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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부부가 함께하는 이치-중

“지금 대화하지 않나요? 부부간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 탁발을 하고 있는 불광산 스님들. 손자를 데리고 나온 대만 불자가 공양을 올리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지혜로운 말은 다리가 되어 부부간 고부간 사랑과 기쁨이 넘치게 합니다. 자식 사랑은 세상의 모든 엄마가 똑같습니다. 며느리를 자신의 딸처럼 여긴다면 고부간 갈등도 없습니다. 부부간, 고부간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한다면 행복한 불교가정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칭찬 역시 불교의 수행법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야단치는 것보다 효과가 좋습니다. 부부간 서로 칭찬하고 서로 존중하면 자연적으로 감정이 돈독해집니다. 입을 열지 않는 부부에게는 필히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실 한 가정에는 부부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고부간의 문제도 있습니다. 특히 고부간이 좋지 않으면 남자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한쪽으로는 효도를 해야 하고 한쪽으로는 감정을 상할 수 없으니 어려움이 많게 됩니다.

한 고부가 있었는데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모친은 아들에게 며느리와 이혼을 하라고 했고 아내는 남편에게 고약한 노인네와 살지 말고 나가서 살자고 했습니다. 똑똑한 남자는 어머니에게 “엄마! 우리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혼한다고 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나쁘게 대해서 그렇다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만약 반년 정도 엄마가 집사람에게 잘 대해 주어서 우리 집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아주 아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난 후 우리가 이혼한다면 엄마의 명예에 영향이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친은 “반년 정도는 내가 참겠지만 너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우리가 방금 결혼했는데 이사를 나간다면 남들로부터 우리가 불효한다는 소리를 듣게 될 테니 앞으로 입장이 곤란해질거요. 앞으로 반년 동안만 당신이 엄마한테 좀 잘하고 대화도 나누고 엄마를 기쁘게 해 남들로부터 우리 가정이 화목하다는 말을 듣고 이사를 나간다면 우리집 고부간에 문제가 생겼다는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을 것 같구려”하고 타일렀습니다. 아내는 “당신 말대로 하면서 반년 정도는 참고 지낼게요. 반년 후에는 꼭 분가해야 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어머니는 아들과의 약속을 위해 며느리를 아껴주었고 아내는 남편과의 약속을 위해 시어머니를 공경하며 보살펴드렸습니다.

반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들아! 며늘아기하고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된다. 정말 좋은 아이야.”라고 했고 며느리도 남편에게 “어머니는 우리를 정말 아껴주시는 분이에요. 우리 분가하지 말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가정에 본래 아무 일이 없지만 고부간에 갈등이 있게 되면 남자는 두 사람 사이에 끼게 되므로 어떻게 편견을 없앨 수 있는지에 관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부간에는 탱고를 추어야 하고 부부간에도 탱고를 추어야 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치아와 혀도 조심하지 않으면 치아가 혀를 깨물게 되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남을 존중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다(敬人者 人恒敬之)”는 말처럼 남에게 잘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일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부하들을 잘 돌보고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부하들도 자연적으로 상사를 따르고 존경하니 업무효율이 증대 됩니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잘 대해준다면 인간 세상에 즐거움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고부간 문제에 있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서 추석을 앞두고 “며늘아이야! 추석이 다가오니 송편을 좀 만들어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며느리는 요즘에 누가 송편을 집에서 만드나 싶었지만 시어머니 말씀이니 거역하지 못하고 주위에 물어보고 힘들게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추석 전날 힘들게 송편을 만들어서 찌고 있을 때 거실에서 “딸아! 네 올케가 송편을 만들었으니 얼른 와서 좀 먹으려무나.”라고 전화하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며느리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해서 송편을 만들었는데 당신은 조금도 도와주지 않고 수고한다고 위로도 해주지 않다가 이제 송편이 다 되니까 당신 딸보고 와서 먹으라고 하느냐하는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가 난 며느리는 참을 수가 없어서 앞치마를 벗어버리고 그길로 친정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친정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이내 친정집에 도착하여 집안으로 들어서니 마침 전화를 걸려고 하던 엄마는 딸을 보고 “딸아! 너 마침 잘 왔다. 네 올케언니가 송편을 다 만들었기에 먹으러 오라고 내가 너한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세상의 엄마는 모두 똑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녀 사이에는 모녀간의 감정이 있는 것이고 고부 사이에는 고부간의 감정이 있는 것으로,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에 정도의 차이가 다르고 친밀도가 다른 것입니다.

송편을 빚는 이 문제는 우리 중국의 고부간 문제인 것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따지고 비교하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는 것입니다. 불교적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신도가 한 절에 주지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젊은 주지 스님이 그 손님을 맞아 대화를 나눌 때 옆에 노스님이 서 계셨습니다. “손님 드시게 가서 차 좀 내오세요.”하고 젊은 주지 스님이 노스님을 시켰습니다. 이 손님도 신앙이 있던 사람이라서 어떻게 젊은 주지가 이렇듯 건방지게 연로하신 스님께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는 생각에서 마음이 불편하였지만 손님의 입장이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참고 있을 때 차를 갖고 온 노스님을 보고 젊은 주지가 또 “손님 드시게 가서 과일 좀 깎아오세요.”라고 하자 노스님은 알았다며 과일을 준비하러 갔습니다. 신도는 참기가 힘들었지만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하던 말을 대강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때 젊은 비구가 노스님께 “잠시 후에 이 손님이 식사를 하도록 좀 안내해 드리세요. 저는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주지가 자리를 떠난 후에 신도는 기회를 틈타 노스님께 물었습니다.

“아까 저 젊은 주지는 노스님 하고 어떤 사이인가요?”

그러자 노스님은 “저의 상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도는 이 말을 듣고 놀라서 “노스님의 상좌인데 어떻게 노스님께 이렇게 예의가 없죠?”라고 했고 노스님은 “그렇지 않아요. 상좌가 저한테 아주 잘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뭐가 잘하는데요? 차가져 오라고 시켰잖아요.”
“그랬지요. 차를 내오는 거는 간단한 일이지만 차를 끓이는 힘든 일은 시키지 않지요. 차를 끓이는 일은 훨씬 힘든 일이지요.”
“그렇지만 주지스님이 노스님한테 과일도 깎아오라고 했잖아요.”
“그랬지요. 나한테 과일을 깎으라고 시켰지 과일나무를 심으라고 시키지는 않았지요. 과일나무 심는 거는 정말 힘든 일이지요.”

노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이 신도는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어 또 물었습니다.

“여기 절에서는 도대체 은사스님이 높은가요 아니면 상좌가 높은 건가요?”
“출가자에게 어디 무슨 높고 낮다고 할 게 있나요. 모두들 다 사중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요. 상좌는 젊으니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고, 나는 나이가 많으니 차를 내오고 청소도 하고 좀 쉬운 일을 하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 중국의 고부간이 이렇게 넓은 마음과 아량의 노스님과 같을 수 있다면 고부간에 무슨 문제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기 다른 생활습관의 두 가정에서 성장하다보니 서로 다른 관념과 의견이 있기 마련이지만 결혼을 하였으니 서로 포용하며 인내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상호 존중하여야 합니다. 부부가 처음에 서로 적응하는 시기를 거치고 나서 서로 따지지 않게 되니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내가 되는데 더 이상 문제거리가 되겠습니까?

우리 불광산에 있는 대자육아원의 일부 아이들은 고아이지만 일부는 부부간에 문제가 생긴 한부모 가정 아이들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육아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아이들에게 아빠가 너를 보러왔을 때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 엄마가 보러 왔을 때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하라고 일러줍니다. 이 아이들의 많은 부모들에게는 아직 정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서 어린 자녀들의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한테 지난번에 엄마가 와서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고 아빠한테 말하라고 시키고 엄마한테는 지난번에 아빠가 와서 엄마가 이래서 좋다고 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부가 다시 마음을 돌려 합치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처리한 신도들 집안 문제 가운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명의 전화 창설자인 ‘조중식(曹仲植) 선생’입니다.

아마도 50년 전인 반세기 전의 일입니다. 어느 하루 저는 친구를 찾아서 ‘베이토우(北投)’에 있는 절에 갔는데 한 무리의 신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양복에 구두를 신은 품위 있는 태도의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왔습니다. 어느 한 부인이 저를 보면서 “우리 남편이 왔네요. 스님! 스님께서 저의 남편한테 절 좀 하라고 해주세요.”라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시 조 선생은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누구나에게나 신앙의 자유가 있는 법이니 어찌 제가 그 사람에게 절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부인이 저한테 부탁을 한 상황에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저는 할 수 없이 “남편 분이 꼭 절을 해야만 하지는 않지요. 부처님처럼 베푸는 일을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 선생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으니 민망해 하다가 제가 하던 말을 듣고서는 바로 “스님 말씀이 맞으세요. 저는 부처님처럼 베풀 거예요. 그렇게 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조선생은 우리들이 미국 서래사 등 해외에서 도량을 짓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 이외에도 특히 행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휠체어를 백만 대 이상 기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부부는 같은 종교로 같은 이념과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당연히 부부간에도 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몇 년 후 조 선생의 부인이 서거하였고 조중식 선생도 불광산의 명예공덕주가 되었습니다. 선생은 100세 이상을 사시다가 왕생하였습니다. 저는 부부가 함께 이루어낸 가정이 불교가정이 되어 부처님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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