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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정옥경씨-상

기자명 법보신문

종교·가족관계 부정적
수행하며 조금씩 변화
태국 가족여행이 계기

▲ 락연·42
“신이나 종교는 없다.”

학부 때 철학을 전공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곤 했다. 법왕정사를 몰랐을 때였고, 청견 스님 법문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시절 이야기다. 그래서 무슨 인연이 닿아 지금 여기서 수행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아, 내 스승님이 여기에 계시는구나.’ 청견 스님 법문은 명쾌했다. 때로는 신랄했다. 신앙보다는 내 머릿속 이성이 먼저 반응했다. 스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법문에서 항상 강조하는 수행이 스스로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부처님께 감사와 경탄이 우러나오지 않아 딜레마에 빠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벽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부분이었다. 법문을 믿고 따랐기에 마음의 짐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차라리 멀리 살면서 가끔 안부 전하는 정도가 서로에게 가장 좋지 않을까 했다. 사실 서로 모질게 상처 주기만 잘하는 가족이라 그렇게 마음정리하고 지냈다. 그냥 스님을 향해 ‘부모님과의 관계만큼은 노력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혼자 정리했다.

지난 5월, 여동생과 만났을 때 여동생이 꺼낸 말이 계기였다. 동생은 올해 어머니 칠순 때 가족여행을 제안했다. 부모님 일은 내게 일임하고 상관하고 싶지 않아 했던 동생이었기에 웬일인가 했다. 동생이 “다들 한 번씩은 다녀오니 우리도 남들처럼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라고 거듭 권하기에 생각해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절을 보고 싶다 하셨다. 딸이 몇 달째 청도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셨는데 의외였다. 보여드린 여러 곳 사진 중에 태국이 좋겠다 하셨다.

그러나 여행 말은 꺼내놓고 사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청도에서 수행하던 중이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와선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수행 시작하고, 저녁 10시쯤 와선으로 마무리하는 하루는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수행 7개월째, 감히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자신했다. 우선 체중이 12kg 줄었다. 스트레스로 먹는데 절제 없는 날들을 보냈고, 찌는 살이 감당되지 않았었다. 매일같이 법문 듣고 수행하다 보니 점점 알아차림 하는 힘이 생겼다. 음식을 대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여름 내내 절하며 흘린 땀이 지방을 가져갔다. 아직 표준체중까지 좀 더 노력해야 하지만, 먹는다는 것과 포만감에 대한 성찰을 깊이 해서 먹는 행위 자체를 수행과제 중 하나로 삼아 진심으로 수행자답게 살고자 원한다.

이런 변화에 빠져있던 터라 여행 가자고만 해놓고 절에서 계속 수행만 하다 보니 호텔예약도 일정도 동생에게만 맡겼다. 출발부터 온갖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가족여행을 가서 큰소리 안 나본 적이 없었다. 괜히 가는 게 아닌지 우려됐다.

공항에 가족 모두 모였다. 미리 준비한 염주를 선물하니 다들 고맙다며 팔목에 둘렀다. 비행기에 오르니 동생이 부탁한 어머니 생신 케이크가 나왔다. 동생이 이 여행을 위해 많이 애쓰고 있구나 싶어 긴장이 좀 풀렸다. 밝아지는 어머니 모습에 좋은 출발처럼 느껴졌다.

여행지서 맞는 아침이었다. 새벽에 잠이 깨 거실에 의자 하나를 치우고 방콕 시내를 가르는 강과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예경으로 수행했다. 평소 같으면 여행까지 와서 무슨 유난이냐 했을지 모른다. 모두들 자는 시간에 수행을 시작했다. 그러자 온 천지 사방에서 강에서 하늘에서 강과 하늘 사이에서 내 등 뒤에서 나를 사랑해 주는 기운들이 감당하기 벅차게 밀려들었다.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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