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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고 흐르는 마음공부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2.19 11:05
  • 수정 2016.12.19 11:06
  • 댓글 0

법성게에 보면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이 진리, 지혜, 깨달음은 말 그대로 깨달아서 아는 것일 뿐 다른 경계가 아니라는 뜻인데, 쉽게 말하면 머리로 이해되거나,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라 직접 체험해서 확인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실 팔만대장경의 모든 말씀이, 수도 없이 많은 불법을 설명하는 가르침이나 책들이나 법문들이 전부 이 진리, 법, 마음, 본래면목을 설명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달 자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말로 설명해 낼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선지식 말씀도 방편일뿐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에
그것에 집착하면 ‘망상’
무엇에든 머물지 말아야

그럼에도 우리 중생들이 알 수 있고,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법은 오로지 머리로 헤아리고, 말로 설명하는 방법 밖에는 알 수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교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많은 선지식 스님들께서 말로, 언어로, 설법으로 무수히 많은 설법을 해 놓았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 설법들, 팔만대장경이라는 경전조차, 그 모든 말로 표현되어진 것들은 전부 다 방편일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즉 진짜가 아니란 의미다.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설명하는 제한된 언어일 뿐이라는 것이다.

방편이라는 말 자체가,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해서 특정한 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그 약효가 나타나는 임시적인 방편의 약일뿐이라는 뜻이다. 인도에서는 아트만(Ātman)이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적 자아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없다’는 ‘무아(無我)’의 방편을 쓰셨고, 또 내가 없다는데 너무 집착해서 무기공(無記空)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참나’ 혹은 ‘불성’이라는 ‘유아(有我)’적인 방편을 쓰신 것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방편의 가르침은 전부 특정한 생각에 오염되어 있고, 사로잡혀 있어서 번뇌망상이라는 병이 있는 사람에게 그 병을 치료해 주기 위한 약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불교는 타종교에서 근본주의자들, 문자주의자라고 불리는 분들처럼 경전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전부 다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전혀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문자에 집착해 있고, 방편에 집착해 있는 사람들이 불교 안에는 너무도 많은 듯 보인다. 아니 너무도 많다기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어떤 특정한 수준의 방편에 사로잡혀 그것이 불교의 전부라고 믿고 있어 보인다. 물론 어떤 방편이라도 그 방편의 가르침이 나에게 맞고 아주 적절하게 느껴지고 도움이 된다면 그 방편이 지금 나의 근기에서는 나와 잘 맞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방편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최고의 진리라고 여겨, 나머지 다른 가르침은 진리가 아니라고 여기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방편의 치료약이 나의 치우친 견해와 번뇌망상을 치료해 준 뒤에는 또 다시 그 다음 단계의 높은 방편의 가르침을 향해 마음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불자라면 그렇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있어야만 점점 더 높은 방편의 가르침으로 유연하게 옮겨 갈 수 있게 되고, 결국 그렇게 꾸준히 정진하고, 성숙하고, 점점 마음이 열리게 되다 보면 어떤 깨달음의 임계점까지 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몰록 깨달음을 얻게 되는 차원으로까지 공부가 힘을 받아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스승, 특정한 수행법, 경전, 방법, 체험만이 완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기에 묶여 있을 뿐, 나아가지를 못한다.

아무리 위대한 수행법도,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거기에 집착해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병이 될 뿐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다. 법상(法相)에 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견성체험을 한 뒤에도 그 견성이 깨달음이라고 사로잡혀 있게 되면, 또 다른 법상에 빠지게 될 뿐이다. 특정한 수행, 스승, 경전, 방편, 체험에만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되어 보라.

[1372호 / 2016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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