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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동안거 결제를 앞두고

기자명 성원 스님

“우린 세상 험해지면 빠져나갈 수도 있건만”

▲ 일러스트=강병호

날씨가 차갑습니다. 먼 북녘에는 눈이 내린다고 하네요. 벌써 이곳은 밀감 수확으로 농번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 많은 사찰의 합창단들이 농번기를 맞아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청와대서 일어난 온갖 추문들은
정치 아닌 인륜도덕에 관한 일
모두가 패닉 상태 위로도 불가
민초들의 삶에 제초제 뿌린 격

서귀포는 시내만 도시지 사실 농어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밀감 밭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밀감 밭을 대신해서 농사짓고 있답니다. 요즘은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부동산 투기를 많이 해서 밀감 밭을 팔아버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 밀감을 소작 해 농사짓는 사람들도 많아 졌습니다.

그런데 아세요? 얼마 전 밀감 밭 3000평을 구입한 육지 사람이 서귀포 사람에게 소작을 주었는데 1년 소작료로 300만원을 내니 화를 냈다고 했습니다. 밀감 밭 1000평을 빌려주면 좋은 밭은 200만 원, 일반적인 밭은 100만 원입니다. 농부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짐작가지 않습니까?

말감농사 수입이란 것이 1년 내내 아침부터 부부가 밭에 나가 일한 품삯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외지에서 온 땅주인은 전혀 몰랐던 겁니다. 어떤 해는 밀감을 팔아 봤자 농약 값, 비료 값에도 못 미치는 때도 있답니다.

밀감 철입니다. 밀감은 풍성하지만 미쳐 일손이 모자라 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신도분들에게도 따드리지 못하고 밭에 가셔서 직접 따다가 육지분들에게 선물하시라고 말씀드리며 미안해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밀감 따러 갈 시간이 없어 선물도 제대로 못 보낸답니다.

이렇게 척박한 민초들의 삶에다가 제초제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예 자신들만 고고한 척 밀감 밭 잡초를 죽이듯 실낱같은 희망의 순을 잘라버리고도 그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뭘 잘못했냐’고 고개 내밀고 오히려 의아해하는 사람들….

마치 밀감 밭 3000평을 소작 주고 300만 원밖에 안준다고 눈 부라리는 사람들처럼, 대지에 발을 디디고 사는 민초들의 삶이 어떤지 프라다신발을 신고 대리석과 카펫 위로만 다니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서울의 소식이 자꾸 싫어지네요. 너무 사나운 북풍한설 같이만 느껴진답니다. 공공의, 유형무형의 약속들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아버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 제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곳은 극락이 아니라 모순의 사바세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기괴한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네요. 우리 어릴 때 미제, 미제하면 항상 최고로 생각했고 심지어 아이들이 기특하게 굴면 ‘아이고, 이놈 미제 같네’ 라고까지 했는데 어느 때부터 미제가 군사무기 외에는 우리 일상에서 가치를 잃어가고 이제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듯하더니 오늘은 대통령마저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라 온갖 추문에 휩싸여서 동네이장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당선되네요.

세상이 어디로 가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히네요. 이제 당분간 뉴스를 접하지 말고 이럴 때 일수록 오랜 성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세상일과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출가자들은 세상이 험해지면 이렇게 빠져나갈 구석이라도 있건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안쓰럽네요. 그래도 힘겨움을 풀어가는 방법과 지혜는 있겠죠? 어쩌면 스스로 더 뜨거운 분노를 일으켜 외부에서 오는 열 받는 일들을 녹여버리며 살고 있을까?

정말이지 요즘은 누가 누구를 위로 할 수도 없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패닉 상태니 말입니다. 오늘 신도 한분이 “그래도 스님은 절대 정치이야기 하지 마세요. 스님이 정치이야기 하면 정말 싫어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정치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아니 청와대 주변의 이야기가 정치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정치가 아니라 스님들이 나서서 해야 할 인륜에 관한, 인간성에 관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정치의 범주가 아니라 오계 수준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이라는 작은 직업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을 내쫓고, 일생을 일해 모은 돈을 빼앗아 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으니 살생계를 범한 것이요, 남의 재산을 권력의 힘으로 강탈하고, 수많은 서민들이 힘겹게 낸 세금을 자신 것인냥 함부로 사용하고 있으니 투도계를 범한 것이요, 온갖 하찮은 술집의 사람들과 어울려 무리를 지으니 그 뒷이야기는 말해 뭣하리오. 대학교 1학년에 다니는 말 타는 아이는 6월에 출산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자랑했으니 도무지 팔삭둥이를 낳았어도 고교시절의 일로 출산한 것이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본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대통령마저 ‘아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거짓말 하고야 말게 되니 망어계를 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출가한 스님에게 굳이 정치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한다면 아니하겠지만 이러한 세상의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스님들이 무슨 세상 사람들이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바비인형입니까?

저도 이러한 세상이 싫습니다. 오순도순 손잡고 행복 나누며 살았던 아름다운 시절도 무상타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지금 새삼 무슨 세상일에 유심한 마음을 내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이 너무 휘청일 때 스님들이라도 흔들리는 세상의 사이사이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당의 주장을 쫓아서 그 주장에 동요한다면 정치적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우리 시대의 일은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 한발 물러서고 싶은 심정은 비단 출가자만의 감정이 아닐 것 같습니다. 누군들 이 진흙탕 늪에 발을 디디고 싶겠습니까!

이러한 정국이 하루 빨리 해결되어 모든 이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가득한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그 변화된 아름답고 희망찬 대열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동안거 결제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운 반달이 가득 채워져 오면 또 전국의 많은 산사에서 눈 푸른 납자들이 아스라한 히말라야 넘어 네란자라 강가의 젊은 수행자처럼 젊음과 인생을 불태우게 될 것입니다. 불타는 사바세상을 잠시 뒤로 하고….

차가워져 한결 생기가 도는 계절에 함께 슬퍼하는 수행자가 보냅니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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