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 22. 제24품 업품(業品)-하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11.29 16:34
  • 수정 2016.11.29 16:38
  • 댓글 0

선업에 대한 생각의 힘으로 어떤 악도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 안심정사 회주 법안 스님은 성운대사의 ‘인간불교’에 드러난 진취적 사고방식을 소개하며 실천을 당부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업품을 공부하겠습니다.

“선남자여, 중생이 죄를 지음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악계(惡戒, 나쁜 습관을 익히는 것)이고, 둘째는 무계(無戒, 계가 없는 것)입니다. 악계인 사람은 비록 염소 한 마리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을 때라도 항상 살생죄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서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계인 사람은 비록 천 사람을 죽였더라도 죽일 때 죄를 얻고 죽이지 않을 때는 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불선법은 마음의 근본이 되므로 그 근본으로 인하여 모든 비구의 범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으로 범하는 것이고 둘째는 입으로 범하는 것이며, 마음으로 범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계라는 것은 시간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을 얻으려고 하면, 나무가 있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마른 소똥이 있은 다음에야 불을 얻으며 한 가지라도 없으면 불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계법(戒法)도 역시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계는 얻거나 버리거나 지키거나 위반하는 것이 모두 마음에 달렸는데, 여래는 모든 법성(法性)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규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경 가운데 악한 행위를 설하였으니, 첫째는 양을 기르는 것이고, 둘째는 닭을 치는 것이며, 셋째는 돼지를 기르는 것이고, 넷째는 고기를 낚는 것이며, 다섯째는 그물로 잡는 것이고, 여섯째는 소를 죽이는 것이고, 일곱째는 옥졸이 되는 것이고, 여덟째는 사냥개를 기르는 것이며, 아홉째는 그물과 덧을 만드는 것이고, 열째는 사냥꾼이 되는 것이며, 열한 번째는 뱀에게 비는 것이고, 열두번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열세번째는 도적이 되는 것이고, 열네번째는 양 쪽을 이간시키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채찍질을 하고 죄인의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을 달고 이마에 쇠못을 박고 불로 지지는 고문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잘 숙지하고 차츰차츰 경계해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운대사의 ‘인간불교’에 나타난 진취적 사고방식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첫 번째, 매체 및 각급 대표회의 또는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고성이나 거짓말이 줄이고 대담에서도 이성적인 균형을 유지한다. 이것은 여러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성이나 거짓말을 줄이고 이성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두 번째, 자신의 인권과 자유를 찾으려 함은 물론, 무관심 했던 대중 이익에 대해 관심을 증대시키고 상처를 주는 언행을 줄인다.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만 누구 한 사람이 먼저 시작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확산되고 도움이 되지요. 불자들이 먼저 시작하자는 거예요.

세 번째, 이익단체는 공공연하게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 아주 중요하지만 의외로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옳은 것을 인식하고 옳은 쪽으로 자꾸 바꿔나가야 합니다. 네 번째, 저소득층과 소규모 단체는 지원이 필요하다. 부유한 사람이 세금을 더 부담하여 재정적자를 반드시 낮춰야한다. 우리가 이런 불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일 좋은 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겠소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정작 이런 마음을 가진 부자가 흔치 않지요, 증세하려고 하면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우리 불자들이 한번 이런 부자가 되어서 마음을 내 보도록 해요.

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대단히 높이 평가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14세기 프랑스 칼레시의 부호 외슈타트 생피에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서양의 귀족층이나 상류층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바꿨다는 점에서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14세기 영국과 프랑스는 영토를 두고 100년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마지막 보루이던 ‘칼레시’가 함락됐습니다. 영국은 시민들을 살려주는 댓가로 6명을 사형시키겠다고 합니다.

이때 첫 번째로 자원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최고 부자이던 외슈타트입니다. “나는 이 칼레시에서 그동안 최고 부자로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요. 외슈타트의 용기에 시장과 상인, 법률가 등이 잇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지원을 받고 보니 여섯 명이 아니라 7명이 모인거지요. 다음날 다시 모여서 제일 늦게 온 사람을 제외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모두 다 나왔는데 외슈타트만 오지 않은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6명이 그를 찾아가 보니 이미 자결해 죽어있었다고 해요. 마지막 사람의 명예를 지키고 배신자로 역사에 남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자결을 선택한 것입니다. 서양의 정신이 거기서 나왔다고 해요. 외슈타트는 정말 인류역사에 영원히 빛나는 멋쟁이가 아닌가 합니다.

“사물(事物)은 한 가지이나 마음의 힘 때문에 가볍고 무거운 과보를 얻습니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밥을 내게 보시하고자 하다가 아직 내게 주지 못한 사이에 굶주린 개에게 주었다면, 나는 또한 이와 같은 사람을 큰 시주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복전이거나 복전이 아니거나 마음으로 가리지 않고 베풀어 주는 자는 한량없는 복덕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착하고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업이 네 가지입니다.”

과보가 네 가지로 오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는 판단하기가 어렵지요. 왜 금방 안 되나? 하고 실망부터 하지 마세요.

“첫째는 현보(現報-현세에서 선악의 업을 지어 현세에서 받는 과보)입니다.”

복력이 있거나 간절할 때 과보를 받는 업입니다. 첫날 목욕재계하고 ‘지장경’을 읽었는데 오후 2시 졸다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신호를 받아 멈췄는데 뒤에서 고급 외제차가 들이 받았다고 해요. 이에 합의금으로 돈을 받아 회사 부도를 면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과보도 현보에 속함을 유의하세요.

“둘째는 생보(生報-현세에서 선악의 업을 지어 내세에 받는 과보)이며 셋째는 후보(後報-현세에서 선악의 업을 지어 삼생(三生) 뒤에 받는 과보)입니다.”

조선시대 한 스님이 숭유억불 정책으로 절도 허물어져 가고 불교가 침체기에 이르자 저녁 예불을 올리며 “부처님, 내일 저는 떠나겠습니다”라고 했대요.

그리고는 꿈을 꿨는데 부처님께서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고 해요. 부처님 말씀이니 믿고 내려갔지요. 동네에 평생 결혼도 못하고 사는 머슴이 지나가는 거예요. 시주를 권하자 머슴이 “결혼도 못하고 평생 모아 놓은 돈이 있는데 그것으로 중창불사를 하시지요”하고 해요. 그래서 떠날 생각을 접고 그 돈으로 한창 불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슴이 시름시름 앓더니 앉은뱅이가 된 거예요.

일을 못하게 됐으니 절에 와서 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까지 멀어버린 거예요. 평생을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돈을 불사에 회향하면 공덕이 엄청나게 쌓인대서 시주를 했는데 막상 앉은뱅이에 눈까지 멀었으니 스님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어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중창불사 회향을 앞두고 야단법석을 벌이던 어느 날 밤, 호랑이가 머슴을 물고 가 버린거죠.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찾아보니 뼈다귀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도 “에이, 부처님 영험 없네”하면서 다 떠나버리고 스님도 너무나 화가 나서 도끼를 목불 머리에 박아놓고 떠나버렸어요.

이후로 세월이 20여년 정도 흘렀지요. 절을 떠난 스님은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불상 이마에 도끼를 박아 놓았으니 죄송스러운 마음도 컸지요. 스님은 예전의 그 절을 찾아갑니다. 절은 이미 폐사가 되어 있었지요. 마침 그 마을의 원님이 부임하던 길에 그 절에 당도합니다. 원님이 물었지요. “저 절이 왜 폐사가 되었는지 아는가?” 20여년전 얘기를 하니 가만히 보다가 이마에 박힌 도끼를 쑥 뺍니다. 빠진 도끼날에는 ‘화주시주상봉’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원님은 전생에 그 머슴이었다고 해요.

결국 머슴은 시주한 공덕으로 삼생에 받을 것을 한방에 받았습니다. 원래 한 생은 앉은뱅이, 한 생은 장님, 한 생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어야 하는 삶인데 부처님께서 시주 공덕으로 한 생에 줄여서 그 업을 털어주셨어요. 조선시대는 신분상승이 안되니 좋은 집에 태어나 급제하고 관복을 입게 된 것이죠. 우리가 모르는 불가사의한 부처님 법입니다. 우리 눈으로 판단하면 ‘평생 번 거 다 갖다 바쳤는데 왜 앉은뱅이가 되고 장님이 되고 호랑이에 물려죽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아니죠.

“넷째는 무보(無報,과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복을 짓되 금방 써먹을 수 있는 복도 지어야 하고, 금생에 써 먹을 수 있는 복도 지어야 하고, 다음 생에 저축하는 복도 지어야하는 거예요. 하나만 지으면 그것 끝나면 끝이예요.

“또 업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업은 정하였으나 과보는 정하지 않음이고, 둘째는 과보는 정하였으나 때는 반드시 정한 것이 아니며, 셋째는 때가 정해졌고 과보도 또한 정해진 것이고, 넷째는 때와 과보가 함께 정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은 운명에도 똑같이 작용됩니다. 때와 과보가 네 가지 작용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어느 때건 사업이 잘 돼요. 때와 상관없이 과보가 정해진 거죠, 그런데 한 템포 꼭 앞서 가서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과보는 되는데 때가 정해지지 않은 거예요. 두 개 다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과보도 정해져 있고 때도 정해져 있는데다가 선업이 되면 무지 좋은 거예요. 악업도 반드시 그 길로 갑니다. 여기서 ‘반드시’란 기도 안할 때를 말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는 공덕으로 악업을 막을 수 있으니 고정불변의 실체는 아니겠지요. ‘업품’에서 계속 선업을 지으라고 하는데 때도 좋고 과보도 좋게 만나는 방법이 무엇이죠? 바로 ‘십선업’을 짓는 거예요. 과보가 이렇게 정확하게 정해져 있음을 알면, 선업을 지어야 하는 이유도 정확한 거예요. 현재 좀 어렵고 힘들더라도 선업을 짓는 마음을 자꾸 내다보면 어느새 금방 좋아지게 되죠.

“선남자여, 지혜로운 이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혜를 닦습니다.”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는다.” 여기서 닦는다는 말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해요. 닦는다는 말은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바뀌어 가게 한다는 거예요. 몸을 닦는다는 것은 몸으로 짓는 악업을 선업으로 바꾸고, 계를 닦는다는 것은 계를 자꾸 실천해보는 것이고,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악한 마음에서 선한 마음으로, 괴로운 마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어리석은 마음에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자꾸 바꿔간다는 것이고 지혜를 닦는다는 것도 지혜로운 마음으로 바꿔 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 불교에서 닦는다는데 뭘 닦는지, 어떻게 닦는지를 불자들이 잘 몰라요. 이것이 문제예요. 마음이 실체가 없고 몸도 실체가 없는데 뭘 어떻게 닦느냐, 대상이 확실하지 않으니 불교가 어려운 종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곧 바뀌게 하는 거예요. 변화시키는 것. 이것을 꼭 잘 기억하셔야 되겠지요.

‘우바새계경’ 강설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늘 ‘우바새계경’을 곁에 두고 하나하나 공부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한국이, 또한 불교가 다시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이념이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그 가운데에 여러분의 역할이 존재하는 거예요. 모두 행복한 불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