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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승불교와 위빠사나

기자명 김정빈

대승불교도 위빠사나 강조해

위빠사나 명상은 대승불교에서 소승교로 치부하는 아함부의 수행법이기 때문에 처음 한국에 소개되던 무렵 이 수행법을 폄하하는 지도자들이 꽤 많았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그런 사람이 거의 없어졌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이 명상은 모든 명상 수행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위빠사나는 명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수행자 지금여기 머물게 하는
자귀의법귀의는 위빠사나 수행
반야심경·대승기신론서도 권장
소홀할 수 없는 중요한 수행법

필자는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 중에 이 수행법이 마음을 ‘지금-여기’(here and now)에 머물도록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와 미래에서 방황하지 말라는 것, 지금 현재를 살라는 것, 저기와 거기에서 헤매지 말고 당처(當處 :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은 모든 현자가 강조한 삶의 방식이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예수께서도 “내일 일은 내일 일로 미루라. 오늘은 오늘 걱정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으며,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였고, 임제 선사는 “처하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마다 진실을 발하라(隨處作主 立處皆眞)”고 하셨으며, 선가에 쓰이는 ‘조고각하(照顧脚下 : 발 아래를 비추어 보라)’ 또한 ‘지금-여기’를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앞의 여러 가르침 중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미래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과거는 언급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명상 부분, 즉 자신의 심신을 알아차리라는 부분이 빠져 있다. 스피노자의 말에서도 명상 부분이 누락되어 있고 ‘수처작주 입처개진’에서도 어떻게 하면 ‘수처작주 입처개진’이 되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으며 사정은 ‘조고각하’라는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위빠사나 명상은 이 모든 부족 부분을 보충하여 단번에 완성한다. 먼저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면(자신의 심신을 알아차리면) 저절로 ‘지금-여기’에 머물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이 명상법으로써 앞에 예로든 모든 가르침을 다 실천할 뿐 아니라 그 가르침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다시 더 나아가 삼매를 이루고 지혜를 계발하게 된다.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는 한국 불교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법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법문이 남방불교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Mahāparinibbānasutta, 북방불교의 유행경(遊行經))’에 보인다는 것을 아는 불제자는 많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반열반(般涅槃 : 돌아가심)을 앞두고 시자인 아난다 존자에게 이 법문을 하셨는데(다른 데서도 하셨다), 중요한 것은 그 뒷말씀이다.

부처님께서는 ‘자귀의 법귀의’를 권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비구가 자귀의 법귀의를 수행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념처(위빠사나)를 수행하는 것이니라.” 우리 불교에서는 ‘자귀의 법귀의’라는 말씀을 여러 가지 의미로 풀고 있지만 정작 경전에서는 “그것은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면 저절로 자등명 법등명 상태가 된다. 자신의 심신을 알아차리는 수행자는 부처님이나 하느님까지도 의지하지 않는 상태, 즉 자신에게만 의지(귀의)하는 상태가 되고, 또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행법(법)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또는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순수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법에 귀의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독송하는 ‘반야심경’에서도 위빠사나 명상법이 있다. ‘반야심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조견오온(照見五蘊)’이 곧 위빠사나 명상인 것이다. ‘오온’은 ‘나 자신의 심신’이고, 불교에서 ‘비추어 본다’는 것은 ‘알아차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관자재보살이 조견오온하셨다”는 것은 곧 “관자재보살이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대승불교의 총론서로 일컬어지는 ‘대승기신론’ 또한 사마타(奢摩他)와 위빠사나(毘鉢舍那)를 수행할 것을 권하고 있다. 위빠사나는 ‘대승불교’에서도 결코 버리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수행법인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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