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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영화 ‘판도라’를 보고

기자명 최원형

원전이 폭발하는 순간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진다

바닷가에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여느 바닷가 마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풍경에 원자력발전소가 이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그 원전의 안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원전 측은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안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만 귀찮아할 뿐입니다. 또 다른 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삽니다. 그래도 그게 있으니 우리 마을이 먹고 사는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지요. 그런 믿음에 재혁은 반론을 제기합니다. 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재혁이네는 눈앞에 보이는 바로 그 원전에서 재혁이 아버지와 재혁이 형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재혁은 가족을 잃은 바로 그 원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늘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재혁을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평온하던 일상을 뒤흔드는 진도 6.1의 강진이 발생하고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진이 멈추고 가족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뻔 했습니다. 영화 ‘판도라’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원전 재난은 상상 그 이상
평범한 삶 돌아갈 수 없어
영화 속 사고 경주와 비슷
그 비참함 아는 기회 되길

그 바닷가 마을이 아수라장에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건 원전 때문이었습니다. 강진으로 원전에 균열이 생기면서 냉각수 공급에 이상이 생겼던 거지요. 뜨거운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후쿠시마 원전도 냉각수 공급 전원이 끊기며 발생했던 사고입니다. 원자력발전소라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대 기계입니다. 어느 정도로 거대 기계인가를 고리1호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고리 1호기 원전은 배관길이 170km, 전기선 길이 1700km, 연결밸브 3만개, 용접부위가 6만 5000여 곳 있습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입니다. 만약의 경우 지진으로 인해 어느 곳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과연 누가 얼마나 신속하게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안전하게 조처하는 일은 또 어느 정도나 가능한 일일까요?

지진으로 인해 원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는 너무나 많습니다. 더구나 오래된 원전의 경우 그 확률은 대단히 높기도 하고요. 만에 하나 원전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만으로도 늘 끔찍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재난은 제가 평소 생각하던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냉각수 공급이 끊겨 끝내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방사능 유출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당국은 우왕좌왕합니다. 컨트롤 타워여야 할 나라의 수장은 원전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했습니다. 마치 ‘세월호’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마을의 한 곳으로 주민들을 대피시켜놓고는 바깥에서 문을 잠가버립니다. 이유는 행여 주민들이 동요하게 되면 그 여파가 인근지역으로 번질 것이고 결국 전국이 혼란에 빠질 거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지요. 원전이 폭발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주민들은 탈출을 시도합니다. 몰고 나온 차들로 도로가 금세 주차장이 돼버리자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뛰기 시작합니다. 방사능은 시간의 흐름보다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오염된 땅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공항과 항만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면적대비 원전밀집도가 세계 최고입니다. 사고발생시 당연한 풍경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머릿속에서는 경주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12일 5.8의 강진이 발생했던 경주에는 월성원전이 6개 있으니까요. 더구나 30년 넘게 운행 중인 월성1호기도 있습니다.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몸 여기저기가 제 역할을 못하고 삐걱대듯 기계 또한 마찬가집니다. 환경단체들이 설계수명 30년을 넘은 노후 원전의 폐쇄를 요구했지만 결국 정부는 10년이나 연장시켜 계속 돌리고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하고 4시간이 지나 월성원전 1~4호기의 가동이 수동정지 되었지만 다시 가동을 하려합니다. 경주 땅은 활성단층대 위에서 530번도 넘게 출렁거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영화 ‘판도라’는 제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원전 사고의 비참함을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팩트와 인간적인 고뇌를 잘 녹여 만든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거야. 그러나 판도라에는 절망도 있지만 희망도 있지.’ 재혁의 운명이 원전사고를 계기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꼭 확인하셨으면 합니다. 영화를 통해 무엇이 우리에게 절망을 가져다주는지 또 무엇이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땅에서 내 아이의 아이의 아이가 언제까지고 안심하고 살 수 있길 발원합니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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