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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회주 도영 스님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공 된다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와”

▲ 도영 스님은 “지은 공덕은 훗날 자신에 돌아온다”며 “때문에 지금 오직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참된 일인지 거짓된 일인지 잘 살피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작야몽중 두두불(昨夜夢中 頭頭佛)
금조개안 물물살(今朝開眼 物物薩)
어젯밤 꿈속에서는 머리 머리마다 부처이더니,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보살이로구나.

욕망 가득한 중생이기에
끊임없는 고통 이어지지만
모든 것 놓아버리는 순간
삶의 주인공으로 전환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진정한 보살 삶으로 이어져

불교란 어떤 종교입니까. 바로 부처에 이르기 위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은 탐욕심과 어리석음과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생심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고통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 부처가 되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꿈속에서라도 부처님을 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금생에는 보살로 살아 달라’ ‘보살도를 실천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과거 많은 인연 시절을 거치면서 보살도를 실천했고, 그 공덕으로 부처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보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살로서의 삶을 사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곧 보살인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나 괴로움이나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서는 보살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삶, 즉 요익중생이 보살의 삶입니다.

원간차외 처처주(遠看窓外 處處主)
창밖을 바라보니 처처마다 주인이라.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삶의 주인공입니다. 주인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임제록’에 보면 임제 스님께서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하셨습니다. 어느 곳에 있더라도 거짓되지 않고 진실되게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어려서 출가해서 바로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은 잘 모르지만 거짓되지 않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을 떳떳하게 바라보고 상대와 눈을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는 삶, 전혀 양심에 가책되지 않는 삶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입니다. 누가 오든 떳떳하고 당당한 삶,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삶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어느 곳에서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불보살을 속이지 않는 삶입니다. 부처님의 말씀, 보살의 원력으로 살아가는 삶이 돼야 합니다. 둘째 일체중생을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이는 것이 우리 중생의 삶이기도 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진실 되고, 어디를 가든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가 군포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급적 일요일마다 군법당을 찾아 법문을 합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은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 바로 군에 입대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법문을 할 때마다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볼 것을 강조합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어진다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주인공이 되는 길입니다.

춘래초엽 염념일(春來草葉 念念一)
봄은 풀빛으로 오는데 생각은 모두 하나로 모아지더라.

조계종에서는 여러분이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을 정리해놓았습니다. 간화선, 염불, 절, 다라니 등 모든 수행법을 정리해 책을 만들어놓았습니다. 불교는 믿음의 종교만이 아니고 믿음과 수행의 종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집에서도 염불하고 간경하고 참선도 하며 수행해야 합니다. 어떤 것도 좋으니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하든 일념으로 해야 합니다. 염불을 하더라도 일념으로 부처님을 염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는 것은 염불이 아닙니다. 내 염불소리가 내 귀에 들려야지, 다른 사람의 염불이 들리면 망상이 되는 것입니다. 경을 볼 때도, 참선을 할 때도, 염불을 할 때도 어떤 것을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념입니다. 마음에 일체 잡념이 들어가지 않는 일념으로 집중해야 비로소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집즉분명 천지야(執卽分明 天地也)
방내진찰 무비아(放乃塵刹 無非我)
집착하면 하늘과 땅이 분명하지만
놓아버리니 티끌하나까지도 나 아닌 바가 없다.

티끌은 아무 감정이 없는 무정물인데 티끌 하나까지라도 나 아닌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불교는 불이사상이라고 합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죠. 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별심을 갖는 것입니다. 티끌 하나까지도 나 아닌 바가 없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다툼이 없습니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인데 다툴 것이 뭐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다 보면 갈등이 없어지고 늘 여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방거래 무간섭(執放去來 無干涉)
풍운자재 일광화(風雲自在 日光華)
잡고 놓고 가고 옴에 간섭함이 없으니
바람결에 구름 마냥 자재로운데, 햇빛은 빛나도다.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정치까지 이래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지키고 관찰하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인과는 반드시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것은 반드시 자기가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대신 받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진실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선각자입니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45년간 설법한 것이 바로 불교의 근본교리입니다. ‘유교경’에서 부처님은 ‘자등명법등명’하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깁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과 법을 의지하라고 강조하신 겁니다. 부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또 그런 절대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불성을 깨달아 스스로 부처가 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생의 삶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중생의 삶은 늘 고통스럽습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욕망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욕망이 이뤄지지 않으면 화가 나고 또 다른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걸림 없는 삶입니다.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놓아버리면 티끌 하나라도 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나 아닌 바가 없습니다. 그것이 동체대비 사상입니다. 항상 입장 바꿔서 살아가면 누구나 보살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집착하고 놓고 가고 오는 것에 일체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지 말고 남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수행해야 합니다. 버리고 비울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자비를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두를 대하면 자동적으로 보살의 삶이 되는 거예요.

수호청정계(守護淸淨戒)
수행광대인(修行廣大人)
정진불퇴전(精進不退轉)
광명조세간(光明照世間)
청정하게 계를 지키고 수호하여
수행을 넓고 크게 하는 사람이 되라
정진을 하되 결코 물러서지 않으면
온 세상을 빛나게 하리라.

계행을 청정하게 하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는다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늘 떳떳하고 당당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너무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라도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얼마나 좋습니다. 더구나 이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1029일 49재 법회의 열세 번째를 맞아 영가를 모셔놓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얼마나 좋은 자리입니까. 불교에서는 생과 사가 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면 오고 또 오면 가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여러분들이 지은 이 공덕은 훗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오직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참된 일인지 거짓된 일인지 잘 살피면서 하루하루를 참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헛되게 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보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한 일이고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고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행복의 조건을 말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되어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보살행을 실천해 나간다면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신용훈 전북주재기자

 

이 내용은 11월7일 해인사에서 열린 ‘제6차 화엄21 천도법회’에서 완주 송광사 회주 도영 스님의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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