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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 23. 제27·28 선정·반야바라밀품[끝]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12.13 14:09
  • 수정 2016.12.13 14:11
  • 댓글 0

절제·인내·노력으로 탐·진·치 버리면 운명도 변한다

▲ 법안 스님은 “‘우바새계경’이야말로 운명을 바뀨고 세상을 맑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방법이 담겨있는 경전”이라고 강조했다.

1년간 법보신문을 통해 이어진 ‘우바새계경’강설의 마지막회입니다. 마지막 법문 제목은 ‘불가사의·불가사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를 정의하자면 첫 번째가 성공학(學)입니다. 부처님 법은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가장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죠. 두 번째는 행복학입니다. 누구든지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행복하지 않으려 아무리 작정해도 행복하게 되어있어요. 세 번째는 치유학입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아픔이 치유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의료가 없지요. 이러한 불교를 우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그동안 오해했던 부분들이 있었지요. ‘우바새계경’ 강설이 불교에 대한 오해를 잠재우고 실천적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는 계기가 되셨길 바랍니다.

마지막 강설은 제27품 선정바라밀품, 제28품 반야바라밀품입니다.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선정바라밀을 닦는데 어떤 것이 선정이옵니까”

“선남자여, 선정이란 곧 계(戒), 자(慈), 비(悲), 희(喜), 사(捨)로써 멀리 모든 번뇌를 여의고 선법을 닦는 것을 선정이라고 합니다. 선남자여, 선정을 여읜다면 어떠한 세속의 일도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세간의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극한 마음으로 닦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지혜로운 이는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일체의 번뇌는 나의 큰 원수이다. 왜냐하면, 이 번뇌로 인하여 자신과 남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 인연으로 나는 마땅히 자비의 마음을 닦으리니,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순수한 선법을 얻기 위한 때문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자비를 떠나서 선법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체의 번뇌는 나의 큰 원수이다.’ 번뇌가 무엇입니까?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의심 많은 마음이 곧 번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다섯 가지가 근본번뇌라고 하셨지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건 삼독입니다. 보약이 아니라 독이니, 섭취를 하면 건강이 나빠지지요. 그래서 탐욕이 많은 사람은 건강이 나빠지게 되어있어요. 화를 잘 내는 사람도 건강이 나빠지지요. 독을 자꾸 몸에 주입하니까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잖아요?

어리석음은 인과를 모르는 것입니다. 티베트에서는 가장 큰 욕이 ‘인과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탐내고 성내고 인과를 모르는 어리석음은 많이 섭취할수록 몸과 마음의 건강을 약해지게 하고 병을 불러옵니다. 그런데도 우리 중생들은 탐·진·치 삼독으로 사는 거예요. 그런데 탐욕도 탐욕 나름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예 욕심이 없으면 안돼요. 그러나 욕심이 마음을 썩히도록 놔두는 게 아니라 좋은 쪽으로 승화시켜야 하지요. 바로 원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막대하게 벌어야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돈을 벌어서 좋은 일에 크게 쓰겠다’는 원력을 세우면 어떨까요? 완전히 달라지지요.

서양의 어느 학자가 ‘미래에 성공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세 가지를 반드시 갖추고 있더라는 거예요. 첫 번째가 절제, 두 번째가 인내, 세 번째가 노력이래요. 이 세 가지가 있으면 누구든지 다 성공을 하더라는 거예요.

절제는 불교용어로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게 아니라 절도 있게 자기 인생을 제어하는 거지요. 계율을 지키는 공덕은 굉장히 큽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현실에서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요.

우리 모두가 오계를 배우고 실천한다면 사회가 정말 밝고 맑고 아름다워질 것 같아요. 오늘날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고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고, 나아가 전세계가 불교의 오계만 지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없지 않겠어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그렇지요?

두 번째 인내는 불교 용어로 인욕입니다. 참고 노력하는 것이죠. 인욕바라밀은 참고 견뎌서 열반의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지만 참는 것이 쉽지 않아요.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점이예요.

매일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그런데 기도를 하려면 더 일찍 일어나야하죠. 일분만 더 누워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날 기도는 망친 거예요. 더 누워있고 싶고 더 자고 싶은 욕구를 참고 일어나는 인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지요. 많은 분들이 물어요. “새벽기도를 좀 늦게 일어나서 하면 안될까요?” 그러면 저는 “그냥 지금처럼 살아. 그냥 살지. 뭐하러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해?”라고 합니다. 참고 견디고 계획한 바를 실천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인욕바라밀임을 기억하세요. 성공의 비결 세 번째는 노력입니다. 불교용어로 정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정진이잖아요.

보시하면서 지계·인욕·정진하면 누구든지 다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어요. 특히 육바라밀은 가장 좋은 성공 방법이에요. 부처님께서 “지혜로운 이는 ‘일체의 번뇌는 나의 큰 원수’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의심 많은, 이 근본 번뇌가 나의 큰 원수임을 안다면, 쓸데없는 욕심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할 때 “나는 지금 큰 원수에게 얻어터지고 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번뇌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인연으로 나는 마땅히 자비의 마음을 닦으리니,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자하기 때문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순수한 선법을 얻기 위한 때문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탐·진·치가 일어날 때 자비로 돌려보세요. ‘자비’가 뭐죠? ‘친·아·배·사’ 친절, 아량, 배려, 사랑나누기. 기억하시죠?

어느 분이 친절, 아량, 배려, 사랑나누기를 직장에서 실천해보니 지옥 같았던 사무실이 극락이 되더라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능률도 오르고 실적도 오르게 되겠죠. 자비는 추상적인 용어가 아니에요. 친절하고 아량을 베풀고 남들을 잘 보듬어주고 배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든 것이 곧 ‘자비’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일까요? ‘지혜’라고 하면 막연하지요? 바로 근면, 성실입니다. 첫 번째, 근면의 ‘근’은 ‘근검’이예요.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복이 자꾸 늘어나죠. 근면의 ‘면’은 ‘면학’이예요. 부지런히 힘써 배우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첫 번째가 근검과 면학입니다.

두 번째, ‘성실’의 ‘성’은 정성심, ‘실’은 진실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두 번째는 정성과 진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성공이 따를 수 밖에 없겠지요?

다음은 ‘반야바라밀품’으로 넘어가보지요.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청정한 반야바라밀을 닦습니까?”
“선남자여, 보살이 지계, 정진, 다문, 정념으로 인욕을 닦고 중생을 연민하며 마음에는 참괴심이 많고 질투심을 없앱니다. 진실로 모든 좋은 방편을 알고 중생을 위하여 고통을 받되 후회와 퇴전함이 없습니다. 보시하기를 즐거워하고 중생을 조복하며 범한 것이 가볍고 무거운 것임을 잘 알고 부지런히 중생에게 복업을 짓도록 권합니다.”
“글자를 알고 뜻을 알며 마음에 교만함이 없고 좋은 벗과 가까이하며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합니다. 삼보와 모든 스승과 화상과 장로와 덕이 있는 이를 공경하고 보리에 대하여 몸을 가볍게 여기는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 보리의 깊고 묘한 공덕을 관하고 선악상(善惡相)을 알며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성론(聲論-관념이나 개념의 항상성을 주장하는 인도 철학의 한 체계)을 압니다. 인을 알고 과를 알며 첫 방편 및 근본을 압니다. 그리하면, 이 사람은 지혜를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지혜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많이 들어서 생기는 것이고, 둘째는 생각에서 생기는 것이며, 셋째는 수행을 통해 생기는 것입니다.”

‘치유하는 불교읽기’의 저자 서광 스님은 책을 통해 “지식 없이는 어떤 경우에도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식은 없는데 지혜는 있어요. 가능할까요? 아니죠. 지식이 있을 때만 그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지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기도 해요.

반면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없을 수는 있어요. 지혜는 근면·성실입니다. 더 현실적으로 보면 처세술도 포함됩니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 근면·성실이 결국은 궁극적인 처세방법이니 세상을 잘 사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이 지혜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불교에서 ‘불립문자’라고 해서 경전도 안 읽어도 되고 불교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 부처님 말씀과 달라요. 사교입선이란 말이 있지요. 불교의 이치나 원리에 대한 일정한 연구를 다 마치고 선 수행에 들어간다는 의미예요. 팔만대장경을 공부하고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게 소화하면 비로소 그 가르침을 활용할 수 있어요. 부처님께서 “이렇게 하라” 하셨으니 죽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운용하는 것이죠. 그럴 때 사교입선 하는 것이지, 아무 것도 공부한 게 없는데 버릴게 뭐가 있나요. 뗏목을 탄 후에 뗏목을 잊어야지 아직 강가도 안 가놓고 뗏목을 잊으면 되겠어요?

“글자에서 의미를 얻는 것이 듣는 것에서 생기는 지혜이고 사유(思惟)하여 뜻을 얻는 것이 생각에서 생기는 지혜(思慧)이며, 수행을 따라서 뜻을 얻는 것이 수행을 통해 생기는 지혜(修慧)입니다.”

운명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정확하게 정해져있어요. 운명은 번뇌·업보입니다. 번뇌가 뭐예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인과를 모르고) 교만하고 의심 많은 마음이죠. 현대사회에서는 이것을 성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운명을 바꾸는 제일 쉬운 방법은 번뇌를 버리는 것, 다시 말해 성격을 바꾸는 것입니다.

성격적 장애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인데 전부 미래지향적 생각이 아니라 과거 지향적 생각이지요.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도 삼독과 깊은 연관성이 있어요. 삼독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면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도 나아질 수밖에 없어요.

‘우바새계경’의 핵심은 육바라밀이라고 했지요? 이는 곧 우리가 운명을 바꾸는 여섯 가지 수행방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육바라밀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 나가다 보면 어느 사이에 운명이 전부 다 바뀌어 있는 거예요. 꼭 실천하셔야 해요.

‘우바새계경’은 또 운명을 바꿀 뿐만 아니라 세상을 맑고 밝고 아름답게 바꾸는 방법이죠. 그동안 ‘우바새계경’을 23회 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했는데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평생 동안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어느 경전보다도 불교를 터득하기 쉽고, 잘 알 수 있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행동 지침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거든요.

육바라밀을 통해 현실을 극락으로 만드는 불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불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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