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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스님을 제대로 보필하라

기자명 이병두

부처님 재세 시 사위성에 변소를 치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니디(Nidhi, 尼提)라는 사람이 있었다. 260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인도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들과 말을 나누거나 할 수 없으니 그 시절에는 오죽했겠는가.

어느 날 인분이 가득찬 통을 지고 가던 니디가 부처님 일행을 피하려다 발을 헛디뎌 통 안에 있던 것들이 모두 쏟아지고 부처님과 시자 아난의 가사에도 오물이 묻었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용서를 비는 니디를 위로하여 일으켜 세운 부처님은 직접 몸을 씻겨주겠다며 그를 강으로 데리고 가신다. “부처님처럼 거룩하신 분이 저처럼 천한 놈의 더럽고 냄새나는 몸을 만지게 할 수 없다”며 이를 피하는 니디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대는 천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소. 그대의 옷은 더러워졌지만 그대의 마음은 더할 바 없이 착하고, 그런 그대의 몸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오. 니디여, 그대는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되오.” 이렇게 해서 니디의 몸 구석구석을 씻겨주신 뒤 부처님께서 그에게 출가하여 사문이 되라고 권유하자, 니디는 ‘미천한 신분이라 감히 그럴 수 없다’며 머뭇거린다.

“염려 마시오.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이고도 늘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두를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하지요. 가난한 사람과 부자,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남자와 여자, 피부색의 차이도 없으며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오.” 니디를 출가시키며 부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사회 최하층 신분인 니디의 몸에 묻은 오물을 직접 씻겨 주시며 ‘스스로 거룩한 존재’임을 깨닫게 이끌어주시는 모습, 부처님 일생에 우리를 감동시키는 숱한 일화들 중에서도 더욱 빛나고 가슴에 남는 장면이다.

똥통을 지고 다니던 니디를 출가시킨 데 대해,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부처님 제자들 사이에서도 쑥덕거리며 비판과 비난이 나왔음은 물론이고 니디에게 직접 욕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부처님이 당부하신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신분과 직업이 아니라 오직 지혜와 덕행으로 출가수행자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그 사람을 공경하십시오.”

이처럼 부처님은 잘못된 세상의 잣대와 편견으로 무시당하고 소외받던 사람들을 더욱 세심하게 배려하셨지, 종족·신분·재산과 지식의 많고 적음 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 이런 따뜻한 마음을 쓰신 덕분으로 니디뿐 아니라 이발사 출신의 우팔리와 우둔하기로 유명했던 출라빤타까 등 ‘진흙 속에 감춰져 있던 숱한 보석’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셨던 것이다.

지난 12월5일 진제법원(眞際法遠) 스님이 종정으로 재추대되었다. 큰 어려움 없이 다시 추대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며 조계종단이 중요한 일을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앞으로 종정을 모시는 분들이 스님을 제대로 보필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비리의 온상으로 드러나는 해운대 LCT 기공식 자리나 천주교가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천진암 성역화 현장 순례를 가시는 것과 같은 잘못이 다음 임기 중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

종정스님은 부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 길만 그대로 따라하시면 좋을 듯싶다. 정치인과 돈 많은 사업가들 만나서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옳다고 인정하는 듯한 역할은 이제 멈추고, 사회에서 천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힘든 삶에 지쳐서 목숨을 이어갈 의욕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이 스스로 ‘존재의 거룩함’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럴 수 없으면, 임기 동안 팔공산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마시고 그냥 신비한 모습만 보여주셔도 좋겠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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