명하게 생겨나면 그 아픔에 마음을 두고 ‘아픔, 아픔’ 등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 뒤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가 관찰한다.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면 그것도 억지로 없애려하지 말고 ‘달아남’ 등으로 관찰한다. 졸음이 생겨나도 ‘졸림’ 등으로 관찰하고 다시 원래 대상으로 돌아온다. 

일창 스님 녹원정사 지도법사 nibbaana@hanmail.net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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