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 낙엽, 그 비움의 미학

기자명 최원형

단풍 징검다리 삼아 텅 빈 충만 만나러 가길

깊어가는 가을날이다. 물드는 단풍, 쌓이는 낙엽, 조금씩 추워지는 날씨,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우리 마음으로 가을은 깊어간다. 기분 좋게 싸하던 날씨가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기온으로 바뀔 즈음, 단풍의 고운 빛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맞는 가을인데도 어느 날 문득 ‘언제 저렇게 물들었지’ 하고 느끼는 일 또한 해마다 되풀이한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떠밀려 살다가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나무는 그렇게 노랗고 빨갛게 변해 있다.

단풍과 낙엽은 가을의 자연현상
과정 겪지 않으면 생존 어려워
비움으로 충만함 이룰 수 있어
때로는 훌훌 터는 용기 필요해

한 해의 끝자락이 멀지 않은 늦가을, 우리에겐 여러 단상을 떠올리게 하는 단풍이 나무에겐 어떤 의미일까? 단풍이 들고 나면 색색의 예쁜 잎들은 머지않아 금세 떨어지고 만다. 나무는 왜 단풍을 좀 더 달아두지 않는 걸까?
추분을 넘기면서 낮이 짧아지니 자연스레 기온이 떨어진다. 뚝 떨어진 기온은 모든 생명체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달라지는 변온동물은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땅이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 이조차 여의치 않은 동물들은 한 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식물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한해살이 식물이야 한 해로 생을 마감할 테지만 그렇지 않은 여러해살이는 어떻게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해야만 한다. 동물처럼 땅이나 동굴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가 추위를 견디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낙엽이다.

단풍과 낙엽은 가장 눈에 띄면서도 해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가을의 대표적인 자연현상이다. 낙엽이 지는 까닭은 낮 길이가 짧아져 기온이 내려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무는 기온이 떨어지면 일단 자기 몸 안에 있는 수분을 보존하는 데 안간힘을 쓴다. 몸에 남아 있는 수분을 설탕으로 바꾸어 겨울 동안에도 얼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말하자면 부동액 상태로 만드는 거다. 흔히 활엽수라 부르는 나무들은 넓은 잎 표면에서 엄청난 양의 수분이 증발한다. 따라서 수분 공급이 안 되는 겨울에까지 잎을 달고 있는 것은 활엽수에게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모든 생명에게 물은 곧 생명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니까. 이때 나무는 아브시스산이란 호르몬을 분비하여 수분을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바로 ‘떨켜’를 만드는 것이다. 조금 생소한 이름인 떨켜는 잎이나 꽃잎, 열매 등이 식물의 몸에서 떨어질 때, 서로 맞닿아 있던 부분에 생기는 특별한 세포층을 말한다. 식물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미생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나무줄기에 잎이 붙어 있는 곳에 떨켜가 만들어지고, 이 떨켜는 나무의 수분이 잎사귀로 이동하는 걸 막는다. 결국 더 이상 수분 공급을 받을 수 없게 된 잎은 말라 떨어진다. 수분 공급이 안 되어도 햇빛이 있는 동안에는 잎에서 양분이 만들어진다. 그 양분으로 인해 잎사귀 내의 산도가 증가하고, 그 때문에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엽록소에 가려 있던 다른 색소들이 드러나게 된다. 초록이던 잎 색깔이 노랑, 빨강, 주홍 등 다양한 색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눈과 마음으로 즐기며 단풍이라고 부른다.

낭만이라는 말과 무척 어울리는 단풍과 낙엽은, 그러니까 나무 나름으로 겨울을 대비하는 월동의 한 과정인 셈이다. 나무는 결코 인간에게 알록달록한 단풍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 헨리의 작품을 위해 마지막 잎새를 남겨두지도 않고 단지 살아남으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그런 노력이 한 차례 돌고 나면 나무에 나이테가 하나 생기고 다시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된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과정을 겪지 않는다면 나무는 생존할 수 없다. 가지고 있던 수많은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살 수 있기에 나무는 미련 없이 잎을 떨군다.

때로는 지니고 있는 것을 훌훌 털어 버릴 줄 아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때가 있다. 마치 나무는 가진 것을 털어 버리는 비움의 미학을 깨달은 것 같다. 가득 찬 그릇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다. 비움으로써 또 다른 충만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나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단풍의 아름다움, 낙엽 쌓인 거리의 낭만 이면에는 나무가 실천하는 ‘비움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가진 것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리며 살고 있을까? 얼마만큼 비우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법정 스님은 “빈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가득 찼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충만하다”라고 했다. 가을 끝자락에 숨은 그림 찾듯, 단풍을 징검다리 삼아, 낙엽을 딛고 건너, 텅 빈 충만을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