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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보리선수 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49. 자비의 근기 ④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11.22 14:26
  • 수정 2016.11.22 14:29
  • 댓글 0

지금 생각하고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일할 수 있다면 곧 복이다

 
무엇이 복일까요? 견해를 가지고 있고 살아있으면 복입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매일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복입니다. 일을 할 수 없어도 복입니다. 좀 불편한 복이지요. 침대에서 대소변을 보는 건 참으로 복은 있지만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때는 누구를 보살펴주고 일을 하는 것이 복이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이 있든 없든, 일하고 자신을 돌보며 남을 돌볼 수 있으면 정말 복입니다. 집에서 밥을 짓고, 힘없는 사람을 도와 삶의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을 위해 장을 보고 설거지를 할 수 있으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다면 복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경제적 여건이 복의 기준 아냐
황제의 궁에 살아도 자살 충동
갖고 싶은 것 다 가지면 무료해
양날의 검 돈의 속성 바로 알고
부귀해도 자만 않는 자세 중요

건강하다면 매일 1시간씩 수행
긴 세월 수행 이력만 자랑 말고
매사 만족·감사하는 삶 살아야

그럼 무엇이 복인가요? 여러분 스스로가 알 것입니다. 이 순간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것, 그것이 바로 복입니다. 복은 경제적인 여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이 느끼는 것이며, 거기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황제의 궁에 살아도 자살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여러 종류인데, 실연을 당하거나 돈을 손해 보거나 돈을 다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입니다. 웃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잘못된 이야기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돈이 많은데 자살이라니, 하지만 당신도 그럴 수 있습니다. 무료하니까요.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면 삶이 재미가 없어집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할 때 가장 흥미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귀하고 돈이 있어야만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세력도 있으면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귀하지만 자만·오만하지 않고 음탕하지 않으며 사치를 부리지 않아야 자재로울 수 있습니다. 부귀하면서 자재로운 것이 부처님이 사람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삶의 방식입니다. 모두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부귀하고 돈이 부족하지 않지만 아주 자재로운 것, 이것이 최고의 경지입니다. 이러한 경지는 마음에 있지, 돈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이러한 경지와 하나가 되고 자재롭게 이 경지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합니다.

만족하고 감사하며 복을 아껴야 합니다. 부귀하지만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부귀입니다. 자신의 부귀를 잘 다스려야 자재롭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두가 알아듣기 바랍니다. 부귀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꼭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어떠한 일이든 득이 될 수도, 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귀한 사람은 사치를 부리다 못해 마약을 합니다. 좋은 것은 다 먹고, 살고 싶은 집은 다 살 수 있고, 좋은 차와 욕심나는 보석을 다 가질 수 있을 때,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에는 과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부자들이 한 곳에 모여 마약을 자극제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예전과 달라집니다. 그래요. 끝이지요. 돈을 쓸 곳을 찾았지만, 부귀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부귀가 악마로 변했습니다. 부귀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보시하고, 좋은 일을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나는 돈이 많고 이 법당도 내 돈으로 지은 것이고 상사님이 입은 옷도 내가 사드렸는데 어때? 상사님도 나를 보면 인사를 하겠지.’ 우리는 오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다. 옷차림이 아주 수수했습니다. 이 노인이 입은 옷은 10여년은 돼 보였어요. 꼬질꼬질했지요. 여름에 목욕도 자주 안 해서 몸에서 땀 냄새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어디 가서 밥을 먹을 것인지 등 사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듣고 있다가 재미없다며 한쪽에 가서 좌선합니다. 우리 법당에서 점등하고 등 공양을 하는데, 일부 부자들은 어떤 등이 큰지 얼마인지 물어봅니다. “이건 10만원입니다. 하면 “좋아요.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주지에게 이름을 크게 써달라고 합니다. 주지는 그대로 적어줍니다. 제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경지입니다. 적지 않으면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발보리심입니다. 그런데 약사여래전을 조성하기 위해 어렵게 구매계약을 체결하며 돈이 많이 부족할 때, 그 노인이 찾아 왔습니다. 저를 찾지 못하자 주지를 찾았습니다.

“법사님, 계약하고 건물을 산다면서요?”
“그래요. 이야기가 다 됐습니다. 그런데 자금이 부족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상사님께서 돈을 모으고 계십니다.”
“얼마나 부족합니까?”
“400만 달러가 부족합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가 일주일 안에 200만 달러를 가져오면 되겠습니까?”

주지는 놀라서 “기다려 주시면 내일 답을 드리겠습니다”라 답하고 한밤 중 저를 깨우더군요.

“스승님, 그분 아시죠?”
“알지. 왜 그러나?”
“그분 정상이신가요? 약사여래전 구매를 위해 200만 달러를 내겠대요.”
“정상이야. 그는 할 수 있어.”
“그가 이렇게 부자였어요? 이렇게 부자예요? 아이들이 먹다 남긴 도시락도 자기가 먹고 이곳에서 화장실 청소를 도맡고 있는데 이렇게 부자인 줄 몰랐어요.”

제자가 제게 전화할 때 감격에 겨워 울먹이더군요. 그는 단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겉으로 부자처럼 보이지 않지만, 정말 돈이 많아도 경지에 도달하면 더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돈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복은 바로 지혜이며 자비로움과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자녀와 후대에 남겨줘야 할 것은 지혜와 자비이며 뛰어난 인품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재산이며, 진정한 부에는 돈도 포함되지만 돈만 남겨두는 것은 화를 남겨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자비와 도덕적인 인품과 자비의 토대, 즉 공덕을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두면 여러분의 행위로도 공덕이 쌓입니다. 자비로운 행위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며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정확하고 선하게 행동해야 우리의 인생이 완벽해진다고 가르칩니다. 부처님처럼 청정과 지혜, 장엄함, 자재를 얻고 마음이 바다와 같고 끝없는 지혜가 있으며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들도 좋아하여 부처님의 불광을 얻고자 합니다. 신들도 모두 그를 보호하고 덕을 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될까요? 제가 말하는 이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며 배우면 점차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폭탄과 다릅니다. 시한폭탄처럼 정해진 시간에 펑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깨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치를 하나씩 이해하고 하나씩 깨달으면서 그 깨달음이 누적되면 마침내 크게 깨우칩니다. 공덕도 이렇게 쌓입니다. 선행하면 모든 행위가 선해집니다.

오늘부터 욕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도 포함됩니다. 키우는 개도 야단치지 않는데 자녀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자녀를 나무라면, 애들은 욕은 못해도 마음에 증오의 감정을 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은 점차 식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아끼지만,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죽으려고 옷을 그렇게 천천히 입어?” “그렇게 천천히 먹다가는 굶어 죽겠네.” “둔해서 숙제도 다 못하고 성적이 이게 뭐니? 죽는 게 낫겠어.”

이런 말은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빨리 죽기를 바라나요? 그게 아니라면 왜 아이를 저주하나요? 욕은 저주의 다른 방식입니다. 아이가 아픈 건 여러분의 저주 때문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절대 아이에게 욕하면 안 됩니다. 차에 확 치이라는 둥 이러한 말은 절대 안 됩니다. 이런 말을 신이 듣지 못하면 다행이지만, 들어서 소원이 이루어지면 큰일이 아닙니까?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희생양을 찾고 있다면 더욱 큰일이겠지요.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든 가족에게든 욕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국의 여인들은 아이에게 쉽게 욕을 합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며, 되도록 일깨워주고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잘못했을 때는 잘못이라고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아이와 정중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확한 방법입니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다 알아듣습니다. 시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친구에게 며칠 맡기면 아이가 철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다 알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도 어른의 안색을 보며 알아볼 수가 있는데, 12개월이 넘은 아이나 말할 줄 아는 아이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녀나 가족 구성원이나 회사 동료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아끼고 받들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자신이 보살이라 생각하고, 욕하지 않고,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으며, 탐욕을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모두 이렇게 생각해야 하며 세속적인 이야기에 눈멀지 않아야 합니다. 수행을 예로 들어 ‘밤에 한두 시간 열심히 수행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나 남편이 부부의 이치에 맞는 일이냐고 합니다. 반드시 자신을 어떻게 대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부 같지도 가족 같지도 않다고 합니다. 사실 그것은 일반 사회대중의 잘못된 인식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이치를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진정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모두 건강하고, 고요하고, 사랑이 가득한 삶을 지속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사회의 잘못된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앙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해를 입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확한 이념과 행동을 따라야 합니다.

이곳에서 저에게 배운 사람들은 매일매일 어떠한 수행이든 1시간 이상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본은 2시간이며, 잠자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방금 자신의 맹세 가운데 자신이 결정한 행위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번뇌를 떠나 고통을 해소하고 건강을 회복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법공부는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이미 50년을 수행했습니다. 내 수행이 어떻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정말 깨달음에 이르면 저에게 묻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은 자신이 잘 압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수행한 50년의 세월이 헛수고는 아니겠지만, 50년 동안 1년 치 공부밖에 하지 못했다면 좋은 일은 아니지요. 불법을 배울 때 깨달음을 얻기는 쉽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으면서 즉시 이 말을 따르자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부처님은 철저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철저하고 원만하게 말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여 결국은 철저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해하면 바로 깨달음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불법을 배우기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진심으로 여러분과 교류하였으니 진정한 혜택이 있기를 바랍니다.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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