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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50. 선 수행의 유익한 점 ①

기자명 법보신문

바른 마음·생각·행동으로 번뇌와 업력에 대처해야 한다

 
“선(禪) 수행으로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요?”

많은 분이 이렇게 저에게 질문 하는데요. 답은 여러 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답들이 다 답안이긴 하지만 정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외적으로 자연 규칙을 따르는 이 세상을 봤을 때, 자연현상, 계절과 계절의 변화를 예로 들어봅시다. 자연 규칙을 안다는 것은 계절이라든지 식생활이라든지 음식의 특징을 아는 것입니다. 자연을 알기 쉬울까요? 어렵습니다. 시기마다 문화 또한 달라집니다. 또 어떤 문화의 변화는 잘못된 것도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과 내가 인연이 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시간, 능력과 지능에 따라 외적인 인식을 따르는데 그 외적인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선은 외적으로 세상을 알고 자연 규칙을 알고 자연법칙을 아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행위를 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보면 속도가 아주 빨라집니다.

선 수행의 유익한 점, 그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선 수행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는 바깥을 보아 외적인 자연의 규칙과 법칙을 알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속마음부터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각기능인 지각, 후각, 촉각, 청각, 신체적인 느낌 등으로 이 세상을 알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상품을 평가하고 호불호를 평가하며 나에게 주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평가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주는 정서를 평가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평가할 때 그것은 정확할까요? 여러분의 세계관이 정확할까요? 만약에 세계관이 정확하지 않다면, 혹은 여러분이 착용하고 있는 안경의 안경알이 다 붉은색이라면, 이 세상 자체가 붉은색으로 보이겠죠. 최소한 안경알의 영향을 받아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적인 경지가 높지 않을 때, 큰 공간, 큰 시공간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면, 외적인 인식과 평가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오류로 표현과 정서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지 말아야 할 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공간의 개념으로 봤을 때 과거의 번뇌는 자신의 무지한 정신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과거의 즐거움은 손을 씻는 비누 거품처럼 거짓일 수 있습니다. 비누 거품은 속이 비어 있지만, 표면은 햇빛 때문에 화려하게 빛나 보석이라 착각하고 즐거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민감하고 쉽게 움직이고 쉽게 느낍니다. 쉬울 이(易), 느낄 감(感)을 써서 중국어에서는 이감이라고 하는데, 쉽게 느끼고 그 순간의 느낌으로 자신의 정서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인류 번뇌의 원인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야 하고 세상을 알아야 하고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아는지 그 경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는 이 이야기를 더욱 깊이 풀어 가면 많은 분이 질병을 해결하고 정신적인 번뇌를 해결할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의 정신적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만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을 알고 자기 속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많은 일과 많은 질병이 우리 인생을 번뇌 혹은 무료함으로 채우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정신적인 번뇌는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 냅니다. 제가 젊었을 때, 부처님은 마음속에 있고 번뇌도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과 번뇌는 모두가 내 마음이 만들어냅니다.

왜 번뇌할까요? 사람됨,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가장 민감한 세포로 느끼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느낍니다. 두 사람이 웃고 떠들 때 웃고 떠들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아, 저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있구나!’ 두 사람이 욕을 하고 있으면 ‘아, 내 욕을 하고 있구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닥에서 돈을 줍거나 물건을 줍듯이 어떤 사람은 욕을 주워 먹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나약함입니다. 넓고 큰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보면 너무 이기적이고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내어줄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감이 없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고 능력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영원히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모든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있고 그들이 뒤에서 내 욕을 하고 내 뒷이야기를 하고 상처 준다는 생각 때문에 자폐증에 걸립니다.

이러한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대범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내어주면서 우리의 마음을 점점 더 넓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속의 번뇌는 점차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으로 그것을 볼 때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 조금만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기회를 통해 이치를 명확히 들어 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몸이 변화되고 수행하면 할수록 좋아집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많은 질병에 대해 우리는 아마 영원히 질병이 발생하는 이유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질병을 치료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건강과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차를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차가 이미 두세 곳 고장 났는데 대충 운전하자는 생각에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다가, 앞뒤 어디에도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을 때 차가 멈춥니다. 사람의 몸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내 몸을 자주 돌보고 정말 몸이 안 좋을 때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돈의 유무는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신세계에서 가치관 그리고 감정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선 수행을 배우면 우리의 건강은 수행의 누적시간에 따라 틀림없이 변화하게 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질병이 생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리죠. 건강은 적당한 훈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충족한 상태이지만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두 가지 에너지 때문에 질병이 생겼을 경우, 수행을 통해 이러한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면서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지만 사라지지 않는 결함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몇 가지로 말씀드릴 수가 있는데, 첫 번째, 세상에 절대적인 완벽함은 없습니다. 상대적인 완벽함만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알아야 하고 조금 더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업은 무엇일까요? 업이라는 것은 예전의 행위 때문에 발생한 상호작용과 같은 것입니다. 업에는 3가지가 있는데 선업이 있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업이 있고, 악업이 있습니다. 밥을 먹는 행위 자체에는 업이 없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으면서 돼지를 죽였다면 악업이 쌓입니다. 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해를 끼치는 것과 해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호하는 행위도 있습니다. 그렇게 업을 구별합니다.

악업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재물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살생 또는 살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직접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아도, 그 사람의 모든 재물을 다 훔쳐버리는 등 그 집안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큰 해를 끼쳤다면, 그것도 아주 큰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업을 짓게 되면 업을 지은 사람이 자연스레 업을 짊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물건을 훔쳤을 때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행위가 발생하면 자연계가 기록합니다. 자연계, 공기, 생명의 정보에 기록됩니다. 이 지구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행위로 발생하는 효과는 방금 말씀드렸지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선한 업,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업, 그리고 악한 업,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해를 끼치는 것은 다 악업을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일정 시간이 되면 문제가 터집니다. 저는 서로 다른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수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가 10~20년이 지나면 한 푼도 남아있지 않고 모두 사기당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 부를 축적한 방법이 사기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지 않고 이생에서는 다른 사람을 속인 적 없지만, 아마 전생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거나 혹은 조상이 악업을 지어 몸에서 그 인과응보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업은 가장 골치 아프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부처님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악업을 대하는 부처님의 마음가짐을 한 가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사촌 제바달다는 줄곧 그를 해치려 하고 늘 반대 논조 또는 삐뚤어진 논조를 펴 다른 사람을 바르지 않은 길로 이끌었습니다. 최종점이 올바르지 않은 관점이었지만 사촌 역시 왕족이었기 때문에 국민은 그것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잘못된 이론을 펼칠 때 석가모니부처님도 처음에는 몹시 화를 냈지만, 차차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80여 세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사실 제바달다는 부처님이다”라고 합니다. 불보살의 화신이라고 합니다. 만약 비교 대상이 없었더라면 석가모니부처님도 멈출 수 있을 때 혼자 조용히 좌선도 하고, 자재롭게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설법하지 않고, 청정하게 폐관하면서 마음속으로 자유로움, 자재로움을 느끼고 싶었을 것입니다. 7년 동안 고행해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수행 속에 묻혀 있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늘은 어떻게 말했을까요? “석가모니부처야, 7년 동안 수행을 했으니 이제는 졸업하여라. 수행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선경의 자재함에 욕심을 부리는 것도 탐욕이 될 수 있다 하여 사촌 제바달다를 파견해 늘 잘못된 이론을 설하게 하고 석가모니부처님이 그에 맞서 올바른 이치를 가르치고자 끊임없이 설법하러 다닙니다. 그의 사촌 제바달다는 잘못된 법을 배웠지만 늘 힘이 넘쳤습니다. 그의 사촌이 어떤 지역에 가거나 싱가포르에 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석가모니부처님은 발 빠른 말을 타고 싱가포르에 와서 설법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싱가포르 사람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으니까요. 석가모니부처님은 어쩔 수 없이 바른 법을 전하기 위해 계속 돌아다닙니다. 그 당시 나쁜 일이라 여겼으나 결과적으로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물을 더 높이 더 넓게 볼 수 있으면 우리의 견해가 달라지겠죠. 진정 바른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 잘못을 뉘우치는 정확한 방법이고 대처법입니다. 인생에서의 번뇌가 업력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열심히 수행하면 자신을 바꿀 수 있습니다.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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